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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Mar 30. 2024

D+117) 단유는 했어도 엄마품은 여전해

단유를 했지만 엄마품은 여전하다고 아기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단유를 하고서 며칠간은 아기가 졸려할 때 끝까지 안아서 달래고 재웠다.

듣기만 해도 모성애가 넘쳐흐를 것만 같은 단어, "모유수유". 출산 전에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젖몸살도 세게 왔었지만 다행히 아기는 모유도 분유도 잘 먹어 줘서 조리원에서 부랴부랴 모유수유에 대해 공부해 어찌어찌 혼합수유(모유와 분유를 함께 먹이는 것)를 이어 왔었다. 주변에서는 엄마 몸 상한다고 빨리 분유를 먹이라고 했지만 모유가 아기에게 좋다고 해서 6개월까진 꼭 먹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백일 즈음 단유를 하게 되었다.


모유가 아기에게 좋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모유에 옥시토신과 같은 호르몬이 분비되고 양수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나서 아기가 칭얼거릴 때 먹이면 1분도 안 되어 금세 안정이 된다. 그래서인지 아기는 본능적으로 모유를 먹으며 잠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분유는 먹고 나면 무조건 트림을 시켜 줘야 하지만, 모유는 소화가 워낙 잘 되어 누워서 먹다 잠들더라도 웬만해서는 게워내지 않는다. 모유를 먹이면 아기가 응가를 할 때도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모유에는 뇌의 시냅스를 연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성분이 들어 있어 아기의 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모유는 엄마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엄마의 체력과 영양을 빼앗아가는 건 확실해 보였다. 출산 후 잠을 깨게 만드는 오한이 지속되고 요통과 관절통이 쉽게 나아지지 않는 게 모유수유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임신 때부터 지속되는 변비는 모유수유를 기점으로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지지 않았다. 아기에게 영향이 갈까 봐 먹는 것도 극도로 제한해야 하고 약을 먹을 때마다 성분을 확인하고 먹어야 했다. 아기가 모유를 먹으면 소화가 금방 되어 배고파하기에 매 수유시마다 모유를 먹이고 또 분유까지 먹이느라 먹이는 데에만 한 시간가량이 소요되었다. 무엇보다 모유수유는 엄마인 내가 해야만 하기 때문에 몸이 좋지 않거나 외출을 해야 할 때도 제약이 생긴다. 물론 아기를 먹일 때 옥시토신이 분비되어 행복감을 느껴지기도 하고 꽤 비싼 분유값도 절약되며 여성질환의 위험이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엄마의 몸에는 부담이 된다.


결정적으로 아기가 백일 즈음에 분유를 갑자기 거부하면서 '혹시 이러다가 단유(젖떼기)를 못해서 아기가 두 돌 세돌이 될 때까지 모유를 먹여야 하면 어떡하지? 그럼 복직도 못하겠지?' 하고 걱정이 되었다. 아기 트림시킬 때 즐겨 보던 넷플릭스 드라마 '워킹맘스'에 보면 캐나다는 직장에서 유축도 할 수 있나 본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니까. 완모(모유수유만 하는 것)를 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백일 즈음에 그런 경우가 많다며 곧 분유를 잘 먹을 텐데 그때 단유를 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거의 모유 위주로 먹이면서 분유를 아주 조금씩 먹였다. 그러다가 2주 정도 지나니 아기가 갑자기 분유를 잘 먹어 주어서 아기가 눈치채지 못하게 모유를 주는 텀을 계속 늘려 나갔다.


그렇게 조절을 해가던 중, 마지막으로 모유를 먹이는 날이라는 게 직감적으로 느껴진 순간이 있었다. 아기의 모유 먹는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이제 이 모습을 못 본다니 섭섭하기도 하고 코끝이 찡해졌다. 조리원에서 몸이 아파 가며 악착같이 모유수유를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도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이제 4개월 된 아기에게 모유를 그만 먹이는 게 맞나 하는 고민은 애진장 할 만큼 했으면서도, 또 마음 한편을 스쳐 지나간다. 엄마의 몸은 참 신비롭다. 모성애라는 것이 결국은 호르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낳고서 모유를 먹일 때까지는 이 호르몬으로 인해 아기가 뱃속에서 나와 갑자기 달라진 환경에도 포근함을 느끼며 적응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신비롭고 또 신비롭다.


'엄마품'이라는 게 나에게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유치원 때 할머니 품에 자주 안겼던 기억은 난다. 아기에게 '엄마품'이란 단순히 맘마를 먹는 곳만이 아닌 안정을 찾는 곳이다. 단유를 했지만 아기는 졸릴 때나 무언가가 불편할 때도 내 품에 파고들며 칭얼거린다. 단유를 했지만 엄마품은 여전하다고 아기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단유를 하고서 며칠간은 아기가 졸려할 때 끝까지 안아서 달래고 재웠다. 아기도 그걸 아는지 몇 번 연달아 달래주니 이제는 중간에 눕혀 놓아도 잘 잔다.


모유를 먹이고 단유를 하면서 촉촉해졌던 감정도 조금씩 정리되어 가고, 이제는 밖에 나가서 커피도 한잔씩 하고 먹고 싶은 음식들도 조금씩 먹으며 육아를 하니 확실히 훨씬 편하고 행복하다. 밤잠을 깨우던 오한도 날이 흐리면 찾아오던 요통도 갑자기 확 줄어듦을 느꼈다. 아기를 먹이는 데에 쓰는 시간도 한 시간에서 이삼십 분으로 줄어 그 시간에 아기와 좀 더 놀아주거나 살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편해진 만큼 아기는 불편해졌다. 아기가 분유만 먹게 되고 나서 응가를 못하고 소화가 잘 안 되어 토를 계속 하니 안쓰럽기는 했지만, 응가를 못하는 건 유산균으로 해결하고 토를 계속하는 건 트림을 더 여러 번 시켜주는 걸로 해결을 했다.


모유는 애초부터 사람 아기에게 먹일 수 있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먹일 수 있으면 먹이는 게 좋겠지만, 언제까지 먹일지는 사람마다 다르다고 생각한다. 모유의 성분에 대해서도 분석이 많이 되어 있어서 모유만 오래 먹으면 철분이 부족해질 수 있기도 하고. 4개월에서 6개월 사이에 이유식을 시작하니 모유를 먹는 횟수가 어차피 점차 줄어들기도 하고. 모유만 먹일 경우 엄마의 고충이 많다 보니 완전히 모유만 먹이는 것보다 분유와 함께 먹이는 것이 모유수유를 더 오래 지속하게 해 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러니 단유를 했다고 해서 죄책감을 느끼기보단 아기에게 맘마를 먹이는 방식을 엄마와 아기에게 가장 좋은 방향으로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기를 키우다 보니 방심한 사이에 아기가 훌쩍 커 버리기도 하고 내가 계획한 대로 아기가 자라지도 않는다. 모든 것은 대처와 대응이다. 다만 좀 더 잘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발달 단계에 앞서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단유를 하면서부터 육아서적을 조금 더 열심히 읽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기가 아직 크게 아픈 적이 없었지만, 병원에서 주는 약들도 좀 더 공부해서 아기가 아프면 어떨 때 응급실에 데려가야 할지, 어떨 때는 기다렸다가 병원을 데려가야 할지, 어느 병원에 어떻게 데려가야 할지 등을 정리해 두었다.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다 보면 금방 복직할 날이 올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아기와 보내는 시간이 조금 더 애틋해진다.


당장은 일차원적인 반응이 필요한 시기라 아기에게 좋은 게 뭔지가 어느 정도 명확하지만, 아기가 자랄수록 어떤 가치관으로 육아를 해야 할지가 고민될 것 같다. 그거야말로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내 인생의 가치관부터 재점검해야 할 텐데, 아기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생각을 충분히 하지 않고 낳아서인지 그 부분이 가장 걱정된다.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질적인 것들을 어떻게 하면 저렴하게 구매할지 어느 수준으로 좋은 걸 쓸지를 고민하고 정하는 데에도 허덕이고 있어서 장기적으로 이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지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을 따로 내지 못하고 있다. 아마 내가 이런 사람인데 아기에게 보여주기 위해 다른 사람처럼 연기를 한다면 그것 또한 아기에게는 해악이리라고 본다. 나는 나라는 인간 그대로 살되, 아기의 가능성을 해치지 않는 부모가 되고 싶다. 다만 아기로 인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나도 아기와 함께 성장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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