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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nobanker Apr 06. 2024

D+127) 장난감 너머의 나를 보고 웃는 너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고 "재밌게 놀고 있어~"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아기가 장난감은 안 보고, 플라스틱 장난감 너머의 내 눈을 보고 몸을 배배 꼬며 세상 맑은 미소를 짓는다. '엄마, 모든 장난감보다 엄마 손이 제일 좋아요' 하고 아기가 말하는 것만 같다. 

장난감 고민 지옥에 빠지면 잠을 더 못 잔다. 아기를 낳고 나서야 부랴부랴 육아를 고민한 워킹맘답게 아기가 맘마가 부족하다고 보채면 그제야 쪽쪽이를 알아보고, 아기가 손을 빨기 시작하면 그제야 치발기를 알아보고, 아기가 침을 흘리기 시작하면 그제야 턱받이를 알아보고, 아기가 뒤집기를 하다가 머리를 쿵 하니 그제야 울타리를 알아보고. 뭐 하나 미리 구비하는 게 없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미리미리 준비해 놓으려고 아기 발달 단계에 맞는 장난감을 한 달 정도 미리 구매하려고 맘카페와 육아앱을 뒤지며 종횡무진 검색을 하다 보면 내 다크서클은 늘 턱까지 내려와 있다. 아기가 잠든 후 한 시간 내에 잠들어야 다음 날이 힘들지 않은데 세 시간이 지나도 못 자기 일쑤다. 그뿐이랴, 급하게 구매하느라 설치가 복잡하거나 치수가 안 맞거나 환경호르몬이 왕창 나오는 제품을 실수로 주문해 반품은 일상이 돼버린 지 오래다. 


집요한 검색질을 통해 저렴한 오뚝이를 '득템'해서 터미타임 할 때 보여주니 아기가 무척이나 좋아한다. 장난감을 사면 처음엔 항상 이렇다. 오래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사실 많지 않다. 손을 꽤나 의도적으로 움직이는 요즈음에는 멀뚱멀뚱 보던 모빌에 달려있는 인형들을 홱 낚아채 물고 빨고 맛보기도 하고 플라스틱 고리를 여러 개 연결해 주면 철컹철컹 잡아당기며 즐거워한다. 뒤집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엎드려 있는 동안 시선을 강타할 반짝이는 가랜드나 백일 때 쓰던 풍선 같은 것을 보여주면 즐거워한다. 


그날도 아기가 뒤집으면 토를 하니 맘마를 먹인 후 소화 잘 되라고 역류방지 쿠션 위에 눕혀놓고 평소 하던 대로 눈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 아기 손 잡고 '만세' 손과 발을 잡고 '짝짜꿍' 눈코입을 만지며 '코코코코 눈' 손수건으로 '까꿍' 놀이를 해주고는 이제 집안일을 하러 가기 위해 고리 장난감을 걸어주었다. 장난감을 손에 쥐어주고 "재밌게 놀고 있어~"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아기가 장난감은 안 보고, 플라스틱 장난감 너머의 내 눈을 보고 몸을 배배 꼬며 세상 맑은 미소를 짓는다. '엄마, 모든 장난감보다 엄마 손이 제일 좋아요' 하고 아기가 말하는 것만 같다. 


아기에게 장난감을 들이대면 아기는 좋아한다. 그런데 그게 엄마인 내가 장난감을 보여주며 눈 맞춰주고 놀아줘서 좋은 거였다는 당연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목에서 뭐가 끓는 것처럼 느껴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금 아기에게 필요한 건 발달 단계에 맞춘 현란한 장난감이 아니라, 내 눈빛과 손짓이구나. 요즘 부쩍 맘마를 먹으며 내 턱도 조물조물 만져 보고, 안경도 벗겨 보고, 머리채도 쥐어 보고 하는 아기를 보며 아기에게 가장 재미있는 장난감은 엄마인 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응가를 씻길 때도 예전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는 게 아니라 이제는 엄마 옷깃을 꼭 잡고서 매달려 있고, 재울 때도 엄마 가슴팍에 손을 꼼지락거리며 자는 걸 보면, 아기는 손끝으로 엄마를 만지면서 행복하고 평온함을 느끼는 게 분명하다. 너무너무 당연한 일이기도 한데, 막상 아기의 한없이 맑은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그래 내가 엄마구나. 너에게 나는 그런 존재구나.' 하며 마음속이 따뜻함으로 가득 찬다. 


그래, 내가 검색을 한 시간 동안 해서 환경호르몬도 나오지 않고, 오래오래 가지고 놀 수 있고, 가성비도 좋은 장난감을 아무리 사준들, 너에게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눈빛을 교환하며 커다란 손가락을 고사리 같은 손에 한껏 쥐고 흔드는 것이 가장 즐겁구나. 그러니 매일 뭘 사야 할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너무 고민하지는 말아야겠다. 그저 네가 좋아하는 손 놀이를 네가 질릴 때까지 더 많이 해주고, 기저귀 갈 때 배를 따뜻하게 만져 주고, 너를 잠들기 전에 더 오래 안아줄게. 


언제까지 아기가 장난감보다 나를 더 좋아해 줄지 모른다. 언제까지 아기가 저렇게 맑은 눈으로 나를 보며 웃어줄지, 내 옷자락을 꼭 붙잡고 잠을 청할지 모른다. 하루하루 검색과 고민에 허비하기에 아까운 시간들이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걸까? 아기가 세상을 탐색하기 시작하면 친구도 생기고 엄마보다 재미있는 것이 점점 더 많아질 텐데, 지금 이 찰나의 시기에 아기와 더 많이 교감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아기를 보며 인간이 상호작용을 좋아하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옆에서 '옳지, 한번 더' 하고 응원해 주면 아기는 어제 못하던 배밀이와 같은 동작을 오늘 갑자기 하며 개인기가 하나씩 늘어간다. 표정도 신이 나서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손발을 흔들어댄다. 반면에 아기를 혼자 두고 멀찌감치서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아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끙끙거리며 혼자 외로이 연습한다. 물론 하루에 몇 번씩은 아기도 혼자 햇빛을 바라보며 멍하니 잘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누군가가 지켜보고 말 걸어주고 눈 마주쳐 주고 응원해 주는 것을 알고 반응한다. 


나도,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학생 때도 학교에서 전교 일등을 해 가지고 오면 성적표를 보고 기뻐할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고, 아무리 뽀대 나는 신발을 샀어도 자랑할 친구들이 없다면 아쉬운 일이다. 회사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척하면 척 알아주는 남편이 있기에 또 하루를 살아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육아가 말 못 하는 아기와의 외로운 싸움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아기도 상호작용을 아는 어엿한 한 사람이고 특히 엄마인 나에게 가장 순수하고 온 힘을 다해 반응해 주는 소중한 작은 사람이다. 이 조그마한 생명체에게 내 애정과 시간을 쏟아 줄수록, 아기는 물과 햇살을 잔뜩 머금은 나무가 좋은 공기를 뿜어내듯 사랑을 뿜어낼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시간들을 언제 해도 상관없을 일들로 인해 그냥 스쳐 보내지는 말자. 아기가 주는 사랑에 허우적거리며 건너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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