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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490) 나의 하루, 너의 하루

워킹맘 딸의 열두 시간은 이렇게 흘러간다

by Innobanker

내가 말로만 듣던 워킹맘이 될 줄이야, 꿈에도 몰랐지. 친정엄마 도움 없이, 거의 오롯이 등원 이모와 하원 이모의 도움으로 워킹맘이라는 걸 하게 될 줄이야.


회사까지 편도 1시간 좀 넘게 걸리는, 8시까지 출근해야 하지만 지옥철 시간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는 6시쯤 나와야 하는 워킹맘을 둔 아기의 하루는, 등원 이모님의 모닝콜로 시작된다. 눈 뜨자마자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기를 달래기 위해 공룡송을 틀어주는 등원 이모님. 그리고 이모님 옆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 아이 아빠. 아이 아빠는 9시에 회사로 나서고, 아이는 9시에 어린이집에 간다.


9시부터 12시까지 오전 간식을 먹고, 12시 즈음 점심을 먹은 뒤 아기는 낮잠을 잔다. 일어나서 조금 놀다 간식을 먹고, 그럼 하원 이모님이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오신다. 목욕을 하고, 집에서 조금 놀다 보면 7시 즈음 엄마가 집에 온다.


아이는 모른다. 그 시간을 지키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새벽 5시에 손목시계의 진동 알람이 울리면 혹여나 아이가 그 소리에 깰까, 용수철처럼 벌떡 일어나 혹시 몰라 맞춰둔 6시 알람을 꺼두고는, 어제 못다 한 어린이집 가방을 챙겨두거나 투약의뢰서를 업로드하고, 고양이세수와 화장을 하고 도둑처럼 집에서 나선다. 아침 샤워와 향긋한 샴푸 냄새는 출산 후부터 잊고 산 지 오래다. 원래는 5시 반에 기상해서 6시에 집에서 나서다가 야근을 못하니 아침에라도 못다 한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5시에 기상해서 5시 반 첫차를 탄 지 근 한 달 째다. 운이 좋으면 앉아서 갈 수도 있고, 일찍 도착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못다 한 아기 용품과 식재료 주문은 출퇴근길에 주로 해결한다.


이렇게 황금 같은 아침 시간마저도 힘든 시간이 되는 이유는, 아이가 어려서 새벽에 깨는 일이 잦아서다. 10시에 아이를 재우며 잠이 들어도 새벽 1시, 2시만 되면 한 번씩 깨서 우는 아이를 다시 재우느라 나도 깨 버리고,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은 특별히 뭔가를 하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서 머릿속으로 할 일을 정리하다가 깜빡 잠이 들면 30분 정도 더 자고 출근할 때가 많다. 업무 속도가 빠른 부서에서 모든 의사소통이 빠른 가운데 나만 혼자 멍-하다. 수면부족에 강박에 시달린다. 아이가 내 알람소리에 깨 버리는 날이면 새벽에 남편을 깨워 아이를 맡기고 출근을 한다. 이런 날은 아이가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서 많이 운다. 출근하는 발걸음이 더 무거워진다.


운동할 시간이 도저히 나질 않아 점심시간에 사내 헬스장에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빨리 운동을 끝내도 이것저것 해서 40분은 걸리기 때문에 밥은 대충 먹게 되지만 그마저도 무료인 데다 구내식당이 바로 옆에 있어 끼니를 거르지 않아도 되는 게 감사하다. 임신 전 하던 중량 스쿼트는 또 다칠까 봐 아직 못하고 있다.


복직 3개월 전에 시터 이모님을 미리 구했었다. 아이가 아토피가 있어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엄마인 내가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많다 보니 부담스러워 복직 직전에 그만두시게 되었다. 부랴부랴 복직 1주일 전부터 연장반에 적응시키고 있었는데 아이가 복직 직후 RSV라는 지독한 바이러스에 걸려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어른인 나도 폐가 들썩거릴 만큼 기침이 심했다. 입원한 아이를 맡은 지 2주밖에 안된 이모님께 맡기고 출근하던 그 시기, 머리가 어떻게 된 건지 업무도 쉽게 눈에 들어오질 않고 퇴근하고서는 이유식을 만들어 병원으로 나르는 생활을 2주 가까이 했다. 밤새 보초를 선 남편 대신 주말은 내가 당번을 맡았다. 아이 팔에 링거를 꽂으며 자지러지는 아이를 보며 이렇게까지 해서 회사를 다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었던 것 같다.


연장반이 문제였다. 아이를 바로 가정보육하기 시작했고 운 좋게도 설날 연휴가 길어 아이를 집에 오래 데리고 있을 수 있었다. 아이는 다행히 금방 나았고 훌쩍 자랐다. 어린이집도 다시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보내자마자 2주 차에 또 감기에 걸리더니, 3주 동안 감기가 낫지 않았고 또다시 기관지염에 걸려 지독한 기침을 하고 있다. 아이가 또 입원할까 봐 겁이 났다. 센 바이러스에 걸려 약해진 기관지가 또다시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입원하게 되면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뿐더러, 온 가족이 다시 병원생활을 해야 한다. 다시 아이를 가정보육하게 되었다. 아이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연약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생후 10개월부터 감기에 걸려 있지 않은 날이 거의 없는 아이가 몹시 가여웠다. 내가 일하는 의미가 거의 없어질 만큼 시터비가 들고 있지만, 아이가 괴롭지 않았으면 한다.


어찌어찌 복직 후 휴가를 한 번도 쓰지 않고 버티고 있다. 연차는 총 15일, 복직 후 두 달간 아이를 가정보육 한 날은 거의 한 달에 가깝다. 이미 일 년 치 연차를 모두 소진할 만큼 아이는 가정보육이 필요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달간 나는 1년 동안 못한 일을 원 없이 하고 있으며, 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심각한 수면 부족 상태에서 머리가 팽팽 돌아가야 하는 업무로드를 소화하는 것도, 항상 아픈 아이에게 감기가 옮아 있어 감기약과 두통약을 달고 사는 것도, 집에 오면 밀린 집안일을 해치우고 이유식을 만드는 것도, 모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주말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하루 종일 아이 빨래와 집 청소 등 밀린 태스크를 처리하고서 낮잠 시간에 쉴 수 있는 루틴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이와 나는 하루 종일 함께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아이가 눈뜨는 8시부터 내가 집에 도착해서 집안일과 샤워를 모두 마치는 8시까지, 나는 쉬지 않고 달린다. 엄마와 붙어있어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하고 하루 종일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를 위해 야근보다는 동료들에게 사죄를 택한다. 10분도 허투루 쓸 수가 없다. 쉬는 건 잘 때 하면 된다. 아이와 나, 우리의 하루는 합치면 24시간보다는 길다고 할 수 있다.


정말 혼자 있을 시간이 부족하고 힘이 든다면 힘이 드는 일상이지만, 이 모든 건 나의 선택이다. 가끔 생각한다. 누구나 고아가 된다는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 혼자 쭉 살았다면 시간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최소 10년 이상을 한숨 돌릴 틈 없이 달려야 하는 워킹맘의 삶을 선택한 건 나 자신이다. 숨 돌릴 틈 없는 대신, '뭐 하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다. 우스갯소리로 동료들에게 나는 투잡이라고 말을 한다. 눈 뜨면 할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하루 종일 우선순위대로 쳐내기 바쁘지만, 이제는 아이가 깨면 모든 것이 올스탑인 상태가 제법 익숙해져서 인지 불편하지만은 않다. 이렇게 아이에게 꽁꽁 매여있는 내가 싫지만은 않다. 엉덩이 붙일 틈 없이 계속 움직여야 해서 다리가 저릴 정도이지만 언제든 어디에든 머리만 대면 꿀잠을 잘 수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니, 식사라도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게 어디인가 싶다.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커 가면서 이 모든 게 보고 있으면서도 그리워지는 느낌이다. 엎드려서 배밀이를 하던 아이가 어느덧 뛰어다니고, 여러 단어를 구사하는 걸 보면서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지경이다. 글을 아무리 잘 쓰려해도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게 아쉽다. 하루 종일 아이를 집에서 보고 있었다면 이렇게 아이가 애틋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1인분을 못하고 있는 나 때문에 야근과 주말근무까지 하고 있는 동료들을 보면 속이 쓰리다.


커리어적 욕심이 나라고 왜 없을까. 하지만 나는 하루라도 더 빨리 일하는 게 커리어를 쌓는 거라고 판단했고, 엄마의 케어가 좀 더 필요한 아이의 상태에도 불구하고 복직을 빨리 하는 바람에 아이가 조금 더 고생을 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지금은 충분하다. 그 이상의 커리어적 욕심을 부릴 수가 없다. 더 일하고, 더 배우고, 더 빨리 승진하고. 물론 너무 하고 싶다. 하지만 지금 아이와 24시간 붙어있어도 모자를 시기에 아이를 무려 12시간이나 남의 손에 맡기고 있는데도 커리어적 욕심을 위해 하루 한 번 엄마 얼굴조차 볼 수 없다면 사는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글이 길어져버렸다. 이렇게 하루 스물네 시간 중 열두 시간을 엄마와 아이는 각자 보낸다. 엄마도 일을 하며 성장하고, 아이도 여러 사람들 손에서 배우며 쑥쑥 성장하고 있다. 몇 년 후, 나는 내가 얼마나 성장해 있을지 기대된다. 조금은 더딘 걸음이겠지만, 아이와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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