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밑도 끝도 없는 '불안'을 다스리고 '불안'과 함께 살아가기
결혼을 하고 한동안 악몽을 꾸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악몽이 되살아났다. 전처럼 자주는 아니었지만 나쁜 꿈을 꾸고 나면 기분이 굉장히 나쁘고 찝찝했다.
객관적으로 큰 문제가 없고 주관적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기가 싫었다. 억지로 좋은 생각을 하면서 기분을 끌어올려야 했다. 왜 꼭 아침에 잠에서 깰 때 그런 기분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나는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가족이 있어 행복했지만 ‘인생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느낌이 무의식에 들러붙어 나를 우울하게 했고 그것이 다시 악몽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
그 고비를 넘기고 나서 씩씩해졌다. 악몽은 완전히 없어졌고 잠을 굉장히 깊이 자서 무슨 꿈을 꾸는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미적거리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그날 하루 해야 할 일을 생각하면 기대감에 가슴이 뛰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다시 착각몽을 꾸었다. 또 고등학교 3학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전 같으면 절망하면서도 '어쩔 수 없지'라고 받아들이고 동굴 같은 교실 안으로 들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큰 목소리로 "내가 몇 살인데 학교를 다시 다녀? 분명히 학교 졸업했거든!"이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는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교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옮겨 의기양양하게 밖으로 걸어 나왔다. 꿈 속이었는데도 그런 나를 지켜보고 있던 꿈속의 또 다른 나는 너무 기뻤다. 신나서 쾌재를 불렀던 것 같다.
꿈은 '그림자'를 의식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던져준다. 꿈이 주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사람만이 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메모습관의 힘-신정철).
꿈을 꾸고 나서 어이가 없었다. ‘뭐 이런 꿈이 있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는데 융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그 꿈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내가 심리학 전문가가 아니므로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나에 관해서는 내가 전문가다.
그 꿈은 이제 강해져서 더 이상 스트레스에 휘둘리지 않는 나의 내면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천재 수학자 존 내시는 어느날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던 환상의 모순을 깨닫는다. 조카딸 마시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자라지도 않고 나이를 먹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것. 오래 전 영화지만, 영화 속에서 내시가 외치는 'She never grows!'가 인상에 깊이 남았다.
자신과 동고동락해온 세 명의 친구가 환상 속의 허구임을 깨달은 후에도 그 세 명은 내시의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내시는 그들을 무시하면서, 때로는 공존하면서 살아간다.
40대 중반이 넘어 드디어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불안해도 '지금 불안하구나'라고 중얼거리면서 나를 다독일 수 있게 됐다.
누가 권유하지 않아도 스스로 기분을 전환하기 위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됐다.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지인의 어깨를 툭 치면서 '뭘 그런 걸 갖고 걱정해. 다 잘 될 거야 ‘라고 대범하게 말해줄 수 있게 됐다.
악몽을 꾸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유를 알게 되어도 악몽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약해져 있을 때, 뭔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을 때 악몽은 다시 무의식의 세계를 노크한다.
그 기분은 정말로 통쾌하고 짜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