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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Sep 16. 2018

당신은 어떤 악몽을 꾸나요?

악몽, 그것은 마음 속 우물을 비추는 그림자

얼마 전 '꽃보다 할배 리턴즈' 유럽여행 편을 보았다. 김용건씨가 꽃할배 팀에 합류했는데 그날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발레 공연을 보고 유럽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출연자들에게 '시간을 돌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해보고 싶은 것‘을 질문했는데 김용건 씨의 대답이 의외였다.


그는 감정에 북받친 목소리로 '많이 힘들었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 남들처럼 평범한 것들을 누리고 싶다'고 말했다. 늘 밝고 어떤 순간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캐릭터였기에 정말 뜻밖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우물을 갖고 있다.


덮개를 닫으면 다른 사람들은 우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지 못한다. 덮개에 풀이라도 덮여 있으면 우물이 있는지조차도 알 수 없다. 어떤 계기로 덮개가 벗겨지고 그 안을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상처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 상처는 때론 악몽이 되어 밤마다 찾아오기도 한다.


꿈을 연구한 사람들에 따르면, 꿈은 무의식이 의식 세계로 던지는 메시지. 수용되지 못한 감정,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모습이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 있다가 우리가 잠에 들면 등장한다고 한다.


카를 융이 말한 우리 인격의 '그림자'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꿈에 나타나는 것이다.



나에게도 오랫동안 시달려온 악몽이 하나 있다.


어릴 때는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자주 꾸었다. 그 괴물은 얼굴이 분명하지 않고 모습이 자주 바뀌는데 검은 그림자 같은 형태로 나를 뒤쫓곤 했다.


꿈은 좇는 괴물이 아니라 쫓기는 나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괴로워하면서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는 나를 무의식 속의 또 다른 내가 지켜보고 있는 형태였다. 꿈속에서도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인지했던 것 같다.


소심한 아이였던 나는 엄마도 무서웠고 선생님도 무서웠다. 여동생을 상대로 힘을 과시하는 오빠도 싫었다. 나에게 친절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쫓기는 꿈으로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조금 더 커서는 '착각몽'을 꾸었다.


뭔가 서류상의 착오나 내 실수로 고등학교를 다시 다니는 꿈이었다. 분명히 졸업했는데 학교를 다시 다녀야 한다고 했다.


꿈 속의 나는 울상을 하면서도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지옥 같은 교실로 들어가곤 했다. 선생님은 ‘이 학생은 나이가 많지만 다시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고 나는 지독히 불운한 나이 든 학생이 되어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으면서 우울한 생활을 하곤 했다.


시험을 다시 치는 꿈도 자주 꾸었다. 분명히 시험을 봤지만 행정상의 착오가 있어 다시 봐야 한다고 했다. 쫓기는 꿈과 달리 이런 착각몽은 굉장히 생생했다. 울면서 깨어나 악몽인 것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많았다.


융의 해석에 따르면, 이런 꿈은 나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불안과 억압이 꿈으로 나타난 결과일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오전반/오후반이 있었다. 엄마는 일하느라 늘 집에 없었다. 나는 오후에 시계를 보고 학교 갈 시간이 되면 알아서 준비하고 학교에 가야 했다.


집에 혼자 남게 된 동생은 “언니, 가지 마. 나 무서워"라고 말하며 내 다리에 매달리곤 했다. 그런 동생을 떼 놓고 무서운 선생님이 있는 학교로 가는 마음은 무거웠다.


그때는 학교 준비물이 굉장히 많았다. 조금 맹한 아이였던 나는 준비물 챙기는 것이 큰 스트레스였다. 준비물을 잊고 학교에 가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는 준비물을 안 갖고 와도 선생님이 손바닥을 때렸다.


엄마는 나의 학교 생활이나 준비물 같은 것을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나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남의 말을 잘 놓치곤 했다. 소풍 날짜, 준비물, 시험 날짜 같은 것을 잘 챙기지 못했다.


행복한 일이 있어도 곧 불행이 닥치지 않을까 두려워하곤 했다. 행복은 인생의 겉포장일 뿐이고 예고 없이 닥치는 불행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는 늘 사전 통보 없이 불행이 찾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날아온 법원의 압류 통보문, 갑자기 집에 들어와 가구에 빨간딱지를 붙이는 무서운 아저씨들, 데면데면하다가도 갑자기 냉전 상태로 돌입하는 부모님. 어린 나에에 삶은 살얼음판 같았다. 아마도 그때의 그 강박이 독특한 '착각몽'으로 나타난 것 같다.


<계속 이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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