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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Sep 13. 2018

결정장애자를 위한 변명

소심함일까? 완벽주의일까?

어떤 것을 사려고 할 때 늘 망설인다. 


A가 마음에 들어 사려고 하면 그것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고 B를 선택하려고 하면 별안간 A의 장점이 보이는 식이다. A와 B, 둘 중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이번에는 C에 눈길이 간다. '그래, C로 결정하는 거야!'라고 생각하고 C를 사들고 집에 왔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A와 B가 더 좋은 선택이었는데 생뚱맞은 C를 사 갖고 온 것 같다.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든다. '비싸지 않으니 돈 날린 셈 치자'고 생각하고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해본다. 


그런데... 잠이 오지 않는다. A와 B가 자꾸 눈에 어른거리고 엄청난 실수를 한 것 같다. 결국 다음날 바꾸러 간다. A로 바꾸고 집에 온다. 그런데 다시 눈에 어른거리는 C! 


맙소사! 나 구제불능인가 봐!


여러 가지 선택 중에서 이렇게 갈팡질팡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세상은 이런 증상을 가리켜 '결정장애'라고 한다. 


사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대학, 전공, 연애 상대, 직장, 직업, 배우자 등 모든 것이 선택의 영역에 놓여 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선택이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아니라 소소한 선택들, 가량 '오늘 점심 메뉴로 무엇을 먹을 것인가?' 같은 사소한 문제를 놓고도 매번 중대한 기로에 처한 것처럼 심각한 고민에 짓눌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바보스러움을 알면서도 매번 선택의 순간에는 이상한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나도 그랬다. 차라리 중요한 결정은 과감하게 내리는데 사소한 결정 앞에서 늘 망설인다. 이런 성격이다 보니, 좀 더 어렸을 때에는 물건을 사는 게 너무 힘들었다. 


따지고 보면 물건을 사는 건 엄청난 선택 노동이다. 결정의 중요도가 떨어질 뿐이지 수많은 고려 사항과 옵션 중에서 우선순위를 배정하고 그중 '하나'를 꼭 집어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결정장애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에 반론을 제기하려고 한다. 결정장애가 불분명한, 다시 말하면 호불호가 분명하지 않은 성격이나 결단력 부족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도 이것이 일반적인 시각일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결정장애자들은 그만큼 많은 변수를 생각하고 많은 사항들을 고려하기 때문에 선택이 어려워지는 것이다. 생각이 깊다고도 볼 수 있다. 많은 사항을 고려하다 보니 선택을 내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뿐이다. 오래 생각하기 때문에 현명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빠른 선택이 최선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의 결정장애 증상은 피곤을 동반한다. 


사야 할 물건들이 너무 많고 내려야 할 자질구레한 결정이 또 수두룩하다. 이런 작은 선택의 순간에 매번 망설이고 고민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하루가 피곤해지고 더 나아가 인생 자체가 피곤해진다.


일상의 소소한 선택에서 결정장애 증상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조건 연습이다. 


결정장애는 완벽주의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완벽한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선택을 위한 시간이 길어지는 것이다. 


완벽주의의 다른 얼굴은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이다.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린 후, 나의 결정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 그로 인해 받을 비난, 자책 같은 것들이 두려운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의 자존감이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는가? 결정을 빨리 내리고 안 좋은 선택을 하더라도 그 경험을 빨리 털어버리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생각 자체를 많이 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결정을 빨리 내리고, 실수가 있더라도 빨리 털어버리고, 생각이 짧았음을 탓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다음번에도 빨리 결정을 내린다.


결국 결정장애는 완전히 부정적인 것도, 그렇다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결정장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소소한 결정을 빨리 내리는 연습이다. 


완벽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참아내는 연습. 그런 상황을 자꾸 만들고 직면함으로써 경험치를 늘려나가는 수밖에 없다. 뭐든 익숙해지면 편안해지니까. 


지난주에 치킨을 먹을 것인가, 피자를 먹을 것인가, 한식을 먹을 것인가를 놓고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피자와 치킨은 모두 가끔 먹는 메뉴가 되었다. 게다가 중국 피자와 치킨은 어떤 맛인지 검증되지 않았다(버거킹에서 실패를 경험한 후 소심해졌다. 그 맛이 아니잖아!).


그 주 내내 중국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대부분 실패했다. 아이들은 한식, 남편은 뭐든 좋다고 했다. 결정권은 나에게 주어졌다. 아이들이 원하니 한식으로 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나를 위한 선택을 하고 싶기도 했다. 피자와 치킨 중에서 고민하다가 그나마 덜 먹은 치킨으로 정했다. 


그런데 치킨 가게로 들어가는 순간, 내가 기본적으로 한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늘 한식을 먹은 후에 만족감이 높았다. 하지만 한식은 맨날 먹는 음식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먹어보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발길이 다시 한식 식당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가족들의 표정을 본 순간, '아차!' 싶었다. 이놈의 결정장애! 과감하게 중국 치킨 가게로 향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왔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별로라고 불평하는 아이들 앞에서 '이게 최선'임을 강조했다. '안 먹어본 새로운 것'을 먹어본다는 목적은 달성했다. 그러니 그걸로 끝! 


생각해보면 어떤 선택을 최선의 것으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선택을 최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선택이 최선이었음을 그냥 믿어버리면 된다. 잘한 선택인지, 더 나은 선택은 없었는지를 따지지 않고 그냥 과거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꼼꼼히 돌아보고 점수를 매긴다고 해서 만족도가 올라가거나 나쁜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되풀이되는 수많은 일상의 선택은 '재도전'의 기회가 주어진다. 


소소한 결정에서 완벽을 추구할 필요는 없다. 잘못 선택하더라도 기회는 또(사실은 너무 자주) 온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이런 일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이 아깝다. 선택의 완벽함보다 내 시간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가 더 중요한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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