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 Sep 11. 2018

그때로 돌아간다면 정말 더 잘할 수 있을까?

선택, 그 어렵고 잔인한 이름

어렸을 때 나는 선택 앞에서 갈팡질팡했다.  무수한 옵션 앞에서 쩔쩔맸다. 그럴 때면 아예 선택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웅크리고 있었다.


어렵게 선택을 해도 그 선택을 믿고 우직하게 나아가지 못했다. 조급했고 성과가 빨리 눈에 보이기를 바랬다.


나의 선택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그것은 결국 나에 대한 믿음 부재와 같았다. 왜 그랬을까? 


조심스러운 성격 탓도 있지만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친척들의 실패를 간접 경험했고 그 모습이 내 마음에 두려움의 싸앗을 심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는 선택할 일이 별로 없었다. 가장 큰 선택이 진학할 대학과 과를 선택하는 것이었으니. 선택의 어려움은 대학교 4학년 때 극에 달했다. 4학년 때 진로 때문에 너무 고민이 됐다. 사회로 나가는 것이 두려웠고 의논할 대상은 아무도 없었다. 


먹고 싶지도 않은 과자를 마구 먹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을 잤다.


모든 것을 내 의지력 부족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20대 초반은 아직 어린 나이다. 주변에 나를 지지해줄 사람이 한명만 있었어도 상황은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아졌다. 무서웠지만, 직접 뛰어들고 보니 사회생활은 별 것 아니었다. 


내가 능력을 갖고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신감도 자랐다. 자신의 능력치를 확인하면서 저절로 선택의 반경이 줄어들었다.


선택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가장 어렵다. 주관식에서 선택 문항이 주어지고 그중에 하나를 고르는 형식으로 바뀌면서 선택이라는 행위가 점점 만만해졌다. 


어차피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렵고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연습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선택 또한 예외가 아니다. 경험치와 연습량이 늘어나면 쉬워지고 익숙해진다. 


연습 부족을 정신력 부족으로 착각하고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다. 버거움은 선택의 무게만으로 충분하다. 


지금은 머뭇거리기는 하지만 일단 선택을 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버린 옵션들과 선택한 문항을 놓고 비교하지 않는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느 시점까지는 아무 생각 없이 밀고 나간다. 내가 생각해도 많이 달라졌다.   


최근에 내가 버린 선택에 머물러서 그것을 꽉 움켜쥔 사람을 보았다. 그를 보면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는 어렸을 때 꿈이 만화가였다. 대학교 2학년 때 강북 변두리의 한 만화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을 뒤로하고 백지상태에서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실패할까봐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한 셈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누군가는 그 길로 계속 가서 만화가가 되었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에 삽화를 그렸다.


그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삼수 끝에 대입에 실패하고 군대에 갔다 온 후 백수로 지낼 수는 없고 평소에 잘 끼적이던 만화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걱정하셨지만 아들을 지지해주었다. 공부 재능이나 성공 경험은 없었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것밖에 길이 없다!'라는 절박한 마음이 그를 계속 그 길에 머무르게 했다.  


너무 많은 옵션을 놓고 저울질했던 나 VS 그 길 밖에 달리 갈 길이 없어서 무작정 달렸고 지금도 그것을 자신의 길로 만든 사람.  


그의 경우처럼 '대안 없음'이 가장 큰 동기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내 주변에는 많은 가능성을 뒤로하고 과감하게 한 길을 선택할 사람들이 몇 명 있다.   


알고 지내던 동아리 1년 선배는 대학을 중퇴하고 만화가가 되었다. 다른 선배는 유명한 영화 칼럼니스트 이동진씨가 좋아하는 영화감독이 되었다(전공과 무관하게). 만화가가 되었다가 사업가로 전향하여 TV에 나올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 선배도 있다.  


결심하지 못하고, 선택하지 못하고 방황한 20대를 후회하나? 


후회한다는 것은 그 시절로 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모르겠다. 나는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지낸다. 남들 앞에 내세울 그럴듯한 명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이룬 것도 없지만... 지금도 남들 눈엔 별 것 아닌 일들을 하는 걸로 보여도 상관없다.  


나는 어차피 뒷북녀다. 남들 다 아는 사실을 늦게 알고 남들 다 해본 일도 나중에 해보고 혼자 감동에 젖는다. 스스로도 조금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후회보다는 안쓰럽고 안타깝다. 돌아갈 수 있다면 방황하던 나를 안아주고 싶다. 선택의 무게 앞에서 짓눌리던 내 옆에 있어주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대신에 지금 세상 어디에서 선택하지 못해 동동거리는 약한 영혼이 있다면 과거의 나 대신 그를 꼭 안아주고 싶다. 


괜찮다고. 지금은 선택 앞에서 무능하고 바보처럼 느껴져도 점점 단단해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세월이 길다고, 시간은 충분하다고, 사람들에게 증명할 필요 없다고. 마음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도 결코 늦는 게 아니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미스터 션샤인의 세 남자 중 한 명을 선택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