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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Feb 15. 2020

'중독'에 취약한 사람들...당신은?

소설가 김영하는 미국에서 번역 출간된 자신의 책이 별 반응 없이 묻히자 실망감 때문에 몇 개월 동안 게임중독에 빠졌다고 한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칩거하며 화면 속 캐릭터들에게 자신의 분노를 난사하면서 삶도 죽음도 아닌 연옥의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나중에 돌아보니 당시 가벼운 우울증을 경험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기대했던 소설이 잘 되지 않자 그는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다. 그토록 발버둥치며 빠져나오려고 했던 '아무 것도 아닌 자'가 다시 되어버렸다는 자괴감이 다 큰 성인을 게임중독으로 몰아넣었을 것이다.


나에게는 Y라는 지인이 있다. 10여년 전, 그녀는 신인 남자 배우의 팬질에 빠져 있었다. 남편과의 사이가 좋지 않아 '이름뿐인 부부'로 지내고 있었고 그 공허감을 달래기 위해 젊고 매력적인 남자 배우를 위한 팬카페를 만들고 조공을 바치는 등 모든 일을 도맡아서 하곤 했다.


그러나 몇 년 후, 온 정성을 들여 키운 아들이 대학을 자퇴하자, 이번엔 BTS 세계 공연을 쫒아다니는 것으로 상실감을 위로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그녀는 20년째 연예인 중독에 빠져 있는 셈이다. 간헐적으로 휴지기는 있었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중독에 빠지고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가 그 대상이 무소불위의 힘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은 상황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깊은 실망감을 느낄 때 중독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텅 빈 마음, 상처 입은 영혼을 달래기 위해 자극적인 것에 몰입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런 것에 빠져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운 것도 아니다. 다만, 중독에서 빠져나와 차가운 현실을 직면하기가 두렵고, 나의 현 상태를 받아들이기가 무서울 뿐이다.


10대와 20대 초반의 나도 자주 뭔가에 빠지곤 했다. 요즘 말로 일종의 '프로 덕질러'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빠른 속도로 어떤 한 세계에 빠져들고 미친듯이 그 세계를 파악한 후에 지쳐서 나가떨어질 정도에 이르러 간신히 그 지옥을 빠져나오곤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주변에서는 '기어코 끝장을 본다'며 혀를 차곤 했다(다만 술이나 담배, 도박.... 이런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건 상태가 좀 좋을 때 이야기이고, 더 안 좋을 때는 잠을 많이 잤다. 잠을 자면 현실을 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술 대신에 잠을 친구 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이런 극단적인 성향에서 점차 빠져나왔다. 실망감과 불안을 다스리는 요령이 생기기도 했고.. 점점 더 행복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내 마음을 자주 들여다보고 스스로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순간적 감정이나 외부 상황과 '나'를 분리하면서 부정적인 감정에 오래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감정이 올라오는 그 순간에는 별 수 없이 휩쓸리더라도,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는 잔해를 더듬으면서 당시 상황과 내 감정을 복기해 나갔다. '왜 화가 났었던 걸까?', '나는 지금 왜 불안한 걸까?', '왜 평정심을 잃었나'.... 지금도 마음이 어지러우면 글을 통해 감정의 실타래를 풀어보는 편이다. 며칠이 걸려도 풀리지 않던 그 찜찜한 응어리가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쓰는 30분이면 거의 다 풀려버린다.


그러면서 번번히 느끼는 것, 매번 놀라는 것은...'우리의 자존감이란 것의 실체가 얼마나 보잘 것 없으며 얼마나 취약한가?'라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내면이 단단해보이는 사람도 몇번의 비난, 몇번의 작은 실패로 의기소침해지고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그건 영성 지도자 에크하르트 톨레의 말대로 '우리의 에고, 자존감, 정체성이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인의 욕망이 부딪히고 얽힌 이 세상에서 아무리 단호해보이고 강해보여도... 결국에는 다 약한 인간인 것이다. 영화 '인셉션'의 한 장면처럼, 나중에는 불만스러운 '현실' 대신에 멋진 '환상'에 자신의 인생을 내주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겉으로 빛나 보인다고 누군가를 지나치게 우상화하거나 보잘것 없어 보인다고 함부로 속단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그들은 모두 우리의 약하디 약한 에고가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찾는 대체물이자 희생양일 뿐이다.

어쩌면 '중독'과 '알아차림'의 사이에는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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