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라이 Nov 09. 2018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의 사랑

절절한 사랑도 결국은 '자기애'의 한 형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2013년 방송 당시 초반부를 조금 보았던 것 같다. 친한 친구 중에 젊고 잘생긴 남자 배우를 유난히 좋아하는 언니가 하나 있다. 이 언니는 이 드라마가 방송되기 시작할 때, '저 정도 얼굴이 나오면 내용과 관계 없이 무조건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나도 보려고 했다. 하지만 초반의 비현실적인 설정 때문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1편을 다 못 보고 그만두었다(나는 정말로 참을성이 없다). 보다 말았지만 대충의 줄거리도 알고 있었고 인터넷 포털만 봐도 내용 전개를 알 수 있었으니 뻔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일본 드라마의 리메이크이고 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폭삭 망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자꾸 이런 신파적인 이야기를 리메이크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번에도 정주행 하지는 않았다. 중국 케이블 TV 메뉴에 없었기 때문에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서 대충 돌려가면서 주요 장면만 보았다. 하지만 조금씩 호기심이 생기면서 보는 양이 점점 늘어났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조인성이라는 배우였다. 나에게 조인성이란 정우성과 비슷한 존재였다. 잘생김의 대명사지만 남들이 잘생겼다고 말하니까 그런 줄 아는 것이지 막상 그 배우의 연기나 매력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생각해보니 조인성이 나오는 드라마를 한편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 '피아노'를 보았지만 별 느낌이 없었고 그가 출연한 영화 '쌍화점'도 보다가 정사 장면에서 지겨워져서 중간에 접었다. 조인성의 연기나 매력에 대해서 완전 백지상태였다. 심지어 나이도 정우성이랑 비슷한 또래인 줄 알았다는!(알고 보니 10살이나 어렸다). 

이 드라마를 찍을 당시 30살이 조금 넘은 나이였는데 연기를 생각보다 잘 했다. 아니,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기본적으로 남자 배우는 중저음의 발성 좋은 사람을 좋아한다. 외모가 아무리 매력적이어도 목소리가 가늘면 확 깨 버린다(축구선수 베컴 같은 경우). 게다가 발음이 부정확하면 대사를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최악이다. 정우성은 목소리 톤 자체는 좋은데 발음이 안 좋고 조인성은 목소리 톤이 어린애 같고 약간 혀 짧은 소리를 낸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기력=대사 전달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음성 언어가 커뮤니케이션의 일부에 불과하듯 목소리가 안 좋고 발성이 나빠도 표정, 눈빛, 시선,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게다가 혼신을 다한 연기는 어쨌든 표가 난다. 사실 로맨스물에서는 정확한 대사 전달력보다는 남녀 주인공들간의 케미스트리와 감정 연기가 더 중요하다. 그래야 로맨스물의 궁극적인 지향점인 '내가 연애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조인성은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드라마를 많이 본 편은 아니지만 영화는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이 드라마에는 멋진 OST와 어우러진 기억에 남을 만한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이끌리는 필연적인 이유였다. 

남자 주인공은 평생 맹목적이고 전폭적인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이다. 스스로도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살아갈 이유가 없으니 막 살아가는 그런 청년이다. 약하고 외롭고 세상을 믿지 못해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여자 주인공에게서 강한 동질감을 느낀다. 게다가 여자 주인공은 '쓰레기 같은' 자신을 믿고 희망을 찾으려고 한다. 평생 누군가에게서 신뢰와 기대를 받아본 적이 없는 그에게 여리고 약한 여자주인공은 변화하고 싶고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내부의 감춰진 욕망을 자극했다.

그는 결국 안지 2개월 남짓 된 여자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건다. 이 부분에 대한 불만은 없다. 시간의 양보다는 질이다. 나를 전폭적으로 믿어주는 2개월된 사랑의 존재감은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30년 지인들, 심지어 가족들보다 훨씬 더 크다. 

여자 주인공이 타인의 이야기로 가장해 무심하게 털어놓은 자신의 과거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이해해주자 남자주인공은 본능적으로 눈물을 쏟는다.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없이 흐르는 눈물. 누구나 억울한 내 마음을 알아주면 눈물이 나고 그 사람이 말할 수 없이 고맙다. 남들이 하도 형편없다고 말하니 스스로도 쓰레기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가치를 알아준 단 한 사람. 그런 그녀는 남자 주인공에게 세상은 물론 자신의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랑도 결국에는 자기애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통해 자신이 인정 받고 다른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어준 그녀를 사랑하는 감정, 그것은 결국 그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닐까?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남자 주인공의 사랑에 수긍할 수 있었다. 

나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제외한 모든 애정 관계는 자기애의 다른 형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넓게 보면 부모-자식 관계까지도). 진정한 사랑은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계산적이지 않다고 말하지만(이 드라마에서도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한다), 나는 남녀 간의 관계야말로 주고 받는 게 있어야 오래 유지되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 때그 사람과 함께 있음으로써 나를 더 좋아하게 될 때나를 빛나게 해 주는 그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곧 그 사랑에 필연성을 더해준다고 생각한다본인이 그 사실을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간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가 배우들의 멋진 외모, 아름다운 배경과 OST, 극적인 내용으로 감정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가슴을 저리게 하는 드라마였다면 그 다음으로 본 '괜찮아, 사랑이야'는 같은 메시지를 보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이고 세련되게 녹여낸 작품으로 느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4년 만에 드라마를 보는 기쁨을 다시 느끼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