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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Nov 09. 2018

'괜찮아, 사랑이야'에서의 가족과 관계

정으로, 연민으로, 의리로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랑

이 드라마도 본방 때 조금 봤었다. 두 남녀 주인공이 서로에게 와인을 끼얹는 부분과 끝부분에 남자 주인공이 환시를 깨닫는 부분은 확실히 기억이 난다. 


공효진을 좋아하지만 극 초반 인물들의 직설적인 대사와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계속 보지 않았고, 환시를 깨닫는 부분도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따라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 드라마도 케이블에서 찾을 수 없어 유튜브에서 보았는데 보고 나서 '수작'이라는 생각을 했다. 드라마는 긴 호흡으로 봐야 하는데 일부 장면만 보고 'Go or Stop'을 결정하는 건 나의 나쁜 습관이다.

노희경 작가는 생활 대사를 쓰는 것으로 아는데 이 드라마의 대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대화에서 많이 벗어난 느낌이다. 사실, 이 부분이 거슬려서 본방을 보지 않았다. 주요 배역의 직업이 정신과 의사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드라마를 계속 보다 보니 거슬리던 대사들에 어느덧 익숙해졌다.

공효진의 연기는 늘 좋지만 이번에도 나는 조인성에게 눈길이 갔다. 바로 전에 같은 배우가 출연한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보았지만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의 조인성이 현실과 동떨어진 비극의 주인공이었다면 이번에는 평범한 현실 남자친구(현실에서 그런 외모는 없지만) 같은 느낌이었다. 

전작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연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최대한 절제하고 내면으로 감추는 그런 연기를 보여주었다. 인물에 대한 해석을 충분히 하고 잘 표현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붓아버지에게 걸핏하면 얻어맞고 엄마가 학대당하는 모습을 힘없이 지켜만 봐야 했던 어린 시절. 그 무력감과 초라함이 싫어서 거울을 보고 자신감 있고 당당한 표정과 말투를 흉내내고 마초 연습을 했던 과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알지만... 초라함과 무력감만은 참아낼 수 없었다. 그래서 여자친구를 사랑함에도 떠나려고 했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는 외침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특히 남자들)이 이 지점에서 같은 행동을 한다. 실직하면 애인에게 이별 선언을 하고 그럴듯한 모습으로 컴백할 때까지 주위와의 연락을 끊는다. 많은 경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다. 

스스로 부여한 모멸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립과 은둔을 택한다. 갑자기 이별을 통보 받은 주위 사람들의 마음보다는 자신의 아픔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상황을 솔직히 인정하고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맞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자존심 앞에서 사랑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하지만 '괜찮아, 사랑이야'의 여자 주인공은 자신을 떠나려는 행동이 잘못임을 남자 주인공에게 설명하고 깨닫게 만든다. 남자 주인공이 돌아와서 여자 주인공에게 자신을 도와달라고 매달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현실이나 드라마에서 그런 남자를 보기는 어렵다.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그렇게 하기 힘들어한다. 이 드라마의 남자주인공은 그 일을 아주 멋있게 해낸다. 여자친구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빨리 현실감각을 회복하고 그녀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한 결론을 만들어낸다.

능글능글한 바람둥이에서 한없이 약한 소년, 착한 아들, 냉소적인 작가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조인성에게 다시 한번 놀라움을 느꼈다. 재능은 타고나는 부분이 많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연습과 노력으로 커버될 수 있는 것 같다. 하긴 한 사람이 10년, 20년의 세월과 노력과 함께 문외한에서 전문가로 바뀌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앞으로 조인성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를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을 보는 눈도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드라마에서 말하려는 큰 메시지는 모든 결점과 과오에도 불구하고 정으로, 연민으로, 의리로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 그런 사랑이다. 그것이 연인 사이이든, 가족 간의 관계이든, 아니면 잘 모르는 타인과의 관계이든.

나에게 노희경 드라마가 감동적이면서도 불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애증으로 얼룩진 그 징글징글한 가족간의 관계를 너무 잘 그려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가족에 대한, 가족 간의 애증을 경험해본 나는 그런 불편한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설정이 싫다. 

본인이 잘 모르면서도 작가가 그런 상황을 소재로 활용했다면 아마 금방 밑천이 드러나고 들통이 날 것이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런 관계, 내지는 관계에서 오는 내적 갈등을 직접 경험해본 것 같다(그냥 내 느낌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많은 드라마 안에서 이토록 끈질기게 이 주제를 잡고 늘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도 세월과 함께, 경험과 함께 노희경 작가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구질구질하고 초라하고 볼품없지만 이 가족 관계를 빼고는 인생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삶은 생각만큼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다. 가족, 연인, 친구... 동료.. 이런 것들이 없으면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다. 

가족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14년간 하고도 자신을 그렇게 만든(악의는 아니었다 하더라도) 가족과 한 집에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살 수 있을까? 3살 지능이 되어버린 장애인 남편을 돌보며 가장과 엄마 노릇을 해낼 수 있을까? 

나는 극적 긴장과 갈등을 위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직접 살아보지도 못한 상황을 설정하는 작가들이 싫었다. 아마 그래서 많이 보지 않았음에도 노희경 드라마를 싫어했을 것이다. 그건 마치 성폭행 피해자들이 그런 소재의 영화나 책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내가 지뢰밭을 피하듯 걸러내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았던 이유가 내 안의 불안과 피해의식이라는 것을 안다. 지금은 나도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보고 내 내적 갈등과 화해했기 때문에 이제는 비교적 편하게 이런 드라마도 보는 것 같다. 

한때 남편은 갈등이 고조되기만 하면 시청을 중단해버리는 나에게 질려서 '당신이랑은 드라마를 안 보겠다'고 선언한 적도 있다.  한창 재미가 붙으려는 순간에 채널을 돌려버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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