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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라이 Aug 19. 2018

누구의 마음 속에도 우물 하나쯤은 있다

'뭔가가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는 법

의문이 생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면, 상처는 오히려 사람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아닌가?
 
그건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 단, 감당할만한 상처일 경우에. 내 경우에 비추어보면 상처가 너무 깊으면 사람은 의욕을 잃고 아예 무기력해진다.


상처란 곧 결핍일 것이다. 결핍은 공백이자 콤플렉스다. 


우주가 공백을 허용하지 않듯이 사람도 균형을 추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채우기 위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노력하게 된다.
 
그렇다면 상처의 순기능도 있는 셈이다. 사람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니까. 유년기 트라우마가 없다면, 성장의 원동력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내 남편은 내 가 직접적으로 아는 한에서 상처 없는 사람의 전형이다. 사람은 누구나 깊게 들여다보면 내면의 상처를 안고 있다. 따라서 '상처 없는'이라는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다.


잘 알게 되면 누구의 마음에서도 우물 하나쯤은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20년 가까이 살아본 결과, 나는 내 남편이 상처 없는 인간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무결점 인간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결점은 너무 많다.
 
유년기 트라우마가 없는 사람은 정서가 안정되어 있다. 기분이 나쁠법한 일도 쉽게 잊어버리고 잠깐 혼자만의 방에 있다가 금방 나온다. 순간에 반응하기 때문에 현재의 즐거움을 온전히 느낀다.
 
다만 변화의 욕구도 적다. 스스로 만족하기 때문에 변화의 동기를 느끼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성격 자체가 변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기에 부적합하다. 주변 환경,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동화되는 스타일이기에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펼쳐 나가기가 힘든 것이다.
 
담배를 끊겠다고 마음먹어도 술자리의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면 펴야 하고, 와이프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면 안 피웠다고 거짓말로 무마해야 한다. 피운 사실이 들통나서 추궁을 당하면, 다시 한번 끊어보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만다. 그런데 속마음으로는 여전히 끊고 싶지 않다. 애초에 끊겠다고 결심한 것도 와이프의 설득 때문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이건 유년기 트라우마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향성 對 외향성’의 문제기도 하다.


내향성 인간으로서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같은 조건에서도 내성적인 사람이 유년기 트라우마를 경험하기 쉽다는 생각이 든다.
 

내성적인 사람은 기본적으로 외부 자극에 불편해하고 감정을 안으로 쌓아둔다. 성격 자체가 집중력을 발달시키기에 유리하다. 어떤 경우에는 집중력이 집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과학적인 근거는 전혀 없이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과 생각만으로 말해 보자면 그렇다.
 
결국, 유년기 트라우마는 양날의 칼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좋게 벼려져서 명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다시 태어난다면 그 칼 자체를 피하고 싶다. 아무리 명검이 될 수 있더라도 칼은 칼이다. 맞으면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주어진 조건을 피할 수 없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부조리하고 인생은 불공평하다.
 
다시 한번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려 본다.


있는 것만으로 참는다. 뭔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며 얻게 되는 몇 안 되는 장점 중 하나다.


깊게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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