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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ers Jun 06. 2024

18년 전 오늘 밴쿠버에서 겪은 $ 80,000 사고.

[나의 이야기]

2006년 2월 14일, 


저는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유학을 떠났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한지 모르겠지만,


유학원의 추천으로 밴쿠버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쪽으로 유학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집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기에,


비교적 저렴하게 가려고 머리를 굴렸던 것인데요.


지금 돌이켜보면 차라리 미국 시골로 가는 게 어땠을까 싶습니다.



밴쿠버에 도착한 후 2달 동안,


남편과 사별 후 홀로 사셔서 저녁에도 잘 뵙기 힘든 아주머니의 홈스테이,


거실을 방으로 개조한 올드보이 풍의 중국인 홈스테이,


유학원 현지 지사장님 댁을 거쳤습니다.


남들과 다른 출발이었지만 그 또한 제게 배움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유학원을 통해서 콘도를 렌트했습니다.


822 Homer St, Vancouver.



위치는 너무 좋았습니다.


밴쿠버 공공도서관 바로 앞에 있고,


밴쿠버 도심 중앙에 위치해서 어디든 도보로 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전에 살던 사람이 인테리어를 잘 꾸며놔서,


룸메 구하기가 수월하여 저는 렌털 비용을 안 내고 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밴쿠버에서 유학생들은 원 베드룸은 2명, 투 베드룸은 3명이 살았습니다.


제가 사는 집은 투베드룸이어서 3명이 살 수 있었고, 렌털 비용이 $ 1,300이었습니다.


화장실이 딸린 큰 방은 $ 900, 작은 방을 $ 570에 룸메이트를 구했습니다.


저는 거실에 살았고요.



큰 방 + 작은 방의 임대료 $ 1,470를 받으면,


집주인에게 $ 1,300의 월세를 내고, 나머지 $ 170은 전기세 및 티브이 비용을 냈었습니다.


다만, 제가 초기 부담한 비용은 $ 6,550이었습니다.


보증금 $ 650 - 다시 돌려받는 비용


월세 3개월치 선납 $ 3,900 - 룸메들을 통해서 회수 가능한 비용


전 임차인이 사놓은 가구 비용 $ 2,000 - 크게 감가가 발생하지 않는 비용으로 거의 회수가 가능했습니다.



그렇게 월세는 아끼며 생활비만 내며 살 수 있도록 세팅을 했습니다.


이제 열심히 공부하고 행복한 일만 남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을 저를 더 강하게 성장시키려 했나 봅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오늘, 2006년 6월 6일 밤 11시 07분.


666이 3개나 겹치는 날이라 악마가 나를 괴롭힌 날인가라고 생각했던 그날.



그날 학원에서 주최한 야외 액티비티가 있었습니다.


해변에서 비치발리볼을 하고 와서 곯아떨어진 상태였는데,


꿈에서 갑자기 사이렌 소리가 났습니다.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고, 잠에서 깼습니다.


하지만 사이렌 소리는 계속 울렸습니다.



눈을 떠보니, 


그 순간 큰 방에서 살던 어린 커플 중 남자가 뛰쳐나오면서 말했습니다.


“형, 큰 일어났어요!!!”



그는 폭우 속에서 비를 맞은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어있었습니다.


뛰쳐나오는 그 남자의 옆으로 물도 함께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치 영화 하드레인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물은 점점 더 많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욕실에 있는 모든 수건을 가져와서 물길을 막으려고 둑을 세웠지만,


점점 불어나는 물을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야! 바닥에 있는 물건 중 비싼 건 다 위로 올려!”


라고 외치며, 제 물건 중 중요한 물건을 테이블이나 책상 위에 올렸습니다.



난생처음 겪는 충격적인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정신은 말짱했습니다.


룸메들에게 정신 차리고 빨리 물길을 막을 수 있도록 각방의 수건들 다 챙겨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물길을 화장실 쪽으로 가도록 만들었습니다.



혹시 모를 감전에 대비하기 위해 3명의 룸메들을 모두 탁자나 의자 위로 올라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상황을 막고 있던 긴박한 순간,


소방관이 들어왔습니다.


일단 스프링클러를 끄고, 화장실 변기를 부셔서 거기로 물이 빠지게 했습니다.


15cm 두께로 차 있던 물이 조금씩 낮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다 빠지자 소방관들은 철수를 했고,


물에 흠뻑 젖은 4명만 남았습니다.


작은방 룸메 방에는 물난리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서 룸메는 거기서 잤고,


큰방의 두 명은 외부 모텔에서 자라고 했습니다.


저는 살짝 젖은 소파 위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사실 잠이 안 왔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했으니까요.



아침이 밝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서


큰 방 룸메에게 어떻게 된 것인지 물어봤습니다.


제가 살던 콘도 건물은 벽이 시멘트 벽이 아니었습니다.


두꺼운 합판 같은 걸로 되어 있었는데요.


화재를 대비해서 각 방과 거실에 많은 수의 스크링클러가 있었습니다.


큰 방 룸메는 세수를 하고 나면 수건을 옷걸이 걸어서 벽에 걸어두었는데요.


그걸 스프링클러에 걸었던 것이죠.


스프링클러 중간 센서가 유리로 되어있었는데,


그날 그 센서가 깨지면서 물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죠.



제가 살던 집이 5층이었는데,


저희 양 옆집,


4층의 저희랑 같은 위치의 집과 양옆집,


3층의 저희랑 같은 위치의 집과 양옆집,


2층의 회의실.


이 모두의 천장과 벽에 물이 스며들어 새거나 얼룩이 들었다고 하네요.



유학원에서 확인해 보니,


대략 $ 80,000 가량의 피해가 발생한 것 같다고 했습니다.


너무 놀라워서 웃음밖에 안 나왔습니다.


뉴스에나 나올 것 같은 일이 나한테 발생했다고 생각하니 황당했습니다.



이 피해를 저 혼자 다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사고를 친 룸메한테 물어보니,


룸메는 한국의 집에 말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이유는 그 룸메가 자기 여자친구랑 같이 저희 집에 살았거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룸메에게 좋게 얘기를 했고,


룸메 집에 연락을 해서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미국에 사는 사촌형이 있어서,


밴쿠버로 와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임시 거처로 자리를 옮겼고,


저는 중국인 집주인에게 엄청난 압박을 받았습니다.


너 이거 다 해결하지 않으면 고소할 거니까 알아서 하라고요.


그 와중에 큰 방 룸메와 룸메집에서는 조금씩 책임을 안 지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해결하지 않으면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으니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그때 제 학원의 원장님이셨던 한국계 캐나다인 분께서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너무 넋이 나가서 영어로 제대로 설명을 못하자,


한국어를 알아들으니 찬찬히 설명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 설명을 한참 들으시더니 여기저기 알아봐 주셨습니다.



그때 캐나다 법들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1. 캐나다는 각 건물마다 보험을 들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제가 살던 건물에도 보험이 들어있었습니다.


사고를 내 저희 집을 뺀 나머지 집은 그 건물 보험으로 커버가 가능했습니다.



2. 저희 집도 집주인이 보험을 들었으나,


자기들 보험료가 올라가는 것을 막고자 저한테 부담하라고 협박을 한 것이었습니다.


제 임대료에 보험료가 포함이 되어있는 것임에도 그걸 제게 말 안 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중국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인이 참 나빴네요.



3. 최악의 경우, 


정말 제가 80,000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더라도,


만 18세를 지난 제가 변제할 능력이 안된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추심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영주권도 시민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요.


대신 변제하지 않으면 그 나라에 세 계속 살 수는 없습니다.


3번은 정말 최악의 경우에 고민할 수 있는 것이며, 절대 악용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암튼 2번을 안 다음부터 집주인과 저의 관계가 바뀌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제가 독촉을 당했다면,


그 뒤부터는 제가 독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집에 문제가 발생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알지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 거라는 점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집수리는 가입한 보험으로 수리할 수 있다고 들었다. 


보험으로 깨끗하게 잘 수리하기 바라며, 


사고 이후 살지 못한 기간만큼 선납한 임대료를 다시 돌려주길 바란다.”



그렇게 하드레인 사건은 1 달이라는 시간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와 함께 저를 괴롭혔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 큰 내상을 입은 저는


끝내 멘털 회복을 못하고 사고 발생 2개월 후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때 엄청 큰 금액을 날렸고,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도 위안을 삼는다면, 


1. 캐나다인도 잘 모를 캐나다 법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2. 어떤 선택하기 전에 최악도 한 번쯤 생각하고 고민해야 한다.  

3.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고민하고 찾아야 후회가 없고 내 것이 된다.


를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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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

당신만의 의미 있는 인생을 사세요.


유캔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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