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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ers Jun 27. 2024

내게 주어진 첫 번째 업무.

[젤리의 제국]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다들 얘가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잘 챙겨줘.”


“네!”


마치 군대라도 온 것처럼 다들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11년 전 자대 배치를 받았던 때처럼,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나는 부사장에게 내 자리를 안내받았다.



“너 노트북 들고 왔냐?”


“네, 혹시 몰라서 개인 노트북 들고 왔습니다.”


“그럼 우선은 니 노트북 쓰고, 다음 달에 네가 쓸 업무용 노트북을 사줄게.”


“네, 알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입사 첫날부터 업무용 노트북이 지급되지 않은 것이 말이 안 되지만,


그때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매일 아침 10시부터 빠르면 새벽 1시까지, 늦으면 새벽 4시까지 근무했었고,


주 7일을 일하다 보니 잠이 부족해서 항상 머리가 멍해있었기 때문이다.


벤처 정신, 스타트업은 다 이렇게 고생해서 일하고 나중에 보상받는 것인가 싶었다.


특별히 이상하게 생각하기보다 어떻게든 여기서 많이 보고 배워서 성장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팀원들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지만,


자신이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를 더욱 괴물로 만들었다.


잘못을 계속 저지르다 보면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는지도 모르고,


그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깨달았다.



결국 나는 22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업무용 노트북을 지급받지 못했다.


놀랍게도 내 개인 노트북으로 회사 업무를 봤었다.



대외적으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원들을 위해 장비 지급을 아끼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가


왜 내게는 업무용 노트북을 지급하지 않았는지 나는 너무 궁금했다.


하지만 물어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와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사장! 얘한테 다음 달에 우리가 갈 해외 워크샵 관련 자료 조사 및 정리 업무부터 줘.”


“네, 제가 안내하고 요청드리겠습니다.”



나는 의아했다.


‘갑자기 웬 워크샵이지?


무슨 해외 워크샵을 말하는 거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내게 부사장이 말했다.



“저희가 다음 달 8일부터 12일간 중국과 싱가포르 워크샵을 갑니다.”


“아 그래요? 이런 경우가 자주인가요?”


“작년까지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갔는데, 올해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상하이와 싱가포르에서 우리가 묵을 숙소, 놀거리, 먹을거리, 마실거리등을 우선 정리해 주세요.”


“말씀하신 카테고리대로 정리를 하면 될까요?”


“네, 우선 정리해 주세요. 그 뒤에 추가적인 것들은 따로 말씀드릴게요.”


“넵!”



전사가 해외 워크샵을 가는 것이 처음이라 놀랐지만,


색다른 경험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정리했다.


집중해서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아주 잘 갔다.



보통의 회사였다면 18~19시 사이에는 퇴근을 했을 거지만,


우리는 아무도 퇴근하지 않았다.



18시가 되자, 그가 말했다.


“오늘 저녁은 명도 할머니 국수에서 저녁을 먹을 거다.


다들 먹고 싶은 메뉴를 부사장한테 말해라.


너는 부사장이랑 같이 저녁 식사 포장해서 와라.”



우선 퇴근 시간이 되었지만 아무도 퇴근하지 않는 것에 놀랐지만,


식당을 대표의 지시로 정해지는 것에 더 놀랐다.



“야! 너 뭐 하냐?


부사장이 편하게 하려면 네가 메뉴 취합을 위해서 받아 적어야 할 거 아니냐!”


“아, 네… 제가 미처 생각을…”


“야 인마, 정신 안 차릴래? 이거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죄송합니다.”


“어서 메뉴 받아 적고 다녀와라. 그리고 2명당 만두 1 접시씩 추가하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순간 당황했다.


‘배려해 주는 것에 대해서 감사를 표해야 하는 문화인 건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어른이 어린이한테 말하여 듯한 말투로 하네.’



“메뉴 취합 다했습니다.


부사장님과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어서 잘 다녀와라.”



저녁을 사러 가는 길에 부사장에게 물어봤다.


“원래 이렇게 저녁을 항상 같이 먹나요? 그리고 매일 야근을 하나요?”


“대표님께 못 들으셨나요? 저희 거의 매일 야근합니다.


다 같이 저녁을 먹고요.


빠르게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아… 네…”


뭔가 많이 이상했지만 아직은 내가 경험한 것이 작기에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보기로 했다.



“저, 음식 다 받았으면 사내 메신저로 수령했고 출발한다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네, 그럼 제가 메시지 남길게요.”



사내 메신저라고 따로 있지는 않았고, 페이스북 메신저를 사용했다.


“부사장님과 음식 수령했습니다. 이제 출발합ㅣㄴ다.”


음식을 든 상태로 메시지를 작성하다 보니 마지막에 오탈자가 생겼다.



별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그가 내게 아주 크게 소리쳤다.



“야 인마!!! 너는 도대체 뭘 바꾸겠다는 거냐!”

나는 내게 왜 그러는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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