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의 제국]
그와 논의해서 입사 일자를 정했다.
“너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냐?”
“저 5월 1일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직 3주나 남았는데 그동안 뭐 하려고?”
“중간에 잠시 여행도 다녀와야 하고, 어떻게 일할지 생각도 좀 하려고요.”
“너 아직도 정신 안 차렸냐?
어떻게 여행 갈 궁리부터 하고 있냐?”
“아, 미리 예매를 해놓은 것이라 변경이나 취소할 수가 없어서요.”
“그럼 담주부터 출근하고 중간에 휴가 줄 테니까 여행 다녀와.”
“네, 알겠습니다.”
논의라고 하기엔 통보에 가깝지만, 그렇게 입사일자를 정했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뭐 하냐?”
“저 특별히 계획은 없습니다.”
“나 생일 파티하는데, 너 특별히 초대해 줄 테니까 놀라워.”
“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그날 선약이 있었지만 차마 그 말을 하지 못했다.
뭔가 거절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의 생일날이 되었다.
여의도에 있는 식당으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소통했다.
전 국민이 대부분 쓴다는 카카오톡 대신에 말이다.
그때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입사한 후에 알았다.
회사 내부 메신저를 페이스북 메신저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외부와의 소통을 통일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생일 파티를 하는 여의도 식당에 도착하니 모르는 얼굴들이 보였다.
“야, 인사해라! 너랑 함께 할 우리 개발팀장들과 디자인팀장이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도 잘 부탁드려요.”
다 같이 맛있게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대화는 그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가 마무리를 했다.
그는 어떤 모음에서든 자기가 리드하기를 원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가 말했다.
“여기 근처에 괜찮은 바가 있으니 거기 가서 한잔하자.”
“네, 좋아요.”
다 같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끌려가듯 함께 나갔다.
술집에 도착하자마자,
개발팀장님 중 한 분이 잠시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저 혹시 잠시 나가서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저기 오늘 형 생일인데, 생일 축하한다는 영상 하나 찍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래요? 어떻게 찍으면 되나요?”
“일단 생일 축하드려요.라는 멘트의 영상과
간식송을 저희가 개사했는데 한 소절만 불러주시면 됩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떤 것을 만드려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고,
왜 이런 것을 만들려는 지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굳이 안 할 이유가 없었고,
처음 본 사이에 이런 부탁을 하기 쉽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응했다.
영상 촬영이 끝난 후 물어봤다.
“이거 왜 찍으시는 거예요?”
“형 생일이셔서 축하드리려고 찍고 있는데요.
정확한 것은 나중에 입사하시면 아시게 될 거예요.”
그때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입사한 후 알게 되었다.
그의 생일을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마음에서 우러나와서도 있었지만,
그의 서운함이 표출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서운함을 표출하는 날이면,
모든 구성원들이 2시간 동안 꼼짝없이 잡혀서 그의 푸념을 들어야 하니까.
나는 이런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생각에 부풀어 있던 내가 드디어 입사를 했다.
“어서 와라.
여기 다들 모여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