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제가 저를 인지한 나이가 5살이었습니다.
그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셨습니다.
제 아버지가 조부모님의 늦둥이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할아버지는 1911년생이셨고, 할머니는 1915년생이셨으니,
제가 나이를 인지할 때쯤 두 분은 이미 70대셨습니다.
지금이야 70대는 한창이라고 하지만,
그 당시에 내 또래 친구들의 조부모님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거나 60대셨습니다.
어린 마음에는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심에 자랑스럽고 든든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이 문화가 있으니
두 분이 제 또래 친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보다 연장자시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두 분께는 총 5명의 친손주가 있으셨습니다.
그중 3명은 큰 아버지의 자녀들인데 나랑 띠동갑이상 차이 났고
서울에 있다 보니 명절 때가 아니면 거의 오지 않았습니다.
적적해하실 두 분을 위해서 어머니는
저와 제 동생을 1~2주에 한 번씩 주말마다 조부모댁으로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보통의 남자애들보다 더 활동적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 나가자고 매번 졸랐습니다.
자전거 타러 가자고, 놀이동산 가자고 말입니다.
한 번도 안된다는 말씀 없이 데려가주셨습니다.
단, 꿀 한 스푼 먹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그 연세에도 저를 케어해 주셨다니.
그때는 몰랐는데, 정말 대단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정말 끔찍하게 사랑해주셨구나 싶습니다.
할아버지와 한 가지 큰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나이였습니다.
왜냐면 버스비를 안 내도 되는 나이가 미취학 아동이었으니까.
암튼 어린이대공원에 갔다가 할아버지를 길이 엇갈렸습니다.
할아버지는 저를 잃어버리셨고, 저는 할아버지를 못 찾았습니다.
크게 운 기억은 없고, 버스비를 안 내고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할아버지를 찾을 수 없자,
할아버지댁 가는 버스를 타고 할아버지 댁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지금도 종종 어머니와 얘기합니다.
그때는 똑똑했었는데…라는 말과 함께… ^^;;;
저는 옛날 얘기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항상 할머니 곁에서 잤는데, 그때마다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매번 다른 이야기보따리를 푸셨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를 해주신 걸까.
만약 창작하셔서 해주신 것도 있다면 정말 대단하신 거란 생각이 듭니다.
두 분은 항상 저의 입학, 졸업 등 중요한 순간을 챙겨주셨습니다.
항상 좋은 것을 해주려고 하셨고, 맛있는 것을 먹이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해 주시고 챙겨주시는 것이
사랑과 관심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나이가 들고 육아를 해보니 알겠습니다.
두 분의 음력 생신이 똑같아서 항상 같이 생신잔치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분은 같은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생신 4일 전, 할머니는 생신 4일 뒤에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서로 많이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경증 치매의 할아버지가 중증 치매 할머니를 보시고는
박복희 씨 사랑하오라고 하시면
할머니가 씩 웃으시며 식사를 하신 것을 보면 말입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어머니께서 할아버지 목욕을 부탁하셨습니다.
그동안 어머니가 해오셨는데 그날은 내게 부탁하셨습니다.
나도 뭔가 모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목욕을 씻겨드렸습니다.
할아버지의 수염이 너무 자라 있어서 깔끔하게 면도를 해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좋으시죠?라고 여쭤보니 씩 웃으시며 그래 좋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침 눈에 초점이 거의 없던 할아버지가
병원에 가신다고 나기신 모습이 내가 본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할아버지께 효도를 제대로 해드린 적이 없지만
그 면도 하나로 저는 마음의 위안을 삼았습니다.
오늘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돌아가신 지 20년도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그립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너무 감사하고 사랑하고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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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
당신을 위한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내세요.
유캔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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