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리의 제국]
뉴욕의 대부분 음식은 나와 잘 맞았다.
나 자체가 음식을 가리지도 않고, 양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은 나와 정말 맞지 않았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물은 얼음물이었다.
나는 서울에 올라온 2012년 6월부터 얼음물을 마시지 않았다.
상온수만 마셨다.
상온수가 혈액 순환에 좋고 체내 흡수에 좋다는 말을 봐서였다.
또한 차가운 물을 먹으면 배탈이 나서 설사를 하는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몇 년 동안 얼음물을 마시지 않았으니 내 장은 더욱더 상온수에 적응되어 있었다.
나는 뉴욕을 너무 좋아했지만 한 가지 불만이 있었다.
뉴욕에는 공중 화장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지하철 역에 화장실이 없었다.
식당에 가도 주문하지 않은 손님은 절대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나처럼 장 트라볼타(어릴 때 급X이 자주 오는 친구를 그렇게 불렀다.)에게 화장실은 너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아침에 로비에서 모였을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뭔가 꺼림칙했다.
“다들 모였지? 오늘은 윌리엄스버그 쪽을 한번 돌아보자.
PM들이 정리한 내용 보니 구석구석 아기자기한 곳들이 많더라.
간 김에 인스타그램 포스팅용 사진 많이 찍어라.”
“네, 알겠습니다.” X 9
iOS 개발팀장이 살면서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너무 좋아요. 안 그래도 오늘쯤 윌리엄스버그 가면 딱 좋겠다 싶었어요.
근데 이렇게 먼저 말씀해 주시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해요.”
“작년에는 맨해튼 번화가만 돌아다녔으니 이번에는 변두리도 돌아봐야지.
그래서 일부러 오늘 조금 더 일찍 모이라고 한 거다. 이 녀석들아.”
“감사합니다.” X 9
‘어? 그럼 식당도 현지식으로 먹을 수 있으려나…’
라고 희망회로를 돌리고 있는 내게 그가 말했다.
아니 우리에게 말했다.
“거기 근처에 괜찮은 한식당이 있다더라. 오늘은 거기 가보자.”
“아니, 도대체 왜 전 세계에서 미슐랭 식당이 많기로 소문난 이곳 뉴욕에서 한식당만 가나요.
한국에서 못 먹는 식당을 갔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후회스럽다.
결국 우리는 윌리엄스버그에 있는 한식당으로 향했다.
근데 내가 알아본 식당이었다.
정확히는 그가 한식당을 알아보라고 했고, 내가 서칭 하다가 찾은 식당이었다.
내가 왜 그 식당을 예약했을까라는 후회를 했다.
계속 생각해 봐야 속상하기만 하고 내 손해이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여기 한식당도 얼음물을 줬다.
근데 오늘은 느낌이 별로 안 좋아서 목만 축이는 정도로만 마셨다.
음식은 맛이 괜찮았다.
한국에서의 맛과 비슷한 맛이었다.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맛을 뉴욕에서 먹는다는 게 문제였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윌리엄스버그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위해서 1인당 수백 장씩 찍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다 보니 어두워져 갔다.
“자 이제 그만 찍고 다운타운으로 가자.
가서 브로드웨이 쪽 구경하다가 저녁 먹자.”
“네, 알겠습니다.” X 9
다 같이 지하철을 타고 브로드웨이로 이동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올라가는데 갑자기 큰일이 났다.
배에서 신호가 왔다.
아주 큰 무엇인가가 뱃속에서 꼬르륵 거리며 몸 밖으로 나오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호랑이에게 물려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 죄송한데 화장실이 급해서요. 다녀와도 될까요?”
“여기 근처에 화장실이 있냐?”
“주변에 찾아보고 알아서 다녀오겠습니다.”
“그러렴. 화장실 다녀와서 애들한테 메시지 보내라.”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변에 알아서 찾아볼 정신이 없었다.
그냥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무리 둘러봐도 화장실이라고 갈만한 곳이 없었다.
이성은 없었고, 본능만 남았다.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근데 입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화장실만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걸 받아들일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문을 열고 들어갔다.
2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입구 앞에 버티고 있었다.
평상시에 그의 모습을 봤다면 다시 나왔을 것 같지만, 나는 너무 간절했다.
“저… 죄송하지만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잔뜩 화가 난 것 같이 무서운 표정의 그가 세상 그 누구보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2층으로 올라가세요.”
영어로 말했기에 정확히 저렇게 표현했는지 알 수 없지만, 2층으로 가라는 말은 이해했다.
간발의 차이라는 말이 그 순간 내게는 너무 적절했다.
나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전장의 장수 같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시며 모든 상황을 종결시켰다.
다시 나오며 그와 마주쳤고, 너무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그도 괜찮다며 다시 한번 인자한 미소를 보여줬다.
장 트라볼타인 나에게 뉴욕은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