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젤리의 제국]

by Changers

“이번 명절에는 연휴에 3일 더 추가해 줄 테니 다들 집에 잘 다녀와라.


그리고 명절 보너스도 줄 테니 부모님께 용돈도 드려라.”


“넵! 배려해 주시고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X 9


내일은 해가 서쪽 해서 뜰 것 같았다.


갑자기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궁금했는데,


그날 저녁에 알 수 있었다.


그의 페이스북에 그가 말했다.


“열심히 일해준 우리 팀원들에게 명절 연휴에 휴가를 3일 더 주기로 했다.


그리고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 있게 명절 선물과 별개로 명절 보너스도 지급하기로 했다.


회사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팀원들을 어떻게 더 챙길지 나는 항상 고민한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좋은 회사와 팀원 간의 이상적인 관계이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지만 특별히 그에 이의제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후, 문제가 하나 생겼다.


명절 2주 전에 릴리스하기로 했던 신규버전이 여러 가지 이슈로 인해서 지연이 되었다.


결국 명절 연휴전날까지도 해결하지 못했다.


3일 더 추가해 주기로 했던 휴가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연휴 첫날 버스표를 겨우 끊어서 고향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가 원하는 삶이 맞는가?’


‘너무 지치고 힘들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오랜만에 내려가는데 아무 생각하지 말고 가족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스트레스를 풀고 오자.”


예전에는 명절이 되면 항상 친구들을 만났지만


그동안 일 때문에 보낼 수 있는 명절 연휴 기간이 짧아서 거의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마음을 먹고 제대로 놀자고 마음먹었다.



나를 포함해서 항상 만나는 친구가 4명이었는데,


1명이 보이지가 않았다.


“야! 한 명이 안 왔노?“


”금마 요즘 집에 처박혀가 안 나온다. “


”무슨 일 있나? “


”요즘에 이래저래 일이 좀 꼬여서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 같더라.


우울증이 와서 요즘 집에만 있다.


내가 나오라고 해도 안 나온다.


니가 전화해서 한번 꼬시봐봐.”



그 녀석에게 전화했다.


“어, 무슨 일이고?”


“무슨 일이 기는 명절이니까 보자고 전화했지.”


“오늘은 니들끼리 놀아라. 담에 보자. “


”나온나. 내가 오늘 풀코스로 쏘께.


네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께.“


”아니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좀 쉬께. 담에 보자. “



이상했다.


그 친구를 알고 지낸 지 11년이나 되었는데,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알았다. 그럼 너네 집 앞으로 갈 테니까 얼굴이나 한번 보자."


"아니, 그냥 다음에 보자."


"지금 택시 타고 가고 있으니까 나온나."



몇 번의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지못해 나온 그 친구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가장 최근에 봤을 때보다 15킬로 이상 체중이 빠져 있었다.


그 녀석이 이렇게까지 마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얼굴은 삶의 어두움이 가득했다.



"무슨 일이고?"


"별일 없다."


"별일이 없기는. 그런 놈이 살이 이렇게 빠지나?"


"약을 끊었더니 살이 빠졌다."


"무슨 약?"


"우울증 때문에 먹는 약."


"뭐 때문에 우울증이 왔는데?


무슨 일이고 말해봐 봐."


"아이다. 그냥 사는 게 재미도 없고, 돈 버는 것도 별 의미가 없고 그래서."


"이마이 성공해 놓고 갑자기 와 그라노."


"주변에 친한 성공한 행님들도 돈 많이 벌어봐도 사는 게 무의미할 때가 있다 하더라.


아마도 그런 시기가 온 것 같다."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았노.


우리 나이에 집 있고, 차 있고, 월에 몇 천씩 버는 게 쉽나."


"그래, 맞다. 쉽지 않은데 막상 벌고 나니까 조금 허무하다고 할까.


돈 많이 벌면 즐겁고 좋을 것 같았는데 안 그렇네."



뭔가 단단히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몇 시간 뒤에 서울로 다시 올라가야 할 나는 그 친구와 시간을 더 보낼 수가 없었다.



"내 연말에 또 내리 올 거니까, 그때 잼나게 놀자. 내가 쏘께."


"아이다. 괜찮다. 이제 노는 것도 별 재미가 없다."


"야 임마, 니 진짜 와이라노.


내 12월에 꼭 내리 올 테니까 마음 좀 잘 추스르고 있어라.


알겠지?"


"알겠다. 조심히 올라가라. 와줘서 고맙다."



집에 돌아오면서 계속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친구였기에 걱정이 컸다.


별일이 아니기를 속으로 빌었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고속 터미널에서 전화했다.


3번이나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저 전화받을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 거겠지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버스를 탔다.



밤 11시쯤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전화를 보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온 머리털이 다 섰다.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친구가 울먹이며 말했다.


“야! 금마가 죽었단다."


"어? 에이 무슨 말이고.


니랑 헤어지고 새벽 3시에 나랑 만났는데 금마가 와 죽노."


"조금 전에 금마 동생한테 전화가 왔는데 죽었단다."



나랑 헤어지고 9시간 뒤쯤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에게 전화했다.


베프 중 하나가 조금 전에 죽었는데 다시 부산을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목소리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다녀오라고 했다.



다시 부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조금 더 좋은 말을 해줬더라면,


내가 조금 더 붙잡고 얘기를 했더라면,


내가 잘 위로를 해줬더라면..."


자책하며 후회를 했다.



2015년 9월 추석 당일 새벽,


그날 그 친구와의 대화가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마음이 풀릴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고 며칠이고 함께 있었을 텐데...



나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난 뒤 몇 시간 후에


그렇게 혼자 삶을 마감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들었을까.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드니까 너무 힘들었다.



3일 동안 빈소를 지키며 다른 친구들과 함께 그 친구와의 추억을 얘기했다.


화장까지 지켜보며 그 친구가 좋은 곳에 가서 편안하길 빌었다.



그렇게 소중한 친구를 먼저 보내니 삶에 대한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다.


'한 번뿐인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있나?'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얼마나 희생해야 하나?'


'지금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그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결심을 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대표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친구 잘 보내주고 왔니?"


"네, 배려해 주신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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