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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니가 나한테 이래?

[젤리의 제국]

by Changers Mar 06. 2025

‘폭풍전야.’


큰 사건이 터지기 직전 고용한 분위기를 말하는 관용어다.


회사에서 그의 큰소리나 잔소리가 들리지만 않으면 뭔가 불안하다.


회사에서 아무 일이 생기지 않으면 따뜻한 봄날의 어느 날을 마주했을 때처럼 따뜻하고 평온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뭔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직감적으로 드는 것이라 명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일까.



회사 메신저로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나 여자친구 만나고 저녁에 사무실 갈 거다.


다 같이 저녁 먹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일하고 있거라.”


“네, 알겠습니다.” X 9



오후를 넘어 저녁으로 가는 시간.


각자 자기가 할 일들을 집중해서 하고 있던 그 순간.


그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가 출근하면 가장 먼저 살피는 것이 그의 기분이다.


그의 기분에 따라서 그날 회사 분위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요 며칠 그는 웃으면서 밝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아주 어둡고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iOS 개발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형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인다. 조심해야겠다.”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혹시 컨펌받을 것이 있다면 내일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 니 말대로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역시 센스!!”


“형은 내 말만 들으면 아무 문제가 안 생긴다니까요?”


“그래, 니가 있어서 든든하다.”


iOS 개발팀장도 자화자찬이 많은 친구였다.


나랑은 다른 성향인데, 굳이 반박해서 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러려니 하며 받아주었다.



그가 갑자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 대상은 바로, 여자친구였다.


아무래도 여자친구와 싸웠나 보다.


그래서 말한 시간보다 빨리 왔나 싶었다.


자신의 말을 잘 안 들어준다는 둥.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둥.


거기에 상스러운 욕까지 더해서 여자친구 험담을 했다.


내가 그를 이해 못 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여자친구 험담을 회사 구성원들에게 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화남을 배설하기 위해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왜 희생시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친한 친구에게 말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 팀원들에게 말이다.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려고 노력했다.



그때 iOS 개발팀장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는 일하기도 바쁜 시간에 대표의 연애얘기를 듣는 것이 불편해서 일부러 표정을 안 좋게 지었다고 했다.


우리 중에서 그에게 대들 수 있는 사람은 그가 거의 유일했다.


여기서 대들 수 있다는 말은 대들어도 상스러운 말을 듣거나 심하게 화내는 것을 안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날은 좀 이상했다.


그가 엄청나게 화를 내더니, iOS 개발팀장에게 상스러운 욕과 함께 심한 말들을 했다.


화의 불길은 그에게서 우리 전체로 번져 나갔다.


“내가 니들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냐?


니들 월급 꼬박꼬박 잘 챙겨주고, 인센티브도 1년에 2번씩 챙겨줬잖아.


생일 때마다 선물 챙겨주고, 명절 때에는 명절 선물도 챙겨줬잖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옷도 사주고, 수시로 맛있는 음식과 영화도 보여줬잖니.


나는 정말 니들 한 명 한 명을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챙겨줬는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니?”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 못 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가 말한 이것저것 챙겨준 부분은 다 사실이었다.


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온도가 달랐다.


나는 그가 그렇게 챙겨준 이유가 페이스북 포스팅을 위하거나 이런 순간이 왔을 때 생색내려고 한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이 돌려받고 싶어서 해준 것을 잘 알기에 받는 것이 좋지 않았다.


세상에 공짜 없고, 결국 그에 상응하는 것을 그는 요구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저녁은커녕 아무적도 먹지 못한 상태에서 3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으나 벌써 밤 9시가 되었다.


배는 고프고, 졸리고, 영혼은 빠져나갔다.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길 간절히 바라던 그 순간,


iOS 개발팀장이 나서서 그에게 사과를 했다.


“형, 죄송해요. 제가 요즘 이래저래 개발이 잘 안 풀려서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고민도 많고, 뜻대로 되지 않으니 표정 관리가 잘 안 된 것 같아요.


형 이야기를 무시하려거나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이어서 그랬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니가 회사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하고 헌신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니가 그런 태도를 가지는 것은 잘못된 거야.


앞으로는 그러지 않도록 고쳐야 해.”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일하고 정리하고 영등포에 밥 먹으러 가자.


다들 양갈비 어떠냐?”


“너무 좋아요!” X 9


“기분이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야죠.”


“그럼 다들 15분 내로 정리해라.”


“넵, 알겠습니다.” X 9



다행히 그의 기분이 풀렸다. 

그렇게 폭풍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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