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종종 내 국적에 대한 질문을 받곤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해외 유학 생활을 시작하고 16년 후에야 한국에 정착했기에 내가 내 자신의 국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많이들 궁금해한다. 처음에는 이런 관심이 부담스러웠지만 한국인이니 외국인이니 왈가왈부하는 친구들의 우스갯소리에 의외로 빠르게 적응했다. 그들의 시선으론 내가 국경의 울타리에 서 있는 사람이기도 하니 그 호기심을 이해할 수밖에.
참고로 내 국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은 내 외모에서 비롯된 것은 아마도 아닐 거다. 난 이국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거니와 군대에서는 농촌에서 감자 캐다가 갑자기 입대한 사람같이 생겼다는 말도 들어봤을 정도다. 패션, 말투, 걸음걸이, 음악 취향 등등 내 이국성의 증거는 다양할 수 있지만, 외모 하나만큼은 후보군에서 자신 있게 제외할 수 있다.
가끔은 전혀 일면식이 없는 분들도 내 국적에 대해 질문을 하신다. 한번은 버스 정류장에서 모르는 아주머니가 내가 외국 사람인지 여쭈어보셨다. 정치 캠페인 전략 때문에 한 질문이라고 하셨는데, 정작 왜 내가 외국인인 거 같다고 생각하셨는지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육지가 아닌 하늘에서도 반가운 기내식 카트 소리와 함께 국적의 혼란이 발생했다.
“비빔밥과 소고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준비해 드릴까요?”
대서양 어딘가에 떠 있는 구름 위, 허기를 달래고 있을 때 그만큼 반가운 소리도 없다. 반복되는 이 멘트는 카트의 드르륵 소리가 커질수록 점점 선명해졌다.
난 언제나 비빔밥이 아닌 기내식 메뉴를 고른다. 귀찮기 때문이다. 귀찮다기보다는 강박증의 증거인데, 소스가 곁들여진 음식이 빈틈없이 골고루 섞어져야지 마음이 편해서 그렇다. 짜장면을 먹을 때도, 비빔냉면을 먹을 때도 모든 구석이 잘 비벼졌는지, 액체로 된 장과 양념이 고체로 된 음식의 모든 면과 접촉했는지 확인해야만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물냉면이나 잔치국수같이 국물에 아예 담가져 있는 음식을 선호하는 편이다.
지금은 이 강박에서 많이 벗어난 편이지만, 비빔밥은 아직도 완벽하게 넘지 못한 언덕이다. 치약 같은 고추장을 쭉 짜서 밥을 넣고 비빈 후 야채가 골고루 섞였는지, 모든 밥알이 적어도 선홍색을 띠고 있는지 확인한 후에야 한술 뜰 수 있다. 심지어 기내식 비빔밥은 언제나 고추장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다. 정말 그렇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다. 아, 그리고 공중에서 비빔밥을 먹으면 배에 가스가 유독 잘 찬다. 어쩌면 그 강박에서 못 벗어나 소화가 잘 안된 건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거다.
드르르륵. 탁.
드디어 기내식 카트가 내 옆에 멈추었고, 난 승무원분께 소고기로 부탁드릴 준비를 마쳤다.
“익스큐즈미 썰. 위 해브 비빔밥 앤드 비프.”
“지현아, 넌 생각할 때 영어로 해 한국어로 해?” 난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의아하다. 나에게 생각은 비언어적인 느낌일 뿐이다. 메뉴판을 보고 “비싸네”라고 중얼거리기보다는 그저 비싸다는 느낌과 감정이 있을 뿐이다. ‘비싸다’라는 묵언의 혼잣말보다는 거부감을 느낄 뿐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스튜어디스의 질문은 비언어적으로 작동하는 내 자신을 처음으로 의심하게 했다.
‘설마 나 지금 한국어를 영어로 듣는 경지에 다다른 건가?’
3초 정도 고민을 했다. 영어로 대답하는 게 맞을까? 한국어로 대답하는 게 맞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승무원이 나에게만 갑자기 영어로 바꾸어 질문했을 이유가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미 준비했던 말을 뱉자.
“소고기요.”
“크헉.”
스튜어디스의 반응은 내가 한국어를 영어로 들은 게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아버지는 낄낄거리시고 깔깔거리시다 못해 껄껄거리셨다. 난 좀 꿀꿀해졌다. 내가 한국 사람같이 안 생겼나?
“어디 사람인 줄 아셨어요?” 라고 아버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여쭤보셨고, 난 ‘제발 그냥 웃으며 지나가 주세요 제발’이라고 머릿속에서 외쳤다. 내가 한국어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네팔 분이신 줄 알았어요.”
정말 기상천외한 답이었다. 이 비행기의 출발지도 목적지도 네팔, 심지어 그 근방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이유에 있어서 네팔이라는 국가를 떠올렸는지 너무나도 궁금했지만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내 앞에 있는 소고기 요리만 멍하니 쳐다봤다.
물론 외국인이거나 네팔 사람으로 인지된 것이 불쾌했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저 날 보고 조금의 의구심도 없이 내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한 게 신기했다. 심지어 스튜어디스는 매일 국제적인 승객들을 대하며 빅 데이터를 상시로 수집하는 직책 아닌가. 내 생김새가 이 승무원분의 경력을 부정하는, 속된 말로 그의 ‘짬밥’을 몰락시켰다. 그의 후배가 몰래 이 사건을 회자하며 킥킥거리며 무시하는 미래, 그의 선배는 ‘너 뭐 믿고 그랬어’라는 꾸중을 듣는 미래가 그려졌다.
드르르륵. 탁.
승무원분은 당혹스러움을 재빨리 감추고 이미 내 뒷자리로 이동해 한국어로 된 질문을 했다.
“비빔밥과 소고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준비해드릴까요?”
쳇. 비빔밥으로 부탁드릴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