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풍경 속, 단단해지기를

나는 아직 나를 잘 믿지 못한다

by 밍뚜


2018년 10월. 나는 마침내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그 자격증을 얻기 위해, 법정 교육 1520시간을 이수해야 했다.
학원에서 푼 첫 모의고사 점수는 고작 40점대.
특강을 듣고, 스터디에도 참여했지만 점수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시험은 1년에 단 두 번뿐.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 상반기까지 다시 기다려야 했다.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과목당 40점 이상, 총점 60점 이상. 단순히 과락만 넘기면 된다고들 했지만, 나는 그 기준에 한참 미달이었다. 하지만 함께 공부하던 언니들과 이모들이 스터디를 꾸리고, 점수를 공유하며 서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자 왠지 모르게 지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일주일. 거의 밤을 새다시피 공부했다.
그리고 결국, 시험에 합격했다.

기뻤다. 단지 자격증을 땄다는 사실보다, 드디어 나도 사회로 나갈 수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어엿한 사회인이 된다는 것, 그 타이틀이 내겐 중요했다.

첫 직장은 집 근처의 화상 전문 병원이었다. 병동을 새로 오픈하며 간호조무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자마자 바로 지원했다.
면접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딱딱한 표정, 어딘가 맞지 않는 옷, 무거운 공기. 완벽한 ‘평가의 자리’였다. 질문은 대부분 환자 안전과 감염관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책에서 배운 이론과 실습 중 경험한 사례를 정리해 성실하게 답했다. 그게 나름의 강점이었을까.

나는 최종 합격했다. 6월 24일, 출근일을 통보받았다.
출근 전날 밤. 들뜨면서도 묘하게 두려웠다. 예전의 직장생활이 반복될까봐 혹은 조금은 더 나아질까싶어서 기대와 불안이 엉망진창이었다. 일을 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도 ‘직장 생활’이라는 말은 아직 조금 무서웠다. 병원 일을 시작하기 전,
나는 잠시 사무직으로 일한 적이 있었다. 그곳은 내게 상처로 남았다.
직급을 앞세운 말투, 눈치와 기류, 그리고 쉽게 꺼낼 수 없는 일들까지.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병원을 선택했다. 이번엔 달랐으면 했다. 이번엔, 나를 좀 더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
근무 전에 병동에 인사드리러 간 날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간호사실이 바로 왼편에 펼쳐졌다.
선생님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나는 허둥지둥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밍뚜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신다는 이야기 들었어요. 다들 인사해요~”

수간호사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병동을 한 바퀴 돌며 인사를 시켜주셨다. 차지 선생님, 액팅 선생님, 그리고 이동보조 선생님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여기가 바로, 그 악명 높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 병동이라는 걸.
처음부터 긴장의 연속이었다. 누가 누군지,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수 선생님이 물으셨다.


“근무시간 들으셨어요? 3교대인데, 시간은 알고 계시죠?”

“아… 교대근무는 알고 있는데, 정확한 시간은 잘 모르겠어요.”

“아이참~ 제일 중요한 걸 왜 위에서 안 알려줬대! 자, 여기 적어줄게요. 이 시간엔 병동에 꼭 내려와 있어야 하니까 잘 기억해요.”

순간, 심장이 툭 떨어졌다. 마스크 속의 표정은 얼른 갈무리했다.
괜히 표정이라도 굳어 보이면 뭐라고 하실지 몰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조금 진정 후에는 옅은 자괴감이 온 몸을 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왜 아직 나를 믿지 못할까. 작은 말 한마디에도 자꾸 움츠러드는 걸 보면. 이제는 좀 나아질 때도 되지 않았나. 마음이 어떤 상태든 늘 자동처럼 튀어나오는 말.


“네. 꼭 숙지하겠습니다.”


행정 직원을 따라 11층에서 지문 등록과 서류 제출, 계약서 작성까지 끝내고 다시 처음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렇게, 병동이라는 조용한 전쟁터에 나의 첫 출근이 시작되었다. 낯선 풍경 속, 나도 조금씩 단단해지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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