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텨야만 했던 밤

4화는 조금 늦게 도착했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by 밍뚜



근무를 시작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데이가 아닌 3교대 스케줄이 주어졌다.

낮에 자고 밤에 출근해야 했지만, 생체시계는 여전히 예전 리듬에 묶여 있었다.
낮잠이라기엔 길고, 숙면이라기엔 애매한 수면.
눈을 떠보면 지독한 피로가 먼저 따라왔다.

나이트 출근은 밤 9시 30분.
집 앞 정류장에서 20여 분을 달려 병원 앞에 도착한다.

그 길목에 있는 편의점.
나는 매번 같은 에너지음료를 집어 들었다.

졸음을 막아주는 것도, 피로를 확실히 덜어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작은 캔 하나가 내겐 일종의 각오였다.


‘오늘도 무사히.’


그 마음을 삼키고 병원 지문기에 출근을 찍는 루틴.

9시쯤 병동에 도착하면 이브닝 선생님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간호조무사 선생님에게서 그날의 물품 보충, 린넨 교체,
다음날 아침 처리할 서류들을 인계받는다.

아직 나이트 전체 인계가 시작되기 전,
그 짧은 틈이 내가 숨 돌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업무 중 하나인 제파논을 만들었다.
멸균 증류수 1L에 염화벤잘코늄 10cc를 정량해 섞는다.
파란 거품이 이는 그 짧은 순간, 잠시 생각이 비워진다.
익숙한 냄새, 단순한 손놀림.
아무 말 없이 몰입할 수 있는 시간.

소독제를 붓고, 트레이에 거품을 낸 뒤 뜨거운 물로 헹군다.
열 개가 넘는 트레이를 닦다 보면 어느새 이마엔 식은땀이 맺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트레이를 닦고 있던 중,
나이트 차지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이게 깨끗하다고요?”


나는 얼어붙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소독티슈로 닦았습니다.”


선생님은 팀카트 바퀴를 가리켰다.

“한 달이나 됐는데, 이 정도면 좀 심하잖아요.”


그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간호사실의 공기가 일순간 정지된 듯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눈총이 지금 내 정수리에 박히고 있다는 걸.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다음엔 더 신경 쓰겠다고 말했지만,
속에서는 억울함과 자책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냥 굴러만 가면 되는 거잖아...’

잠깐 그런 생각이 스쳐갔지만 곧 사라졌다.

그리고—

호출벨이 울렸다.

가야 했다. 가지 않으면 컴플레인이 걸릴 수 있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선생님의 눈빛이 먼저였고,
그 앞에 선 나는 말도, 숨도 멈춰야 할 것 같았다.


“뭐해요? 환자가 부르잖아요.”
“아, 네…”


환자 요청을 간호사실에 다시 전달하러 돌아왔을 때,
선생님의 표정은 더 굳어 있었다.


“환자 앞에서 짜증 냈어요? 내가 직접 들었어요.”


“아무리 환자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간호사실에서 확인하고 말씀드리면 되잖아요.
왜 환자 앞에서 뒷말 나오게 해요?”


나는 어떤 환자를 말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런 말을 한 기억도 없었다.

하지만 해명은 끝까지 들리지 않았다.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세요. 아무도 안 잡아요.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 말은 칼날처럼 날아와 꽂혔다.
주먹 쥔 손에도 힘이 빠지고,
머리는 무겁게 울렸다.

그날 이후,
나는 감시받는 느낌 속에 일했다.

자세, 표정, 트레이 놓는 소리까지.
무엇 하나 허투루 해선 안 됐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피 말리게 할 수 있다니.


가끔 간식을 가져가면, 선생님의 말투는 잠시 부드러워졌다.
그래서 점점, 업무보다 선생님의 표정을 먼저 관찰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엔 이런 말까지 들었다.


“에너지음료는 왜 그렇게 사요? 돈 많으세요?”


그날 이후로는 텀블러에 담아 다녔다.
들키고 싶지 않았다.
자극하고 싶지 않았다.

밤 12시쯤.
간호정보조사지를 정리하려 간호사실 뒤편 소파에 앉았다.
소음도 만들지 않고, 조용히.

그런데 또다시 들려온 말.


“선생님, 숨어 있지 말고 나와서 하세요.
내가 꼭 찾아야겠어요?”


너무도 참담했다.

조용히 정리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조차 ‘숨어 있는 행동’이 되어버렸다.

'네…'라는 대답 외엔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종이를 정리하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마음도 같이 흐트러졌다.


볼펜을 눌러 책상을 두드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였다.


언젠가는 그 볼펜으로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람을 향한 시선이 아닌, 감정을 향한 칼끝이었다.

그럼에도 새벽근무는 멈추지 않았다.
2시간마다 라운딩하고, 호출에 응답하고,
기록하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일하기 싫으면 그만두세요.'


그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저....

첫 직장을,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또 그만뒀다'는 말이 싫었다.
그 말을 듣고 실망할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렇게 반복되는 호출 사이.

액팅 선생님이 나를 바라보다 조용히 물었다.


“선생님, 오늘 좀 힘드셨어요? 안색이…”


문득, 목이 바짝 말라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뇨…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은 짧았지만, 그 한마디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 밤.
마음이 녹아내릴 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다행이었다.

창밖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하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이 간호사실을 천천히 감쌌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나이트 근무가 끝나서가 아니었다.
오늘 저녁,
그 선생님과 마주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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