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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Jul 25. 2021

차량용 공기청정기가 생필품이 된 이유

각자의 소비기준 이해하기

 미세먼지가 심하던 어느 날, 남편이 차량용 공기청정기를 사고 싶다고 했다. 우리 부부의 경우 경제권을 내가 가지고 있어서 남편이 용돈으로 쓰는 돈 외에 지출이 필요하면 나에게 허락을 구하고 있다. 나는 단칼에 잘라 그 손바닥만 한 기계가 차의 공기를 얼마나 좋게 해 줄 것인지 믿을 수 없고, 이번 달 생활비를 거의 다 썼기에 살 수 없다고 답했다. 순간, 그의 눈빛은 서운함을 뛰어넘어 원망으로 가득 찼다. 그는"이거 그냥 사달라는 게 아니고 꼭 필요한 거라서 사야 한다고 얘기한 거야."라고 다시 힘주어 말했다. 꼭 필요하다고? 꼭 필요하다는 것은 생필품에나 쓰는 말 아닌가? 그러니까 내 기준에 꼭 필요한 것은 그것이 없으면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없는 것 '칫솔, 치약, 샴푸 혹은 쌀, 휴지' 같은 것들인데, 남편에게 꼭 필요한 물건의 기준은 나의 그것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는 "맑은 공기를 마셔야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고, 나는 차에서 이동하는 시간 동안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러고 보면 인간에게 쌀, 휴지보다 더 필요한 건 맑은 공기가 맞다. 그 기계가 얼마나 성능을 발휘할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날 남편은 본인 기준의 생필품을 샀다.


그날 남편이 구매한 차량용 공기청정기


 그리고 한참 뒤, 겨울 캠핑용 침낭을 고르며 2차전이 시작되었다. 캠핑을 즐기는 우리 부부는 한겨울을 대비해 침낭을 구매하기로 했고 남편이 사고 싶은 침낭을 골라 나에게 링크를 보냈다. 나는 링크를 클릭해 보자마자 지난번 차량용 공기청정기 때와 같이 단칼에 '이건 안돼' 모드에 돌입했다. 이유는 '내 기준으로' 침낭을 살 때 하나당 10만 원 미만의 가격을 책정해두었는데, 남편이 10만 원이 훌쩍 넘는 침낭을 골라왔기 때문. 그는 지난번과 같이 서운한 얼굴을 하고는 입을 꾹 닫아버렸다. 30분 정도 정적이 흐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미안해, 자기가 충분히 알아보고 비교해서 골랐을 텐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도 생각 없이 아무거나 사자고 했을 리가 없는데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한 건 너무했다 싶었다. 먼저 사과를 하자 그는 그제야 서운한 마음을 쏟아냈다. 며칠 전부터 틈만 나면 침낭을 찾아봤고, 이 제품 저 제품을 다 비교해봤는데 가격이 싼 것은 내구성이 좋지 않고,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도 편하고 디자인도 제일 예쁜 게 이거였다고. 더군다나 캠퍼들의 리뷰까지 꼼꼼히 살펴본 후 구매를 결정한 그는, 내 기준만으로 매번 단칼에 '이건 안돼'라고 말하는 게 아쉽다고 했다.


 두어 번의 갈등 후에 우리 부부는 각각 어디에 돈을 아끼지 않고 사용하는지 생각해봤다. 남편은 자동차와 자동차 관련 용품, 맛있는 음식, 그리고 좋은 물건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물건을 살 때 여러 후보군 중에 항상 더 비싼 물건을 고른다. 가장 좋은 제품을 고장 없이 오래 사용하는 게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자동차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음식과 물건에 돈을 잘 쓰지 않는 편이다. 특히 먹어 없어지는 음식에 큰돈을 쓰느니 그 돈으로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치킨을 5마리 먹거나 반복해 쓸 수 있는 물건을 하나 더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구매품을 고를 때는 비싸고 좋은 물건보다는 늘 가성비에 기준을 두고 고른다. 때문에 지금도 남편과 외식을 할 때 오늘 먹은 소고기가 어제 먹은 인도식 카레가 그 돈만큼의 가치가 있었나 되짚어 본다. 그에게 얘기하면 '에이 또 왜 그래'라고 할 게 뻔하기에 남편 몰래 머릿속으로만 오늘 지불한 음식값을 대신해 옷을 샀으면 2개는 샀을 텐데. 그거면 몇 해 동안 중요한 자리에서 예쁘게 입을 수 있을 텐데 생각한다.


인도식 카레 전문점 <강가>에서 한끼. 80,500원을 계산했다. 예쁜 뷰 값일까?


 워낙 검소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에 '아껴야 잘 살지'라는 생각이 몸에 배어있는 나는 가끔 그가 거침없이 돈 쓰는 게 무섭다. 그런 나도 단 한 군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건 바로 '여행'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해외여행 가는 것을 너무 좋아했지만, 코로나 시국에는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호캉스로도 만족한다. 어떤 사람들은 비싼 음식을 사 먹으면 내 몸이 건강해지기라도 하지, 고급 호텔에 가서 자는 돈이야 말로 하룻밤에 사라져 버린다고 훨씬 아깝지 않냐고 되물을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마다 각자가 열심히 번 귀한 돈을 아낌없이 쓰고 싶은 출처가 다르다는 거다.


 결혼을 하고 참 많이 배운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다른 누군가와 돈을 소비하는 기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적 조차 없다. 무엇이 꼭 필요한 물건이고, 어떤 일에 얼마 정도의 비용을 사용할 건지는 내 기준에만 맞춰 결정하면 그만이었다. 독립하기 전에는 나에게 소비에 있어 꼭 필요함의 기준을 알려준 본래의 가족과 함께 살았고, 같은 기준을 물려준 이들과의 삶에서는 이런 차이를 경험하지 못했다. 남편도 나도 서로 다르다고 해서 '당신이 틀렸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코로나가 잠잠해진다면 제주 신라호텔에 가고 싶다.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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