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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Jul 11. 2021

남편과 세대차이를 느낀 순간

남편은 신해철, 나는 젝스키스

 남편과 나는 6살 차이가 난다. 실제로 나이차가 크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둘이 있을 때는 남들이 보면 초등학생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유치하게 놀기 때문에 체감상으로도 세대차이를 많이 느끼지 않는다. 그런 우리가,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에게 세대차이를 처음으로 느꼈던 때는 결혼 첫 해 그가 학창 시절 좋아하던 가수를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날 우리는 거실 쇼파에 나란히 누워있었는데, 내가 "자기 어릴 때는 어떤 가수가 인기였어?"라고 물었고 그는 "더 블루"라고 답했다. "더 블루?" 내가 되묻자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손지창, 김민종 몰라?"라고 말했다. 손지창, 김민종 두 사람 모두 유명한 배우이니 이름과 얼굴은 알지만 그들이 가수로 활동한 줄은 몰랐다. 심지어 그들이 주연으로 연기한 대표작도 나는 한편도 보지 못했다. 포털사이트에 '더 블루'를 검색해봤다. 1992년 데뷔, 그러니까 1987년 생인 내가 6살 때 활동을 시작해 10살 무렵까지 인기를 얻은 그룹인 거다. 내가 6살 때 남편은 12살이었으니까 초등학생 시절의 그는 청춘미 넘치는 더 블루 형들을 동경했다.

 

출처: 일간스포츠/ 20년 뒤, 젝스키스가 다시 모여 활동을 할거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나는 HOT와 젝스키스 세대다. <응답하라 1997>의 성시원(정은지) 같은 친구들과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시절을 내내 같이 보냈다. 학교는 HOT파와 젝스키스파, 혹은 SES와 핑클을 좋아하는 아이들로 나뉘었다. 그러다가 얼마 못가 젝스키스가 해체 발표를 했고, 나는 어느 파에도 속해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 정상에서 해체한다는 건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젝스키스의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드림콘서트에 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 처럼 느껴졌다. 검은 정장을 입고 나와 젝스키스로서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그들을 향해 서럽게 우는 친구를 보고 있자니 나까지 눈물이 났다. 그런 내게 손지창, 김민종은 너무 먼 시대의 이야기였다.


출처: SBS 고스트스테이션/ 내가 남편과 같은 해에 태어났다면 나 역시 고스트스테이션을 즐겨 들었을 것 같다.


 더 블루를 동경하던 초등학생은 중학교에 가서 엄청난 음악 애호가가 되었다. 신해철과 이승환을 알게 됐고, 고스트 스테이션이라는 라디오를 들으며 성인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캠핑을 즐기는데 캠핑장에 가면 서로 좋아하는 노래 한곡씩 틀어주기 게임을 한다. 그러면 남편은 여지없이 신해철의 노래를 고른다. 나는 신해철이라는 가수는 잘 모르지만 그의 음악을 들으며 시대는 변해도 음악은 변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이라는 음악을 듣고 나서는 묘하게 위로받는 기분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아온 남편 덕분에 내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게 꽤나 신기하고 재미있다. 김동률을 전람회로 기억하는 남편과 전람회 노래를 들으며 "어? 이거 김동률 목소리인데?" 하는 '김동률은 알고 전람회는 모르는 나'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지치지 않고 설명해주는 남편 덕분에 나의 왕성한 호기심이 충족되고 있다. 성장기의 문화, 그러니까 음악, 유행하던 패션, TV 프로그램 같은 것들은 서로가 궁금해하고 설명해주며 얼마든지 이해하고 맞춰갈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거다. 요즘은 신해철, 이승환을 뛰어넘어 김광석과 빛과 소금의 노래를 즐겨듣는 나는, 그 시절의 대중문화를 설명해줄 수 있는 대백과사전이 옆에 있어 수시로 지적 호기심을 채울 수 있다.


 반면에 내가 더 크게 체감하는 세대차이는 바로 '체력 차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30살의 나와 36살의 남편 사이의 체력 차이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금요일 밤에 퇴근하자마자 경주까지 차를 몰고 내려가 금토일 3일을 연달아 여행하고 월요일에 바로 출근하기를 즐겼다. 평일에는 매일 밤 1시까지 통화를 하고 다음 날 9시에 출근을 했다. 그럼에도 늘 생기 넘치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5년이 지나 내가 35살, 남편이 41살이 되자 세대차이를 뛰어넘는 체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쉽게 지치고 늘 집에 있고 싶어 하는 남편을 내가 타박하면 그는 "자기도 마흔 살 되어봐."라고 말한다. 내가 40이 되면, 그는 또 46살이 된다. 이건 평생 좁힐 수 없는 간극이다. 젊은 아내와 사느라 매번 타박을 받는 남편이 불리한 걸까? 나이 많은 남편과 사느라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다 쓰지 못하는 내가 불리한 걸까? 그가 90년대 초반의 대중문화의 문을 내게 열어주었듯이, 30대 중반인 나의 에너지를 남편에게 열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이번 다름을 본격적으로 극복해보고자 다음 주부터 커플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코로나가 다시 심해져 운동 센터에 등록할 수 없다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산책 이상의 운동을 할 계획이다. 이 글을 본 그가 이번에는 나의 세계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준다면 좋겠다.




올해 여름휴가에서 노젓기 배틀, 이 때는 남편이 이겼다.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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