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 어떻게 분담하시나요?
결혼하기 전에 맞벌이를 하는 유부 친구에게 물었다. "집안일 어떻게 나눠서해?" 그의 대답은 "더 잘하는 사람이 할 수 있을 때 해" 그러면 더 잘하는 사람이 하기 싫을 때는? 혹은 잘하는 것의 균형이 맞지 않아 상대방은 잘하는 게 10가지 중 1개밖에 없을 때는? 자로 잰 듯 딱 떨어지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대답의 모호함을 참지 못하고 질문 폭탄을 날렸는데, 친구는 몇 년 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고 지금은 억울한 사람도 잘난 사람도 없이 집안일이 자연스럽게 분담되고 있다고 말했다.
햇수로 결혼 4년 차가 된 우리는, 누가 더 집안일을 많이 했네 누가 더 밥을 많이 차렸네 하는 문제로 말다툼을 하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제는 '더 잘하는 사람이 할 수 있을 때 하기'가 자연스럽게 실천되고 있다. 무엇이든 대충 하지 못하고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의 남편은 화장실 청소 같이 공들여했을 때 비포&애프터가 확실한 종류의 청소를 좋아한다. 주로 내가 친정에 갔을 때 그는 와인 한 병을 마시고 3시간에 걸쳐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내가 돌아오면 그가 화장실 문을 열며 '짜잔!' 하고, 내가 ‘꺄! 이렇게 깨끗하게 청소했어?’ 반응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는 샤오미 창문 청소기를 구매한 이후로 화장실 청소만큼이나 창문 청소에도 열을 올리고 있는데, 조그만 기계가 유리에 딱 붙어서 요리조리 움직이며 청소하는 모습을 넋을 놓고 보게 된다며 주말이면 창문 청소기를 들고 이 방, 저 방 분주히 움직인다.
반면에 남편은 평소에 할 수 있는 작은 청소는 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쓰레기를 바로바로 분리수거함에 넣는다던지, 조금 쌓인 설거지를 즉시 한다던지, 여기저기 어질러져 있는 물건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다던지 하는 것들. 그는 주로 날을 잡고 지금부터 시작! 하고 하루 종일 청소하는 걸 즐기기 때문에, 평소에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치워가며 사는 걸 좋아하는 나는 주중에 여기저기 쌓여있는 쓰레기를 보며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말이 되면 진공청소기 돌리기는 기본이고, 화장실부터 창문 청소, 러그 빨래까지 모두 그가 도맡아 해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려 한다.
대신 주중에는 재택근무 일수가 많은 내가 주로 청소를 한다. 여름이 되면서 즉시 내다 버리지 않으면 냄새가 나는 음식물쓰레기를 이틀에 한 번 꼴로 내다 버리고, 그가 대충 싱크대에 올려둔 분리수거 쓰레기를 정리한다. 또 잠시만 방심하면 짐 더미가 쌓여 식탁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는 식탁 위의 물건들을 수시로 제자리에 넣어줘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작은 청소를 잘하는 사람과 대청소를 잘하는 사람으로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하는 집안일은 그 강도가 약한 대신, 더 빈번히 움직여야 하는데 티가 많이 나지 않아 칭찬을 못 받는 게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다.
그런데 더 억울한 일은 따로 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내 의도와 달리 어떤 지인은 남편이 집안일을 잘해서 좋겠다고 한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집안일은 여자의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 거다. 나 역시 가끔은 청소에 열을 올리는 귀여운 남편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그런 나 자신이 스스로도 이상하다. 이유는 과연 내 남편도 밖에 나가서 '우리 아내가 청소를 엄청 잘해'라고 자랑을 할까 싶어서다. 왜 청소를 잘하는 아내는 당연하고, 청소를 잘하는 남편은 칭찬받아야 할까? 아무튼 나는 청소도 집안일도 잘하는 남편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그런 남편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내가 참 이상해서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억울함과 자랑스러움이 뒤섞인 엉성한 기분이 든다.
생각해보면 내 남편은 가부장적이지도 않고(요즘 시대에 가부장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조차 어색하다), 빨래나 음식 하는 법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평등하게 생활하고 있어서 집안일을 누가 더 한다거나 남녀가 평등하지 않다거나 하는 문제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게 살아온 부모님 세대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계속해서 우리가 평등한가, 우리의 행동과 말투가 서로를 존중하고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앞치마를 하고 주방에 서있는 엄마가 나오는 광고를 볼 때마다 분노한다. 또 가까운 지인의 집만 해도 명절 때 여전히 여자들만 음식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행히도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친가에서도 시가에서도 불평등을 겪어본 일이 없다. 그러니 더는 불평등에 억울해하거나 당연한 평등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는 남편과 아내를 떠나 더 잘하는 사람이 할 수 있을 때 하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부부들에게 ‘더 잘하는 사람이 할 수 있을 때 스스로 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