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짐니 Sep 12. 2021

우리가 이틀간 대화를 안 한 이유

사랑하는 방식의 문제


 지난주에는 남편과 싸워서 이틀간 말을 안 했다. 그리고 이틀째 되는 날 잠자리에 들어온 그가 슬며시 먼저 누워있던 내 손을 잡았다. 그의 새로운 화해 방식이다. 사실 나는 조금 서운했을 뿐이지 그리 화가 많지 나지도 않았다. 화가 나면 입을 꾹 마음을 쾅 닫아버리는 그가 내면의 문을 열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고, 이번에는 그 시간이 이틀이나 걸렸다.


 다툼의 이유는 신혼초부터 우리의 고질적인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는 그것이다. 바로 사랑하는 방식의 문제. 사랑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상대가 받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줄 건지, 내가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줄 건지를 놓고 종종 다투고 있다. 내가 받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달라는 건 늘 내 쪽이고, 본인이 줄 수 있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있다는 건 남편 쪽이다.


 글로도 여러 번 썼지만, 그는 참 자상한 남편이다. 내가 기분이 우울한 날이면 온 거실을 누비며 춤을 춰주고, 내가 먹고 싶다고 한 음식은 잊지 않고 사 온다. 또 내가 집을 비웠을 때 온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해놓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도 바라는 게 생겼다. 올해 들어 그에게서 꽃 선물을 받아본 기억이 거의 없는 거다. 작년까지만 해도 꽃을 빈번하게 선물해줘서 '이 사람이랑 살면 평생 꽃 걱정할 일은 없겠다' 했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남편(남자)에게 여자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주는 선물이 꽃이다.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그에게 집 앞 어디에 꽃집이 있고, 장미꽃 한 송이도 괜찮으니 꽃을 사다 줘 라고 말했는데, 또 한주를 기다리고 기다려도 꽃을 받을 수 없었다. 외출하고 돌아오는 그의 빈손을 보고 실망하기의 연속이었다. 재택근무를 끝내고 남편과 나란히 침대에 누워 쉬다가 "꽃은 언제 사주는 거야?"라고 물었다. 그리고 이틀간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애쓰고 있는 그에 대한 인정 없이 부족한 부분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날 내가 어떻게 했으면 우리가 다투지 않았을지 알고 있다. 남편은 인정 욕구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다. 나는 몇 년의 결혼생활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고, 작은 일이라도 그가 노력한 부분을 칭찬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이 날도 "당신은 정말 자상한 남편이고 많이 노력해줘서 고마운데, 오늘은 꽃 선물을 해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면 싸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가 나에게 특정한 방식의 사랑을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미 그가 받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내가 더 노력했을 때 우리의 다툼이 현저히 줄어드는 경험을 했다.


 꽃 선물과는 조금 다른 문제일 수도 있지만, 나는 상대의 성향과 취향에 맞춰 사랑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서로 노력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것이 완전히 맞닿아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평생 육성으로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부끄러워 평생 편지로만 '사랑해'라고 쓰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물론 둘 다 안 하는 것보다야 뭐라도 하는 게 낫겠지만, 나는 죽는 날까지 따뜻한 목소리로 '사랑해'라는 말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안됐다. 그게 뭐 어려운 거라고.  


그날 밤 남편이 사 온 꽃. 화해 후 찍었더니 이렇게 시들어 버렸다.

 

 다툼이 있던 날 밤, 남편은 꽃다발과 함께 내가 먹고 싶다던 아이스크림을 사 왔다. 내 생각을 하고 사 왔을 텐데 거실에 탁 놓고는 들어가 버려 그 뒤로도 하루나 더 말을 안 했다. 나중에 화해하고는 한다는 말이 자기는 진짜 멋있는 사람 같단다. 그렇게 싸우고도 꽃을 사 왔다고. 아무튼 별것도 아닌 일로 이틀씩 말도 안 하고 지나서는 그때 당신 진짜 웃겼다며 서로 비웃고, 또 좋다고 살을 부비며 그렇게 살고 있다.


 오늘은 화장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한참 보던 그가 나오더니 "자기가 자꾸 내 팔에 있는 점을 세서 점이 더 많아졌잖아" 한다. 내가 매번 그의 옆에 앉아 "몇 개인지 자꾸 세면 점이 늘어난다는 얘기 들어봤어?" 하면서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하고 장난을 쳤는데. 그때 친 장난을 이제야 받아치는 거다. 마흔이 넘은 그가 헤헤 웃으면서 어린애처럼 장난칠 수 있는 대상이 나여서 다행이다. 그렇게 싸우고도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






덧,


그가 그동안 꽃 선물을 못한 이유


1. 재택근무 때문에 함께 집에만 있다 보니 꽃 선물할 기회(외출)가 없었음

2. 본인 마음에 드는 꽃집에서 꽃을 사고 싶었는데 이 동네에 그런 꽃집(플로리스트가 있는)이 없었음

: 인정. 완벽주의자 남편은 동네 꽃집에서 촌스러운 포장지에 쌓인 장미꽃 한송이를 사는 자신이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

이전 16화 부부 사이의 약속, 꼭 지키시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