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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짐니 Jul 18. 2021

여보, 나는 당신이 해준 밥이 먹고 싶어

재택근무 중 밥 당번 정하기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가 길어지며 고민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하루 세끼 밥을 어떻게 해결하냐는 것. 처음에는 재택근무이니 점심시간에 내 맘대로 이것저것 해 먹을 수 있는 게 재미있었다. 그런데 재택근무라고 해도 절대로 일의 양은 줄어들지 않고, 점심시간이 종료되는 즉시 울려대는 메신저 탓에 내 마음대로 점심시간을 길게 사용할 수도 없다. 뭔가가 해 먹고 싶어 잔뜩 재료를 꺼내 요리를 완성하면 컴퓨터 앞으로 복귀하기까지 10분 남짓 남아있기 일수였다. 우아한 점심시간은 사라지고 입 안으로 정신없이 음식을 집어넣은 후, 설거지가 잔뜩 쌓인 싱크대를 뒤로한 채 책상 앞에 앉으면 '저녁은 또 뭐 먹지?'의 반복이었다.


 몇 차례 비슷한 경험을 한 뒤부터 점심은 배달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배달음식은 참 특이하다. 전부 다른 매장에서 다른 사람이 요리해 배달이 되는데, 왜 먹다 보면 다 비슷한 맛 같을까? 처음에는 맛있다고 먹던 햄버거, 피자, 카레, 돈가스, 치킨 이런 것들이 점점 물렸다. 또 가장 큰 문제는 점심에 이어 저녁도 종종 시켜먹는 탓에 남편도 나도 10kg씩 살이 쪘다. 물론, 배달로도 샐러드나 건강한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지만, 우리는 항상 늦은 시간에 자극적인 음식을 택해왔다. 이쯤 되니, 흰밥에 김치와 김만 꺼내놓고 먹더라도 집밥이 먹고 싶다. 혀가 온갖 조미료의 공격에 노출된 것 같다.


 재택근무는 남편과 함께 하고 있다. 그는 주로 거실에 노트북 테이블을 펼쳐놓고 일하고, 나는 서재방 책상에서 일한다. 각자 일을 하다가도 밥 먹을 시간이 되면 모이는데 "점심 뭐 먹을 거야?"라는 질문은 항상 내가 먼저 한다. 그는 밥 먹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서 주말에는 내가 밥 먹자고 하지 않으면 오후 4-5시까지 공복으로 있다가 그제야 점심인지 저녁인지 알 수 없는 첫끼를 먹는다. 그런데 나는 최소한 낮 12시에는 첫끼를 먹고 싶어 밥을 하면 남편은 어느새 옆에 와 앉아있다. 내가 밥을 하면 잘만 먹으면서 먼저 '밥 뭐 먹을까?' 소리는 절대 안 하는 그.


 평소에는 쉼 없이 재잘거리는 내가 밥을 준비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자,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그가 다가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 삐진 것 같은데 이리로 와봐."라며 자리에 앉혀놓고 불만을 얘기하란다. 내가 "왜 자기는 밥 먹자는 소리도 안 하고, 밥도 안 해?"라고 물으니 본인은 밥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밥이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만다고. "나는 때 되면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인데, 그럼 내가 밥해도 안 먹을 거야?" 하자 "아니, 그건 먹지" 말하면서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지 어색하게 웃는다. 그러니까 그는 밥 생각이 없다고 가만히 있는데, 내가 밥을 하면 같이 먹고 그게 계속 반복되니까 나만 밥하는 사람이 된 거다. 그날 우리는 밥 당번과 규칙을 정했다.



 <밥 당번 규칙>

1. 매 끼니마다 돌아가며 밥을 한다.

2. 중간에 배달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하면 그 끼니는 제외하고 순번은 그대로 돌아간다.

3. 밥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간단한 간장계란밥도 좋고, 밀 키트를 사용하는 것도, 건조된 누룽지에 물만 부어 끓이는 것도 좋다.

4. 메뉴는 요리하는 사람이 직접 정한다.

5. 설거지는 요리하지 않은 사람이 한다.




재택근무 중 남편이 해준 집밥. 왼쪽부터 채끝 짜파구리/ (내가 만든)김치찌개와 (남편이 만든)감자볶음/ 간장계란밥과 차돌박이 부추무침



 규칙을 정한 이후로는 대체로 밥 당번 제도가 잘 유지되고 있다. 남편은 물론 귀차니즘 때문에 밥을 안 할 때도 있지만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야 하는 성향을 가졌기에 나처럼 10분 전에 결심하고 수행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 이해한다. 그는 밥 당번 규칙을 지키기 위해 하루 전날부터 다음 날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고민 끝에 그는 "내일 저녁은 된장찌개에 감자볶음 해줄게!" 하고 결심을 한다. 아직 할 수 있는 요리가 많지 않은 그가 이 규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안다. 빈도로 따지자면 여전히 집밥보다는 배달음식을 월등히 많이 먹지만, 주말마다 마트에 식재료를 사러 가면 다음 주에는 무슨 음식을 할지 미리 계획하고 재료들을 담는 그가 꽤나 귀엽다.


 결혼 후 몇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도 함께하는 상황이 계속 바뀌고, 우리에게는 늘 새로운 규칙이 필요하다. 그래도 변화에 맞춰 함께 규칙을 정하고 그것들을 지켜나갈 수 있는 부부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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