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아내에게 운전을 가르쳐 줄 때 생기는 일
어제저녁에 주차를 하다가 내 차를 긁었다. 후진 주차를 하려고 들어가다가 대각선 맞은편에 얌전하게 세워져 있던 남의 차 번호판을 찌그러트린 거다. 천만다행인 건 차주이자 같은 아파트 입주민분께서 내려와 보시더니 이 정도는 배상해줄 것도 없다며 괜찮다고 하셨다. 차 앞쪽 번호판이 조금 찌그러지고 번호판을 고정하는 나사 하나가 빠진 상태였다. 번호판을 다시 달려면 그래도 몇만 원이 들 텐데 어떻게 저렇게 선한 눈빛으로 괜찮다고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 너무 다행이고 감사했다.
죄송하다고 한번 더 말씀드리고 뒤돌아서니 거기 왼쪽 앞 범퍼가 찌그러진 내 차가 있었다. 새로 뽑은 지 1년도 되지 않은 신차이다. 수리를 하려면 최소 백 이상은 들 텐데... 그냥 탈까? 수리비라도 알아볼까? 집에 올라와서도 계속 고민하다가 새벽 2시가 되어 잠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찌그러진 범퍼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젠장.
침대에 누운 채로 어젯밤의 일을 다시 떠올려본다. 후진 기어를 넣고 들어가는데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렸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어떻게 주차를 끝까지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히 공간도 넓었고, 몇십 번을 주차해온 우리 아파트 지하 주차장인데 이게 무슨 일이지? 정신을 차리고 차에서 내려 사고 부위를 확인하는데 '오 마이 갓!' 빼도 박도 못할 수준으로 찌그러진 건 물론이고, 심지어 상대차 번호판에 있던 나사가 내 차 범퍼에 잘못 박히며 동그란 구멍까지 나있었다. 사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찌그러진 차도 수리비도 아닌 남편의 화가 난 얼굴이었다. 차를 애지중지 아끼는 사람인 데다가 내가 조금만 부주의하게 운전을 하는 것 같으면 큰 소리를 내온 그였다. 상대차의 손상은 어느 정도일까 무서워 가까이 가보지도 못하고, 화부터 낼 남편이 무서워 전화도 하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별 수 없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떡하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와 봐." 그는 나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더니 상대차 차종을 가장 먼저 물었고 즉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그는 상대차주분께 전화를 해서 사고 사실을 알렸다. 차주분이 내려오신 뒤에 정황설명과 사과를 드리고 그렇게 사고를 수습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오히려 차를 긁어도 어떻게 이렇게 구멍을 냈냐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의 변화가 놀라웠다.
지난 1년간, 그에게 운전연수를 받는 내내 큰소리가 오고 갔다. 나는 운전을 처음 배우는 사람이니까 못 하는 게 당연하고 비록 지금은 부족할지라도 연습을 해서 늘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생명이 달린 일이므로 그렇게 관대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마치 당장 다음 달에 운전대회라도 나가는 사람처럼 그에게 운전을 배웠다. 그러다가 내가 처음으로 차에 아주 작은 스크래치를 냈을 때, 그는 정말 많이 속상해했다. 이 차는 내 명의로 된 내 차이기는 하지만 재산을 합쳐서 관리하는 우리 부부의 경우, 차 할부도 공동의 수입과 재산으로 함께 갚고 있어 공동의 재산과 다름없었다. 그렇다고 그가 본인의 차를 긁었을 때 내가 그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나에게 운전을 가르쳐주고 첫 차를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그에게는 마치 그럴 권리가 있는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내가 서울까지 운전을 해서 가던 날이었다. 잠깐 내비게이션을 잘못 봐서 길을 잘못 들었고, 조수석에 앉아있던 남편은 그날도 즉시 성을 냈다. 길이야 잘못 들어왔으면 돌아가면 되는 거고, 만약 사고가 나서 차가 찌그러지면 수리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도 참다 참다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제발 그만해! 내가 다른 차를 실수로 들이받더라도 당신은 나한테 화를 낼게 아니라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줘야 할 사람이야!" 길을 잘못 들어서 우리가 위험해진 상황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화가 났다. 나중에는 이 사람이 더 아끼는 게 차인지 나인지도 혼란스러웠고, 거의 울다시피 하며 그동안의 감정들을 쏟아냈다. 그날 이후 남편은 달라졌다. 이렇게 차를 잔뜩 긁어놓은 나를 보고 웃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까진 앞 범퍼를 보며 속은 쓰리지만 그의 내면에는 분명 장족의 발전이 있었다.
집에 올라와 그가 말하길, 운전 1년 차가 제일 위험하다고. "이제 운전을 좀 잘하는 것 같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고 그렇지? 1년 차의 자신감이 제일 위험해. 주차도 이제 익숙해지고 잘한다고 생각해서 이런 사고가 나는 거야."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속으로 이 사람 도사가 아닌가 생각했다. 운전하는 것을 내내 무서워했는데, 이번 달 들어서 운전하는 게 편하고 이제 자신감이 붙어서 어디든 차를 끌고 혼자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한 발자국 물러서 온화하게 가르침을 준 만큼, 나도 느껴지는 바가 컸다.
그는 나에게 운전을 전수해줬고, 나는 그에게 잘못한 아내일지라도 웃으며 대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래도 부부 사이 운전 연수는 될 수 있으면 해 주지도 받지도 말자. 단란하던 부부 사이가 와해될 수 있다.
덧,
차 수리비는 80만원이 나왔고, 남편이 수리비를 내주었습니다 :)
운전을 하게 된 이야기는 <작년 한 해 당신이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인가요?>에서 읽어주세요 :)
<다른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는 매주 일요일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