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도 한번씩 점검하고 정리하기
이쯤 살다 보니 집에 쌓인 물건처럼, 사람과의 관계도 정리가 필요할 때가 있다고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누군가 부탁하면 “아니”라는 말을 차마 못 하고 “네, 도와줄게요”가 정해진 대답처럼 살았던 때도 있었어요. 하필 남편도 그런 사람이라,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하다 여기며 살았어요.
그런데 문득, 그런 습관이 우리를 점점 소진시키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중년이 되니 체력도, 마음의 여유도 예전 같지 않게 되고서야 깨닫게 되었네요. 아!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걸 절실히 깨달은 지금, 저는 이제 나의 이 유한한 에너지를 어디에 쓰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자주 묻곤 합니다.
얼마 전, 지인이 “이번 모임에 들어와서 좀 도와주면 안 될까요?”라는 얘기를 몇 번이나 하고, 또 문자로 메시지까지 보내왔을 때,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어요.
“너무 좋은 의도인 건 잘 알겠지만, 이미 하고 았는 일들이 있어서 어렵겠어요.. 미안합니다.”
예전 같으면 '가끔 돕는 일인데, 뭐 어렵다고' 이렇게 생각하며, 흔쾌히 손을 내밀었을 텐데 말이죠.(이후로 제가 없어도 너무 잘 해나가시는 봉사모임을 옆에서 볼때마다 거절하길 참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심리학자 헨리 클라우드는 『Boundaries』에서 이렇게 말해요.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선의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로 인해 내 삶이 무너지면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인간관계는 한계가 있어요. 예수남마저도 주로 열두 제자들과 3년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신걸 봐도 알 수 있죠. 관계의 범위도 점점 더 제한적임을 직접 나이가 들어보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는 사실입니다.
관계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모든 관계도 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으니까요.
제가 관계를 정리할 때 기준 삼는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만남 이후에 내 마음이 따뜻해지는지, 서로가 채움을 받고 또 만날날을 기다리게 되는지, 아니면 이상하게 무거워지는지. 그 감정의 차이가, 앞으로 그 관계를 계속 이어갈지 말지를 결정짓습니다.
아무리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여도, 혹은 혈연으로 엮인 친인척 관계라 할지라도 그 만남이 나를 반복적으로 지치게 한다면, 이제는 용기를 내어 거리를 두려고 합니다.
힘든데도 괜찮은 척, 안 그런 척하며 계속 그 자리를 지키는 건 결코 나를 돌보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남을 살피느라 나 자신을 방치하고 외면하는 일이 아닐까요?
진짜 돌봄은, 내가 어떤 자리에 있을 때 편안한지 어떤 사람 앞에서 나다울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그 선택을 해주는 데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삶의 후반전을 살아가는 지금, 이제는 누구의 눈치를 보며, 마음에 들지 않아도 괜찮은 척, 억지로 살아가기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고 짧습니다.
이제는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댈 수 있는 이들과 더 깊은 우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진짜 의미가 되는 사람들과, 남은 시간을 더 많이, 더 진심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그게 아마, 삶의 후반전을 따뜻하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지혜일 것입니다.
-지금, 당신이 진짜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이 삶의 후반전에서 당신의 시간을 더 많이 나누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