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인간관계 다이어트(2)

자녀와의 관계, ‘거리두기 연습’이 필요하다

by 진그림

"얘, 이제 다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왜 나는 아직도 얘를 뒷바라지하고 있니? 대체 언제까지?"


대학을 졸업하고도 2년간 원하는 직장을 못 구한 아들의 생활비를 대는 지인의 하소연입니다. 주변에서 이런 얘기를 아주 흔하게 듣습니다. 성인이 된 자식들과의 갈등으로 속이 상한다며, 눈물을 흘리지만, 사실 자녀와의 문제가 아니라 자녀를 놓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같아 보일때도 많습니다.


중년이 되면 부모는 이제 사춘기를 지나 성인기에 들어간 자녀와도 관계 다이어트가 필요합니다. 100%의 농도 짙은 부모사랑에서 점점 농도를 희석해 가며, 부모-자식 관계의 다이어트에 돌입해야 하는 거죠.

자식을 놓아주는 일도 군대에서 하듯이 훈련이 좀 필요합니다. 오랫동안 자식을 돌보는 부모로 살아온 우리는 늘 ‘지켜주고 돌보는 사랑’에는 익숙하지만, ‘떠나보내는 사랑’에는 아주 서툽니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구요. 아이를 걱정하지 않는 방법, 개입하지 않는 대화,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 태도… 그 모든 것이 처음에는 마치 사랑을 거두는 것처럼 느껴져 괴롭습니다.

후우...
그래요 말은 쉽죠.
머리로는 다 알죠.


하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식 가족문화 속에서 부모가 된 저에게도 너무나도 어려웠습니다. ‘부모는 자식 인생에 끝까지 책임져야 해’라는 모토로 헌신적으로 돌봐주신 부모님 아래 자랐기에, 저 스스로도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독립해서 떨어져 나오는 게 쉽지 않았어요. 결혼 후에도 양쪽 어머니의 자식사랑은 여전히 농도가 아주 ~ 하셨으니까요.


그런 제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건, 오랜 외국 생활 덕분이었습니다.


20년 가까이 외국에서 지내며 다양한 문화권의 부모들과 그들의 자녀 양육 방식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들의 태도가 너무 무심하게 느껴졌어요. 아이가 넘어져도 달려가지 않고, 중요한 결정을 아이에게 맡기며, 사춘기 자녀의 사생활을 철저히 존중하는 모습은 저에게 낯설고 불편했어요.


'어떻게 저렇게 거리를 둘 수 있을까?'


속으로 많이 의아하면서도, 그들이 나와는 전혀 다른 원칙으로 자녀를 대한다는 사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깨달았죠. 그 무심함은 무책임이 아니라 깊은 신뢰였고, 그 거리감은 소외가 아니라 진정한 존중이라는 것을. 그때서야 제 모습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나는 왜 자꾸 아이를 도와주려 들었을까? 왜 스스로 선택하게 두는 일이 그토록 어려울까?


처음에는 단지 문화적 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자녀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시선의 차이였습니다.

그 인식 이후로 사춘기, 혹은 성인기에 들어선 아이들과 갈등 혹은 마음에 어려움이 생길 때면,


'난 지금 어디쯤에 서서 이 아이를 보고 있어야 하나’


이 내면의 질문을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 ‘아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옆에서 묵묵히 바라봐 주는 것이구나’ 생각하며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내려놓음은 결국 아이와의 관계를 더 성숙하게 만드는 원료들이 되었지요.


이 시기에, 저는 자녀가 도움을 요청하기도 전에 개입하는 부모들을 주변에서 많이 봅니다. 넘어져서 겨우 일어서려는 아이에게 달려가 먼저 손을 내밀고, 혼란스러워할 때 답을 제시해 주며 실패할 기회를 박탈하는 부모들, 또 돈 없다고 쩔쩔매는 자녀에게 안쓰럽다고 습관처럼 생활비를 대주는 부모들… 처음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의 도리라고도 말하죠.

“도와달라는데 안 도와주면 어쩌냐, 길에 나앉게 할 수는 없잖아…”
도와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백 가지, 천 가지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도움이 반복될수록, 자녀는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부모는 자녀 인생에 끝없는 책임을 떠안으며, 의존적 고리 안에 함께 갇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관계가 꼬이기 시작하면, 그 여파는 생각보다 길고 깊습니다.


많은 중년 부모들이 인생 후반기에
“왜 내 자식은 아직도 내 손이 필요할까?”
“왜 나는 아직도 자식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을까?”라고 말합니다.

자녀는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미성숙하고, 부모는 퇴직 후에도 여전히 자녀의 삶을 감당하느라
자신의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채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소진되어 가는 경우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부모-자녀 관계를 이 시기에 정립하지 못하면 그 부담은 자녀에게도, 부모에게도, 그리고 부모의 노년기 전체에 걸쳐 삶을 엉키게 하는 끈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기, 자녀와의 관계를 성숙하게 재구성하는 일은 그저 한 세대의 갈등을 줄이자는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 후반기의 건강과 존엄을 지키는 일입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에게도 현재 진행형의 관계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제게 가장 어렵고 짠한 훈련은, 대학졸업 후에 독립해서 혼자서 생활하고 있는 아들을 멀리서 바라보며 응원하는 일입니다. 솔직히 결혼하기 전까지는 좀 더 같이 살면서 세끼 밥도 더 잘 챙겨주고 싶습니다. 가끔씩 집에 들른 아들의 까칠해진 얼굴을 보면 마음이 너무 어렵습니다. 뭐해먹냐, 제대로 건강하게 먹고 있니? 너무 늦게 자서 피곤한 거 아니냐? 돈관리는 잘하고 있냐? 저축은 되고 있고? 우리 도움 없이도 정말 잘 살고 있는지를 너무너무 확인하고 싶은 불안과 애틋함이 가득한 마음의 소리들이 들끓습니다.


그 소리들을 애써 잠재웁니다. 그리고 아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입술을 꾹 다물고, 묻지 않고 기다리는 훈련을 반복합니다. 식단 다이어트만큼이나 빡센 부모-자식과의 관계 다이어트입니다. 이 시기는 그 아이가 사회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에 기도하며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대신 싸워줄 수 없고, 대신 선택해 줄 수 없고, 대신 넘어져줄 수 없다는 것을 알 고 있으니까요.


자녀와의 관계에서 떨어지는 연습은, 결국 나의 삶을 회복하는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아니어도 잘 사는 아이’를 인정하면서, ‘아이 없이도 의미 있는 나의 삶’을 다시 채워가는 것이, 중년 이후 인간관계의 건강한 다이어트가 아닐까요.

어른이 된 자녀에게 가장 필요한 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부모'이지,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는 부모가 아니다.

윤홍균, [당신이 옳다]


-나는 자녀를 나의 기대나 불안 속에 붙들어두고 있지는 않나요?

-자녀와 건강한 거리를 두기 위해, 오늘 내가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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