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노래 - 제1편
“색은 나의 시(詩)이고, 나의 기도이며, 나의 사랑이다.”
- 마르크 샤갈
그림을 그릴 때는, 그가 잠들었는지 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 혹은 그 밖의 다른 곳에 천사가 있음이 틀림없다."
- 파블로 피카소
"샤갈은 매우 재능 있는 색채주의자이다.
그는 신비주의적이고 이교도적인 상상력으로 자신이 추구하는 무언가를 위해 헌신한다. 그의 예술은 매우 감각적이다."
- 기욤 아몰리네르(Apollinaire)
"몽상의 은유"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화가."화려하게 어둡다" 그의 그림은 그렇다. 그 속에 다양함과 변화무쌍함 그리고 단순함도 무게감도 있다. 또 향수와 몽환과 종교적 신념과 사랑과 꽃이 있다.
미술계의 너바나(Nirvana) 샤갈(Chagal)
샤갈은 시대의 흐름에 쓸리지 않았다. 시대 미술의 많은 흐름을 샤갈화 했고 그의 색은 "샤갈 컬러(Chagal Color)"라는 말로 기록되었다.
샤갈의 작품에 대한 해석은 색채에 대한 것이고 그것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같은 색일지라도 맥락에 의해 그 감각을 달리한다. 현대 미술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색에 대한 유연한 해석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매력은 주류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이 주류라고 하는 외침이었다. 그러함이 크리스 노보셀릭의 말과 궤(軌)를 같이 한다.
"너바나는 메인스트림을 지양했다. 대중들이 기억해야 할 한 가지는 너바나는 메인스트림을 따라 하지 않았고, 메인스트림이 너바나를 따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점이 밴드에게는 위협적이었다."
"We repelled the mainstream. And see, there’s one thing you have to remember about Nirvana, is Nirvana didn’t go to the mainstream, the mainstream came to Nirvana. And that was our big crisis."
하시딤적 요소가 드러난 샤갈 작품들
바이올린 연주자 : 마을에서 결혼식이나 안식일에 연주하는 클레즈머 음악가를 형상화했다. 유독 바이올린 연주를 사랑했던 샤갈, 허름한 차림의 연주 의상은 음악이 평범한 모두의 것임을 그려냈다. 이는 유대교의 하시딤의 영향이었다. 샤갈은 하시딤을 단순히 종교 집단이 아닌, “잃어버린 고향과 영혼의 뿌리”를 상징하는 존재로 그렸다. 그의 회화에서 하시딤 인물은 종종 공중에 떠 있거나, 환상적인 색채 속에 나타나는데 이는 신과 직접 교감하려는 하시딤의 신비적 성향을 시각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하시딤(Hasidim)이란
18세기 동유럽에서 시작된 유대교의 신비주의·경건주의 운동이다. 발상지는 현재의 우크라이나·폴란드 지역이며, 창시자는 바알 셈 토브(Baal Shem Tov)로 율법(토라)과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신과의 내적 친밀감, 기쁨과 음악, 춤을 통한 영적 체험을 강조한다. 흑색 모자와 긴 옷, 곱슬 옆머리(페이오트)로 알려진 복식은 주로 하시딤 전통에서 비롯되었다.
샤갈이 태어난 비테프스크(현재 벨라루스)는 유대인 공동체가 강한 도시였고, 그 안에는 하시딤 문화가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 샤갈의 가족이 엄격한 하시딤 신앙을 실천했다는 직접 증거는 적지만, 그의 어린 시절 생활환경이 하시딤의 종교적 분위기와 의식, 복장, 음악에 큰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하다. 작품 속에서 회당 장면, 기도하는 인물, 바이올린 연주자에서 볼 수 있다.
유대교의 예배에서 공식적으로는 성악(기도, 토라 낭송)이 중심이고, 악기 연주는 제한적이었다. 특히 제2성전(AD 70년) 파괴 이후, 전통적 유대교에서는 성전에서 쓰이던 악기 사용을 크게 줄였고, 경건한 예배에서는 무악(無樂) 전통이 강했다. 그러나 축제·혼례·세속적 모임에서는 음악(특히 클레즈머)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때 가장 중심이 된 악기가 바로 바이올린(피들, fiddle)이었다.
동유럽 유대인 마을(셰틀)에서 결혼식, 장례식, 기념일, 심지어 마을 장터에서도 늘 음악이 울려 퍼졌다. 바이올린은 인간의 목소리와 비슷한 음색을 낼 수 있어,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유대인 결혼식에서는 신부를 인도하거나, 눈물과 웃음을 함께 자아내는 멜로디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지붕 위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상징은, 불안정한 삶 속에서도 음악과 신앙으로 공동체를 지탱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샤갈은 유대교를 깊게 믿지는 않았고 기독교의 영향을 나중에 받았다. 구약 중심의 믿음만을 인정하는 유대교와는 달리 기독교의 영향이 그의 작품 곳곳에 드러나 있다.
'지붕 위에 바이올린'은 1964년 뮤지컬에 이어 영화로도 제작되었는데 샤갈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 배경 또한 20세기 초 러시아의 유태인들이 모여 사는 시골 마을(shtetl)이었다. 그리고 동영상을 잘 보면 바이올린 연주자가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샤갈의 작품에서 공중에 떠 있는 듯한 그림으로 보이나 실제로 지붕 위에 올라서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연주가 잘 들리게 하기 위하여 지붕 위를 무대로 삼았을 것이다.
셰틀(shtetl)
18세기말 이후, 러시아 제국은 유대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지역을 제한했는데, 이곳을 '거주 지대'(Pale of Settlement, 1791~1917)라고 불렀다. 현재의 폴란드·우크라이나·리투아니아·벨라루스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고, 샤갈의 고향 비테프스크(Vitebsk)도 이 거주 지대 안에 있었다. 유대인들은 대도시보다 소규모 마을에서 집단으로 살았는데, 이를 셰틀(shtetl, 작은 마을)이라고 불렀다.
"결혼식, 장례식, 어떤 모임에서도 바이올린 연주자가 없이는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다. 그들의 소리는 우리 마을의 숨결로, 내 기억 속에서 언제나 울려 퍼진다."
-마르크 샤갈
샤갈 자서전〈나의 인생〉(Ma Vie, 1922) 속에서도 고향 비테프스크(Vitebsk)에서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음악, 특히 바이올린 소리를 공동체적 풍경의 일부로 묘사한다. 그는 바이올린을 “마을의 영혼을 대변하는 소리”로 표현하며, 자신의 미술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준다고 밝힌다.
작품 속 연주자의 옷은 허름하기 짝이 없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연미복이 아니다. 그가 그려낸 평범한 생활 속 음악을 옷으로 다시 그려낸 점도 알아야 할 감상 포인트이다.
이츠하크 펄먼의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를 감상하며 글을 마칩니다.
이츠하크 펄먼(Itzhak Perlman, 1945~ )은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고전음악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도 깊은 흔적을 남긴 인물로 1945년 이스라엘 텔아비브 출생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1993)의 음악에서 존 윌리엄스의 협연자로 참여, 깊은 감동을 주는 바이올린 솔로를 연주했다. 특히 풍부한 톤, 따뜻하면서도 카리스마 있는 연주로 유명하다. 그래미상 16회 수상, 그 외 에미상 등 다수의 음악상을 받았다. 이 영상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연주다.
전시회와 저의 글은 사뭇 다릅니다. 전시회에서는 도록과 책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샤갈의 대형 작품을 감상할 수 없는 아쉬움과 색다른 구성의 새로움이 더불어 자리 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