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의 노래-제2편
삶은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
색이 전부다
색채가 올바르다면 그 형식이 맞는 것이다
색이 전부이고 음악처럼 진동한다
그 전부는 떨림이다.
"그러나 어쩌면 나의 예술은 미치광이의 예술이고, 그저 반짝이는 수은(水銀), 그림에서 솟아난 우울한 영혼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예술이며, 그림이다. 다른 사람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그림, 하지만 어떤 그림이지? 신이나,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캔버스에 탄식과 기도와 슬픔의 숨결, 구원과 부활의 기도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까?"
샤갈(Marc Chagall)의 작품 세계에서 현악기, 특히 바이올린은 자주 등장하지만, 첼로는 상대적으로 드문 편이다. 샤갈의 회화 속에서 바이올린 연주자(‘떠다니는 바이올린 연주자’, ‘푸른 바이올리니스트’ 등)는 유대인 마을의 삶과 종교적 의식을 상징한다. 악기는 단순한 연주 도구가 아니라 향수, 고향, 종교적 영성, 인간의 내면적 울림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꿈과 현실을 연결하는 다리'로 그려진다.
바이올린이 마을의 유쾌함과 축제를 상징한다면, 첼로는 보다 깊고 내적인 목소리를 대변한다. 첼로의 음색은 인간의 목소리와 가장 유사하다고 평가되며, 이는 샤갈이 자주 표현한 향수, 애도, 사랑의 슬픔 같은 정서와 잘 맞아떨어진다.
'첼로 연주자'(Le violoncellisteLe) 1939 작품 속에서 샤갈은 첼로로 변했고 그 곁에서 작은 송아지로 변한 부인 벨라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다. 이렇듯 개인적인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1950년 샤갈은 작품 '신부'(The Bride)에서 하얀 면사포를 쓰고 스칼렛 색상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들고 있는 신부를 그렸다. 염소가 결혼을 축하하는 첼로 연주 울려 퍼지는 몽환적인 작품이다.
사람이 죽으면 동물로 환생한다고 믿었던 유대교 전통에서 염소는 ‘속죄의 염소(scapegoat)’라는 개념처럼, 공동체의 죄를 대신 짊어지는 존재로 등장한다. 염소는 어린 시절 경험한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공동체적 삶을 상징한다. 이는 유대인 결혼식, 잔치에서 흔히 연주되던 바이올린과 연결되며, 염소가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삶과 예술의 연결 고리임을 보여준다. 동물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은 샤갈 특유의 초현실적·동화적 세계관을 잘 드러낸다. 특히, 음악을 통한 '영혼의 해방'을 노래하고 있다.
샤갈은 첼로를 직접 주요 모티프로 삼지는 않았지만, 그가 그린 관현악적 장면(오페라 무대, 발레 무대 장식)에는 첼로가 포함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파리 오페라 극장의 천장화(1964)에서 그는 오케스트라와 무희, 음악의 신비를 색채의 폭발로 표현했는데, 이 장면에는 첼로와 같은 현악기가 전제되었다. 작품 속에는 그가 사랑한 많은 곡들의 조각이 플레이 리스트(Play List)가 되어 천장에 펼쳐져 있다.
1964년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는 그의 친구였던 샤갈에게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한다. 당시 77세의 노화가(老畫家)는 다른 3명의 조수들과 함께 약 8개월간에 걸쳐 220제곱미터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시켰다.
“10년 전에 앙드레 말로 씨가 나에게 파리 오페라 하우스의 새 천장화를 그려 달라고 제안했다. 나는 고민에 빠졌고, 감동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의심을 품었다. 밤이나 낮이나 나는 오페라 하우스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건축가 가르니에의 천재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윗부분에서 배우와 음악가들의 창작활동을 아름다운 꿈속의 거울에 비친 것처럼 묘사하고 싶었고, 아랫부분에서는 관객들의 의상이 일렁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론이나 방법 같은 것에 구애받지 않고 새처럼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다. 오페라와 발레 음악의 위대한 작곡가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나는 정성을 다해 작업에 임했다. 프랑스가 아니었다면 색채도, 자유도 없었을 것이다.” - 1964년, 마르크 샤갈
마르크 샤갈이 그린 프레스코 천장화는 14개의 유명한 오페라의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중앙 원형에는 4명의 위대한 작곡가 비제와 카르멘(빨간색), 베르디와 라 트라비아타(노란색), 베토벤과 피델리오(녹색), Gluck, Orpheus 및 Eurydice (파란색)을 그렸다. 밖의 원형 패널에는 차이콥스키의 백조의 호수 (노란색)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 (파란색)를 포함하여 추가로 10명의 작곡가를 커다란 삼각형의 면을 그리고 그 안에 2명의 작곡가를 그려 넣었다. 프랑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의 천장화의 또 다른 이름은 ‘꿈의 꽃다발’(Bouquet de rêve)이다.
이 천장화 '꿈의 꽃다발'은 어릴 적 하시딤 공동체에서 자란 그는 음악이 내면에 자연스레 배어 있다. 소리를 자신만의 색으로 표현할 기회라 여기며 비용도 받지 않고 그가 지니고 있던 음악적 감각을 색으로 변환시켜 이 공간을 지배한다.
그의 작품에 계속하여 등장하는 꽃다발은 이 천장화의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는데, 샤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게 꽃다발’이라면서 ‘세상이 힘들수록 누군가는 사랑을 전해줘야 하는데 그게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했다. 이 작품도 이를 반영하듯 "꽃다발 속의 거울처럼 음악가의 꿈과 창작물을 반영했다"라고 하며 자신의 작품들 중 평생의 역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러시아 출신 유대인이라는 점, 앤티크 한 객석과는 어울리지 않는 불꽃놀이 하는 듯한 화려한 그의 그림들은 초기에는 "말로 장관이 에펠탑을 분홍색으로 칠하라고 한 것 같다"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물론 지금이야 샤갈이 곧 프랑스이니 더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무대 객석과 어울리지 않는 천장화는 파리 시민들에게서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샤갈이 정치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게 되는 소심함이 극에 달하여 우울증을 겪기도 하였다. 앙드레 말로 또한 이런 작품을 맡겼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있는 약 2,105석의 공연장 내부는 말발굽 모양의 이탈리아 양식으로 설계되었다. 관람석은 전체적으로 붉은색과 금색으로 되어있는 보석 상자와 같은 느낌을 주는데 특히 붉은색이 주요 색으로 정해진 것은 건축가의 의견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가르니에는 공연장에 온 여성 관객들이 돋보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붉은색이 조명과 함께 얼굴에 반사되면 여성들이 더욱 젊고 화사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1896년 무게 8t의 이 엄청난 샹들리에가 떨어져 박살 난 사건은 작가 가스통 르루가 쓴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의 모티브가 됐다.
샤갈이 그린 장면은 오페라 마지막 막, 플로레스탄이 마침내 자유를 되찾는 순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부당하게 감금되었던 그는 말 위에 올라 해방을 맞이하고, 그 곁으로 남장을 한 레오노레가 다가섭니다. '피델리오'라는 이름으로 정체를 숨긴 채, 이제는 사랑의 힘으로 그를 구하려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 함께, 사랑과 자유가 마침내 승리하는 벅찬 감동으로 채워집니다.
천장화 중앙에는 베토벤(Beethoven)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Fidelio)를 그렸다. 베토벤〈피델리오〉피날레 합창 “Heil sei dem Tag!”("만세 행복한 날이여!")이 울려 퍼진다. 주인공 플로레스탄이 석방되고, 레오노레의 헌신과 정의가 드러나는 순간에 울려 퍼지는 장엄한 합창이다. 해방, 사랑, 정의라는 메시지가 그대로 담겨 있다.
베토벤〈교향곡 9번〉제4악장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와도 잘 어울린다.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된다”는 인류애적 메시지와 함께, 억압을 깨고 자유를 맞이하는 환희를 표현하기에 어울린다. 샤갈의 색채와 초월적 이미지에도 잘 맞는다.
샤갈이 그린 장면은 오페라 2막의 아리아 '나는 에우리디케를 잃었네'를 떠올리게 합니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으로 저승의 신들을 감동시켜,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랑하는 이를 다시 데려갈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하지만 끝내 절망에 무너져 뒤를 돌아보고, 에우리디케는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샤갈은 리라를 든 오르페우스 곁에 그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천사의 형상을 한 인물을 함께 그렸습니다. 비극이 닥치기 직전, 마지막으로 피어나는 희망의 빛이 그 장면을 감싸고 있습니다.
베토벤의 그림 아래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케'그렸다. 여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은 단연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의 오페라《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 1762) 중의 아리아 Che farò senza Euridice?(“나는 에우리디케를 잃었네”)라 할 수 있다.
가사는 “나는 에우리디케 없이 무엇을 할까?”라는 절망과 탄식을 담고 있다. 샤갈 그림 속 꽃다발을 건네는 천사는 한순간의 희망을 상징하지만, 그 희망은 결국 꺼져가는 불꽃처럼 사라진다. 이 아리아는 바로 그 “비극 직전의 마지막 희망과 무너짐”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단순하면서도 깊은 선율은 “고전주의적 순수함” 속에 큰 울림을 전한다. 오케스트라는 절제된 반주로 오르페오의 목소리를 감싸며, 샤갈의 색채처럼 투명하고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샤갈이 그려낸 장면은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지막, '사랑과 죽음(Liebestod)'이라 불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트리스탄이 세상을 떠난 뒤, 이졸데는 그의 곁에서 아리아를 부르며 사랑과 죽음이 맞닿는 순간 속으로 천천히 스며듭니다. 바그의 선율은 강렬하면서도 아득하게 퍼져나가며, 두 사람의 죽음을 넘어 완성되는 순간을 그려냅니다. 샤갈은 서로를 껴안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천장 위에 누이고, 그들의 마지막 포옹에 영원의 이미지를 담아냈습니다.
샤갈이 묘사한 “마지막 포옹”은 이졸데가 트리스탄의 시신 위에서 노래하는 아리아와 정확히 대응한다. 이 순간 그녀는 현실을 초월해, 죽음을 넘어선 궁극의 사랑 속으로 사라진다. 긴장과 해소를 반복하는 바그너 특유의 화성 진행은 끝내 무한한 상승으로 이끌린다. 관현악은 처음엔 고요하게 시작해, 점차 고조되며 이졸데의 영혼이 트리스탄과 하나 되는 순간을 빛처럼 표현한다. 마지막의 “소멸 속의 환희”는 샤갈의 천상적 색채와 완벽히 어울린다.
'트리스탄과 이졸데'(Tristan und Isolde)는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가 작곡한 3막의 오페라(1857~1859 작곡, 1865년 뮌헨 초연)이다. 서양 음악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작품 중 하나로 꼽히며, “현대 음악의 시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샤갈이 그려낸 장면은 차르 보리스의 죽음을 앞둔 순간을 떠오르게 합니다. 피리를 부는 날개 달린 인물은, 그를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죽음이자,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뒤편에 펼쳐진 묘지와 사람들의 모습은 그가 저지른 과거의 그림자이자, 마침내 다가온 최후의 시간처럼 느껴집니다.
모데스트 무소륵스키(Modest Mussorgsky)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 Boris Godunov》중 보리스의 죽음 (Boris’s Death Scene, Act IV Finale). 보리스가 환영과 죄책감에 시달리며, 과거의 죄가 그림자처럼 되살아나는 장면. 무대 뒤에서 울리는 장송 같은 종소리, 어둡게 깔리는 저음 현악기, 그리고 단절적이고 무거운 화성이 그의 몰락을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차르가 무너지고, 백성들이 웅성이는 합창이 겹치면서 “죽음과 초월”의 이중적 정서가 완성된다. 샤갈이 그린 날개 달린 인물은 '죽음의 초월적 사자'와, 뒤편의 묘지와 군중은 '보리스의 죄와 역사적 그림자'와 잘 맞아떨어진다.
샤갈이 그려낸 장면은 오페라 "백조의 호수"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백조로 변한 공주 오데트와 그녀를 사랑하는 지크프리트 왕자가 함께 춤을 추는 순간, 비극은 이미 그들 앞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끝내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그 순간 오데트는 저주에서 풀려나며, 두 사람은 마침내 자유를 되찾습니다.
Act IV: Finale (Apotheosis), 사랑의 완성을 죽음 속에서 찾으며, 오케스트라의 상승감 속에 숭고함을 획득한다. 귀에 딱지 붙을 정도로 들었던 곡으로 바로 감상모드로 진입한다.
샤갈이 그려낸 장면은 신비로운 불새가 등장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불새는 왕자 이반 차레비치에게 힘을 보태 악을 물리치게 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눈부신 아름다움과 섬세함을 지닌 상징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전래 동화의 마법과 신비는 샤갈의 손끝에서 환상적인 이미지로 되살아나며, 무대 위에 펼쳐진 음악처럼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Stravinsky)의 '불새'(The Firebird, 1910) 피날레(Finale)와 어울린다. 왕자 이반이 불새의 힘을 빌려 카체이의 저주를 깨뜨린 후, 새로운 왕국의 탄생을 알리는 장면. 현악기의 잔잔한 서주에서 시작해 점차 빛나는 관현악의 파노라마로 확장되며, 궁극적으로 환희와 해방의 절정으로 치닫는다. 불새의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초월적 힘을 동시에 표현하며, 샤갈 특유의 “신화적 색채에 인간 영혼의 해방”이라는 주제와 잘 겹친다.
샤갈이 그려낸 장면은 아당의 유명한 발레 작품 "지젤'을 떠올리게 합니다. 순수한 시골 소년 지젤은 사랑하던 알브레히트에게 배신당한 뒤 상심 끝에 세상을 떠납니다. 죽은 뒤 유령이 된 지젤은 다른 영혼들과 함께 춤을 추며, 죽음 너머에서 비로소 진실한 사랑을 마주합니다.
아돌프 아당(Adolphe Adam, 1803–1856), 발레 《지젤》 제2막 “지젤의 변신”과 이어지는 “지젤과 알브레히트의 파드되 (Pas de deux)” 지젤이 죽은 뒤, 달빛 아래서 하얀 망토를 두른 빌리(Wilis, 죽은 신부들의 영혼)와 함께 춤추는 장면의 음악. 신비롭고 서늘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죽음 너머의 세계를 표현하면서도, 알브레히트를 용서하고 보호하는 지젤의 사랑이 서정적으로 흐른다. 음악은 어둡고 차갑게 시작하지만, 파드되에서는 고통을 넘어선 순수하고 숭고한 사랑의 선율로 전환된다.
* 글상자 안의 내용은 전시회의 설명입니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