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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현석 Nov 04. 2018

모로 가도 내 길만 가면 된다

일사천리(一瀉千里)



    “제자리, 준비, 땅!”


    어릴 적 가장 떨리던 순간이 있었다. 만국기 펄럭이는 운동회의 달리기 시합. 선생님이 화약총을 머리 위로 들면 발로 뛰기도 전부터 심장이 멋대로 쿵쾅대며 먼저 뛰기 시작했다. 땅! 화약총에 연기가 일면 이를 악물고 내달렸다. 팔을 힘껏 젓고 발로 땅을 차며 달렸지만 마치 제자리를 뛰는 것처럼 결승선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뛰는 내내 상상했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던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어 바람 같은 속도로 대역전극을 만드는 상상. 하지만 현실은 역시나 상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승선에 들어오면 순위대로 손목에 숫자 도장을 찍어줬다. 손목에 ①이라는 도장을 받은 아이는 공책 5권, ②라는 도장을 받은 아이는 공책 3권, ③이라는 도장을 받은 아이는 공책 1권을 부상으로 받았다. 나는 도장도, 공책도 받지 못했다. 아이들이 빵보다 빵 봉지 속에 함께 들어 있는 스티커에 더 혈안이 되어 있듯 나도 공책보다 손목의 숫자 도장이 더 부러웠다. 아이들은 서로 손목의 숫자를 보이며 몇 등이라고 자랑을 했다. 부족한 달리기 실력 때문에 나는 그 친구들 사이에 낄 수 없었고, 공책 한 권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엔 꼭 손목에 도장을 받겠다고 다짐했다. 이를 악물고 달려도 안 되는 실력이었기에 이를 갈며 연습을 해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 텐데 나는 어릴 적부터 참 느긋한 성격이어서 다음 운동회가 다가올 때까지 연습도 하지 않고 어영부영 시간을 보냈다. 달리기 시합을 앞두고 또다시 심장이 먼저 나대기 시작했다.


    ‘이번에야말로 꼭 도장을 받아야지.’ 연습도 안 한 주제에 도둑 심보가 발동했다. 빈주먹을 꽉 쥐고 뛰기 시작했다. 역시나 순위권에 들기는 힘들어 보이던 그때 내 앞에 달리던 친구가 철퍼덕 엎어졌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고민을 했다. 일으켜줄까? 아니면 그냥 달릴까? 내 앞에는 두 명이 달리고 있었다. 그대로 달리면 도장을 받을 수 있다. 눈을 질끈 감고 계속 달렸다. 결국 내 손목에는 원하던 숫자 도장 ③이 찍혔고, 손에는 공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울면서 절뚝거리며 결승선으로 들어오던 친구의 손과 무릎에는 피가 촉촉하게 맺혔었다. 차마 친구 얼굴을 보기 민망해 친구가 지나쳐 갈 때까지 애꿎은 손목에 찍힌 도장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경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경쟁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거라 내심 단정하고 끼어들지 않았다. 컴퓨터 게임을 하더라도 어떤 친구는 지기 싫어서 밤새 연습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함께하는 데에 의미를 두었고, 재밌게 즐겼으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렇게 모든 경쟁에서 트랙 옆 관중석으로 조용히 물러나 있었다. 나는 그곳이 더 편했다.


    크면서도 생각과 행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뭘 해도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다. 남들보다 잘 못한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이기고 싶다는 경쟁심 또한 일지 않았다. 뭘 해도 열정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 안일함은 어느 순간 불안함으로 바뀌었다. 어떤 일을 해서 먹고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릴 적 막연한 꿈으로 도전했던 카피라이터에서 불씨를 발견했다. 재미있고, 잘하고 싶고, 남에게 지기 싫은 열정의 불씨. 잘했다며 칭찬받았던 거의 최초의 일이었고, 남보다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을 때는 못 견디게 억울하고 분했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이기고 싶었다. 항상 아웃사이더였던 내가 경쟁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지금은 내 불씨의 발원지가 ‘카피(copy)’가 아니라 ‘라이터(writer)’에 있었음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처음 몇 년 동안은 광고의 ‘광(廣)’이 미칠 ‘광(狂)’으로 보일 정도로 빠져 살았다. 일부러 광고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애썼다. 모든 계획과 일정이 광고와 맞닿아 있었다. 타는 목마름을 해갈하듯 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자료를 모았다. 관련 강연과 행사를 찾아다니며, 광고 인맥도 만들었다. 마이너로 시작했지만 메이저가 되고 싶었다. 대한민국 광고계에 한 획을 긋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 그 사람!’ 하고 다 아는 그런 유명인이 되고 싶었다. 야망으로 똘똘 뭉쳐 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광고 하나만 보고 달려가다 보니 시야가 좁아졌다. 내 주위를 보지 못했다. 가족들, 친구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가족과 한 끼 식사도 못하면서 직장 동료와는 일주일 내내 함께 밥을 먹었다. 설날에 

출근해서 인스턴트 떡국을 먹는 대표님을 보고 ‘저게 성공한 내 미래의 모습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 몸도 돌보지 못했다. 제때 자고, 제때 먹지 못하니 병을 서너 개씩 달고 살았다. 검진 결과에 심각한 병명이 

나올까 봐 건강검진일이 가까워질수록 겁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광고계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그래서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그게 광고인의 훈장이며 피할 수 없는 숙명인 줄 알았다. 그게 프로의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명감으로 버텼다. 좋아서, 신나서 하던 일이 어느 순간 버티는 일로 전락했다. 여기서부터 균열이 생겼다. 나와 동료들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매일 같이 이어지던 야근과 결론 없는 회의, ‘광고에는 정답이 없다’고 하지만 정답을 바라는 업계의 관행과 시스템. 돈 준다고 언제든, 무엇이든 시키던 광고주의 갑질. 먼 약속은 둘째 치고, 당장 오늘의 퇴근 시간조차 가늠할 수 없는 무력감. 평생의 업이라고 여겼던 광고가 싫어졌다. 광고계에 한 획을 긋고 싶었는데 이미 붓의 먹이 말라 버렸다. 중요한 것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점점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강해졌고 결국 튕겨 나왔다.


    기세 좋게 광고회사를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불씨의 발원지에 찾아가 불을 활활 키우고 싶었다. 하고 싶던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역시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불을 키울 땔감이 부족했다. 카페에서 빈 화면만 몇 시간씩 들여다보다가 빈 페이지만 저장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당장 수입이 없는 것도 힘들었다. 돈이 없으니 불안하고 비참해졌다. 남자 친구로서, 선배로서, 아들로서, 삼촌의 역할도 잘하지 못한다는 자책감이 들었다. 가족, 친구를 비롯한 모든 속세와 잠깐 연을 끊고 외딴곳에서 창작 활동에 전념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모질지도 못했다. 게다가 아버지께서 정년퇴임을 하셔서 집에 돈을 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냉정한 점검이 필요했다. 과연 당장 전업 작가로 살 수 있을 것인가? 지금 전업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무식한 용기와 우직한 끈기가 필요했다. 몇 달 동안 시도해 본 결과 나는 용기도 끈기도 부족했다. 지금은 전업 작가로 살기 어려워 보였다. 전업 작가의 길이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가기로 했다. 광고 일도 무리하게 욕심내다가 제풀에 지쳐서 그만뒀으니 다시 똑같은 실수를 하고 싶진 않았다. 불씨를 내려놓고 땔감을 먼저 모으기로 했다.


    천천히 가기로 정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시야가 넓어졌다. 맑은 하늘도 보이고, 예쁜 꽃도 보였다. 주변의 가족과 친구, 망가진 내 몸도 보였다. 끊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돈도 벌어야 했다. 다시 광고회사에 들어갔다. 광고 일을 좋아해서 다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보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월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게 광고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예전처럼 포탄이 쏟아지는 최전방에서 치열하게 싸우지는 않기로 했다. 영웅이 될 가능성은 적지만 비교적 안전하고 조용한 후방으로 물러났다. 광고인의 숙명과 사명감 따위도 이제 없었다. 대한민국 광고계에 한 획을 그을 사람은 나 말고도 많다. 굳이 내가 되지 않아도 이젠 괜찮다. 치열한 경쟁에서 물러서기로 했다. 인생을 치열하게 사는 사람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치열하게 노력한 사람 중 누군가는 영광스럽고 명예로운 자리에 오르고 그동안의 노력과 고생에 대한 합당한 대가도 얻을 것이다. 그게 나였어도 좋겠지만 이제 그런 영광이 더 이상 소중하지 않다. 모두가 1등으로 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빨리 뛰는 사람이 있으면, 천천히 걷는 사람도 있다. 만화가 이현세는 같은 업계에서 천재를 만났을 때는 길을 비켜 먼저 보내주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 10년이고 20년이고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꾸준히 걷다 보면 어느 날 멈춰버린 그 천재를 추월해서 지나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고 했다. 이미 많은 사람이 나를 추월해 지나갔다. 나와 같이 광고를 시작했던 동료들도 대부분 메이저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으며 잘 나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나를 부러워한다. 칼퇴를 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세상은 모순되고 부조리하다.


    “일도 열심히! 연애도 열심히! 쉬기도 열심히!”


    나름 한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사람의 강연에서 나온 말이다. 슬쩍 듣기엔 좋아 보인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매사에 목적성을 가지고 억지로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사람의 체력과 기운은 한정적이다. 모든 것을 다 열심히 할 수는 없다. 그러다 탈진한다. 그런 현상을 바로 번아웃 증후군이라고 한다.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다 똑같던 ‘열심히’를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일은 차근히, 연애는 나긋이, 쉼은 느긋이.”


    의욕과 박력은 없지만 삶을 제대로 즐긴다는 느낌이 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것이다. 일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있을 수 있지만 연애와 쉼은 목적을 두지 않는다. 좋아하니까 연애하고, 피곤하니까 쉬는 거다.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누군가 이런 태도와 정신상태를 글러 먹었다고 힐난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마냥 배울 만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사는 게 나에게 맞는다는 확신이 든다. 그게 나답다. 자세나 정신은 곧 행동으로 나타난다. 행동의 결과는 자기의 책임이다. 그 책임만 진다면 빨리 가든 천천히 가든 다 괜찮지 않을까? 사람마다 자기만의 길이 있고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 남의 길과 남의 속도를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가는 길이 바로 내 길이니까.






일사천리 : 자신의 생에서 람들은 누구나 천히 갈 권가 있다.

거침없이 빨리 가는 것 말고, 느긋하게 천천히 가는 것도 괜찮은 삶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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