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자해지(結者解之)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도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처음으로 마주했던 선택의 순간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가 아닐까 싶다. 어른들의 이러한 폭력적인 질문은 아이로 하여금 선택이란 참으로 어렵고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인지 난 결정을 잘 못했다. 장난감을 고를 때도, 아이스크림을 고를 때도, 메뉴를 고를 때도 난 선택의 순간에는 항상 망설였다. 스물이 되어서 자신의 우유부단에 대해 자각했고,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줏대가 생겼으며, 서른을 넘고 나니 어떤 사람의 말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내 인생을 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건 힘들다. 그럼에도 인생의 그래프는 선택의 연속점을 이어야만 그려진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라는 말도 있듯이.
결정장애. 햄릿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는 이 장애(이것이 진짜 장애의 범주에 속할 리가 만무하지만)는 지금 젊은 세대 전반에 걸쳐 전염병처럼 나타나고 있다.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유교적 사고방식과 한 번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는 냉정한 사회 시스템이 합세하여 부모가 아이의 모든 선택권을 통제하게끔 만든다. 먹는 것과 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일과를 모두 정해준다. 그렇다 보니 어릴 때부터 스스로 고민하여 결정하고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자기주도적 인생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한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갑자기 스스로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겁이 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껏 한 번도 직접 해보지 못한 일이니까 말이다.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부를 경우 되돌릴 수 없다는 두려움이나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때 밀려오는 후회와 자책은 우리로 하여금 결정장애를 불러온다. 우리는 아직 홀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기에는 선택과 실패에 익숙하지 못하다. 멘토가 유행하게 된 것도 같은 현상 때문일지 모르겠다. 누군가가 먼저 했던 선택을 따라 하기 위해서. 그런 가운데 때를 놓치지 않고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나 강연은 흔들리는 청춘들의 선택 지침이 되기는커녕 그들의 주머니를 노리기에만 급급하다.
아래는 사회 초년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달리기에 빗대어 써본 글이다.
트랙이 있다. 방향을 알려준다.
출발점이 있다. 공정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른 선수들이 있다. 경쟁을 알려준다.
도착점이 있다. 목표를 알려준다.
출발 신호가 있다. 뛰어야 할 때를 알려준다.
경쟁자들이 뛴다. 패배의 불안감을 알려준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준다. 아니 정해준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이것이 학창 시절의 룰이다.
사회에 나오면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 있다면 도착점이 인생의 끝점과 맞닿아 있다는 것.
인생의 방황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방황부터가 진짜 인생의 여정이다.
그 누구도 똑같은 길을 가지 못하며, 옳은 길도 틀린 길도 없다.
그저 내가 가는 길이 나의 길이며, 그 길이 곧 나를 말해줄 뿐이다.
윗글도 결국 그럴듯한 잡글에 불과하다. 그저 흘러가듯 한 번 보면 충분하다. 다른 사람의 조언이나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부디 내 안의 목소리에 집중하길 바란다. 나는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떨 때 행복을 느끼는지 생각해볼 시간을 갖길 바란다. 고민을 해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때는 혼자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뻔한 방법이지만 나의 경험상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 틀림없다.
여행을 떠나라.
처음 가본 곳에서,
두고 온 게 있을 리 없는 곳에서,
잃어버렸던 많은 것을 되찾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물론 이 또한 결정은 오롯이 자기 몫이다.
스스로 저지르고 스스로 책임지는 자기주도적 인생을 살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