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명무실(虛名無實)
모처럼 여유로운 공휴일. 우리 집의 유일한 혼돈의 장소인 내 방을 청소할 생각이었다. 제일 어지러운 책상을 정리하는데 명함 몇 장이 먼지와 함께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명함꽂이를 꺼내 펼쳐보니 이미 만석이다. 연락은커녕 누구인지도 잊어버린 수많은 이름. 내가 정말 이 많은 사람을 다 만나긴 했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대부분이 예전 광고회사에 다닐 당시에 만났던 클라이언트나 협력 업체의 명함들이었다. 지인들의 명함을 제외하고는 모두 꺼내 폐기 처분했다. 최근 몇 년간 연락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연락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이미 회사를 옮겨 새로운 명함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내 명함들도 쏟아져 나왔다. 도대체 명함은 왜 이리 많이 만들어주는 것인지, 종이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갈수록 명함 쓸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지금 회사에서 외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는 일을 하는 것도 있고, 인맥을 넓히기 위해 여기저기 커뮤니티에 나가던 것을 그만둔 것도 하나의 이유다.
혈기왕성한 사회 초년생 때는 마치 인맥이 재산인 양 뻔질나게 싸돌아다니며 명함을 교환했다. 대여섯 개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느라 하루걸러 하루가 술자리였고, 덕분에 인맥도 주량도 늘었다. 그때 늘린 주량은 지금도 나를 위해 요긴하게 쓰이고 있지만, 그때의 인맥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인다. 사람을 구하는 회사에는 사람을, 회사를 찾는 사람에게는 회사를 추천해준다. 애인을 찾는 사람들에게 소개팅을 주선하기도 한다. 어쨌든 내 인맥이 누군가를 위해 요긴하게 쓰여 다행이다.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맥을 만들었지만, 정작 인맥이 형성되고 나니 명함이 필요가 없어졌다. 비즈니스로 만났다면 명함의 쓸모가 더 있었을 테지만 사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명함은 제 할 일을 다 한 것이다.
한때는 명함을 모으는 게 취미였다. 특히 내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이나 메이저 독립 광고회사, 또는 외국계 광고회사의 명함이 주 타깃이었다. 그런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명함을 교환해 안면을 트고 지내면 내게도 그 회사로 갈 기회가 올 거라 믿었다. 인맥을 통해 회사에 들어가 보려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실제로 몇 번 기회가 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찾아온 기회란 잡을 수 없는 허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허튼 꼼수 그만두고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나 최선을 다하자. 열심히 하다 보면 기회가 다시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몇 년이 흘렀다. 운 좋게 큰 회사로 옮길 기회가 생겼고, 이직 후 일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었다. 내가 좇던 것은 큰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큰 회사의 CI가 박힌 명함뿐이라는 걸. 처음엔 좋았다. 어디로 이직했냐는 물음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서 좋았고, 명함을 교환했을 때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그러나 큰 회사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과 사람들의 부러움이 담긴 시선 등이 좋았을 뿐 회사의 연봉이나 복지, 위치 조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근무 환경은 이전 회사보다 더 나빴다. 작은 회사에 비해 탑다운상의하달 형식의 일 처리가 잦았고 회의 분위기도 수평적이기보다 수직적이었으며, 일을 처리하는 프로세스나 결재 체계도 복잡했다. 자유롭고 유연한 근무 환경에 익숙한 나로서는 딱딱하고 조직적인 회사 생활이 너무 갑갑하게 느껴졌다. 내부 경쟁도 심했고, 상사의 잦은 참견도 싫었다. 억지로 하는 건 못 견디는 성격인지라 결국 일신상의 이유를 핑계로 회사를 나왔다.
어떤 회사에 다니고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로 그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이들이 많다. 처음 만나는 사람일 경우 판단할 근거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다니는 회사나 직업보다 오히려 첫인상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 더 많은 정보를 준다고 생각한다. 나도 한때는 명함에 의지해 사람을 판단했고, 나 또한 명함 뒤에 숨기도 했다. 그걸로 나를 판단하길 바랐다. 하지만 명함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고작 이름과 회사, 회사의 위치, 직업, 직급 또는 직책, 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주소, 팩스 번호 정도이다. 이마저도 이직을 하면 이름, 휴대폰 번호를 제외하고는 모두 틀린 정보가 된다. 이름과 휴대폰 번호도 엄밀히 따지면 가변성 정보다. 결국 명함 속에서 변하지 않을 정보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친구 한 명을 떠올려보자. 친구의 성격과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을 회사나 직급, 직책으로 유추할 수 있는가? 친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의 회사나 직급, 직책 등에 무관심하다.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그것은 결코 중요한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명함은 쉽게 바뀐다. 쉽게 바뀌는 정보를 근거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돌아보건대 나는 책임과 권한이 동시에 주어진 일을 좋아했고 자유로운 근무 환경에서 더 좋은 성과를 냈다. 즉 믿고 맡겨야 재밌게 열심히 일하는 스타일이었다.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고 딴지를 걸면 잘하고자 하는 의욕조차 잃었다. 친구들은 누구 밑에서 일 못하는 성격이니 차라리 장사를 하는 게 낫겠다며 놀리기도 했다. 이런 제멋대로인 성격 탓에 서랍 속에 쌓여 있던 내 명함은 십수 가지나 되었다. 다니던 회사가 분사하거나 명함 디자인을 바꾼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직장 철새가 도래지를 옮긴 까닭이다. 광고업계에서 나처럼 경력 관리를 못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연 단위로 쪼개진 경력은 인정받기도 힘들고 어디 가서 얘기하기도 부끄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덕분에 다양한 회사에 다녀봤고, 다양한 스타일의 사람들과 함께 일해 볼 수 있었다. 한 분야의 일을 오래 한 경험은 없지만 많은 분야의 일을 두루 겪어봤다.
가장 오래 했고, 지금까지도 카피라이터로 일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직종에서 종사했었다. 예전 명함을 살펴보니 내 이름 옆에는 별별 직종이 다 쓰여 있었다. 프로그래머부터 브랜드 매니저, 에디터, AE, 크리에이터, 콘셉트 플래닝 매니저, 어카운트 매니저 등.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오락가락 정신없이 구불거린다. 수많은 명함을 찍어내며 돌고 돌아 나는 어떤 직업을 향해 가고 있던 것일까? 결과론적으로 생각해보니 작가라는 길을 걷기 위해 이렇게 헤맨 게 아닌가 싶다. 무척이나 비효율적인 삶이다. 하지만 미래의 일은 또 모른다. 책 한 권 겨우 내고 장사를 하고 있을지도. 그래도 글은 꾸준히 쓸 것이다. 그게 내 평생의 업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를 나답게 하는 일이 글을 쓰는 것이며 나를 온전히 표현하는 단어가 글쟁이이길 바란다. 당신의 명함도 당신다워지는 길로 가는 통행권이길 빈다.
명함은 당신의 이름표가 아니라 당신이 직을 얻기 위해 시간을 지불한 영수증에 불과할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