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마주침이 불러온 심판

by 스윗퍼시먼

1. 눈앞의 그림자


그날 오후, 나는 익숙한 길을 지나고 있었다.

정해진 일정을 마친 후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나를 위한 시간이라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함이었다.


갑자기 어떤 그림자가 내 시야를 스쳤다.

마치 무의식이 먼저 감지한 것처럼, 내 심장이 일순 정지했다.

그는 거기에 있었다.

내가 잡았던 그 사람. 지하철 역에서 들킨 것을 너무나 놀랐던 그 얼굴. 그 얼굴이 바로 앞, 10미터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손이 떨렸다.

나는 그 사람을 본 것이 아니었다. 그의 존재를 본 것이었다.

그 존재가 내 삶을 다시 침범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소설 속 범죄 피해자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은 픽션이 아니었다. 진짜 공포가 나를 덮쳤다.

놀란 눈 때문에 얼굴이 터질 것만 같았다. 웃어야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웃음을 지어야 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것 같았다. 자연스러워야 했다.

나는 지나쳤다.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가 뒤돌아보지 않기를, 나를 알아보지 않기를 기도하며.



2. 존재의 공포


집에 도착했을 때, 나는 문을 잠그고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손은 여전히 떨렸고, 심장은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왜 그가 거기에 있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다. 하지만 우연이라는 단어는 나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그는 자유로웠다. 내가 지하철역에서, 경찰서에서, 내 일상 흔드는 동안, 그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무너뜨렸다.

법은 그에게 무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했다. 그는 판결이 나기 전까지 자유로운 시민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는 어떤 원칙으로 보호받고 있는가.

피해자에게는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보호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그를 마주친 순간, 다시 피해자가 되었다. 아니, 피해자였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다시 피해자가 되어야 했다.



3. 제도의 균열


나는 경찰서에 전화했다.

"범인을 우연히 마주쳤어요."

담당자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사건은 이미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그럼 검찰은요?"

"검찰에 문의하셔야 합니다."

검찰에 전화했다.

"담당 검사님이 바쁘십니다. 아직 검토하시지 못한 것 같습니다.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전화했다. 그리고 또 전화했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비슷했다.

"검토 중입니다.""재판에 넘길지 확인 중입니다.""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림은 안심이 아니라 불안을 키웠다.

제도는 완벽해 보였다. 경찰이 있고, 검찰이 있고, 법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제도의 틈 사이로, 나는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4. 보복의 그림자


우연히 마주친 것일까, 아니면 의도된 것일까.

그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보복 범죄. 묻지마 범죄. 그 단어들이 뉴스에서 들려올 때마다, 나는 움찔했다.

"신고한 피해자를 찾아가 보복했다.""피해자가 집 앞에서 습격당했다."

그런 뉴스들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익숙했다.

사회는 그것을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피해자에게 그것은 예외가 아니라 가능성이다.

항상 존재하는, 지워지지 않는 공포.

나는 밖을 나설 때마다 주변을 살폈다.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은 아닌지, 익숙한 얼굴이 보이는 것은 아닌지.

그 경계는 나를 지켰지만, 동시에 나를 감옥에 가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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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침묵, 그 속에 숨은 비명을 저는 문장으로 꺼내고 싶었습니다. 20대엔 공학을, 30대엔 정치를, 40대엔 다시 육아를, 지금은 민낯을 경험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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