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불면의 시작
정신과를 처음 찾은 날, 나는 그저 '불면증 약 하나만' 받아 오려 했다.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이야 수도 없이 알고 있었다. 몸이 지치도록 운동을 하고, 좋아하는 사람과 실컷 웃고, 와인을 한 잔 들이켜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침대 위에서도, 옷방 바닥에서도, 소파 아래에서조차도 내 생각은 마치 검은 잉크처럼 조용히 퍼졌다. 필라테스 기구 위에 몸을 던져봐도 소용없었다.
생각이 떠오른다. 아니, 생각이 '습격'해 온다. 도망칠 틈도, 피할 구멍도 없이, 그날의 장면, 그날의 얼굴, 그날의 냄새와 공기까지, 밤마다 나를 꿰뚫었다.
"미치겠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입으로 뱉고 나면 정말 내가 미칠까 봐, 그 말이 나를 확정해버릴까 봐 두려웠다.
2. 약이라는 이름의 딜레마
그렇게 여러 날, 핸드폰의 전화 버튼을 수차례 누르다 지우다 반복했다. '여의사가 있는 곳' 을 검색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냥… 잠을 잘 자고 싶을 뿐이었다.
정신과. 그 단어는 여전히 무거웠다. 마치 내가 정말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잠을 못 자는 것은 단순히 피곤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서서히 지워가는 과정이었다.
의사 앞에 앉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주저리주저리, 엉켜 있던 말들이 쏟아졌다. 그날의 일, 재판의 지연, 우연한 마주침, 그리고 밤마다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 그리고 한참을 듣던 의사는 말했다.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에요. 생각은, 때론 우리가 통제할 수 없어요. 도움을 받아야 해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도움을 받는 것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잠만 자고 싶었던 거였는데, 정신과 약이라니.
의사는 내게 조심스럽게 약을 건넸다.
"오늘 밤엔, 잠들 수 있을 거예요."
반신반의, 아니 거의 불신에 가까운 마음으로 작은 두 알을 삼켰다. 그런데, 정말 잠이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절'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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