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나는 물었다.
“왜 나만 이렇게 오래 아파야 하나요?”
하지만 끝에서 나는 다른 질문을 하고 있었다.
“정의란 무엇이고, 왜 이렇게까지 지연되는가?”
이제 나는 안다. 그 질문은 단지 나의 고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사람보다 구조가 먼저인 시스템이 남긴 흔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날 법정에 앉았을 때, 나는 이미 질문의 결론을 알고 있었다. 법은 어쩌면 중립적이지 않다. 법은 중립적인 ‘척’을 한다. 그것은 사람보다 형식을 먼저 보호하려는 침묵의 기술이었다.
이제 내가 묻고 있는 건 ‘정의’가 아니다. ‘정의의 가능성’이다. 법정에서 내가 느낀 감정은 고요한 잔인함이었다. 말은 정중했고, 태도는 예의 바르며, 절차는 정확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나의 고통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질적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가 제출한 탄원서는 울분과 호소의 기록이었지만, 그날 오후, 피고인 측도 똑같이 의견서를 냈다. 기이하게도 같은 날이었다. 우연일까? 아니면 어떤 정보의 흐름이 있었던 걸까? 나는 법이란, 정보를 누가 먼저 갖느냐에 따라 기울어지는 것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피해자의 위치에서 질문자의 위치로 옮겨졌다. 법은 언제나 형식의 완결성을 중요시한다. 그것은 사회 질서 유지에 필요한 원칙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형식은, 종종 사람을 사라지게 만든다. 이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정의의 착시인가. 나는 지금, 법을 비판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 그 안에서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 글은 기록이다. 한 사람이 ‘사건번호’가 되지 않기 위해 쓴 기록이다.
이 글은 질문이다. 법이 정말로 사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구조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 글은 희망이다. 피해자에게도 질문할 자격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 위한 희망이다.
나는 이제 ‘정의’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왜냐하면 그 단어는 너무 자주 정의롭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정의는 판결이 아니라 기억이었다. 내가 무너졌던 밤들, 울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던 그 순간들, 그리고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운 탄원서 한 장. 정의는 그 모든 기억이 모여 만들어낸 집단적인 기억의 서사여야 한다.
법은 사람을 지키는가, 아니면 구조를 지키는가?’
아직도 나의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있다면, 이 질문은 언젠가 어떤 변화를 이끌 씨앗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더 이상 법정의 피해자가 아니다. 나는 질문하는 시민이고, 증언하는 사람이며, 기록하는 작가다. 부디 기억해 달라. 정의는 언제나 완성형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질문을 통해 점진적으로 도착하는 무엇이라는 것을.
나는 정의의 끝자락에서 아직 묻고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이, 당신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