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냄새가 맡고 싶은 날이 있지

<킁킁 가게> 김윤화 글, 혜경 그림 / 샘터

by 진영

저희 조카에게는 '아가'가 있습니다. '아가'는 조카의 애착인형인데요. 조카가 처음 태어나서 집에 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껌딱지처럼 착 붙어 다니는 한 쌍이에요. 평소에는 고사리같은 손으로 쥐거나 겨드랑이에 끼고 다니는 '아가'를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을 때가 있어요. 바로 '마음이 불안한 순간'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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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는 혼나서 서글플 때, 넘어져서 아플 때, 낯설어서 어색할 때, 자기 마음을 몰라줘 속상할 때, 그리고 용기가 필요할 때 아가의 냄새를 맡습니다. 뽀뽀하듯 아가의 얼굴을 자기 얼굴에 갖다 대기도 하고, 사진처럼 아가의 손을 자기 코에 가까이 가져가 '마음의 안정'을 취합니다.


아무리 애착인형이라지만 도대체 아가에게서 무슨 냄새가 나길래 저럴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조카가 잘 때 슬쩍 아가 냄새를 맡아봤는데, 바로 납득이 됐어요. 킁킁. '엄마 냄새'가 났거든요. 조카에게 아가는 엄마 대신이었던 거였어요.


엄마 냄새는 정말 신기해요. 다 큰 저도 엄마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문득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있어요. 언젠가 엄마가 내 곁에 없을 때, 엄마 냄새가 가장 그리울 것 같아요. 엄마 얼굴은 사진으로 보면 되고 엄마 목소리는 영상으로 들으면 되는데, 엄마 냄새는 엄아 없이 어떻게 맡을까요? 으, 이런 상상은 상상만으로도 슬프니 이만 책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책이 더 슬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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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온갖 냄새를 파는 신기한 가게가 있습니다. 가게가 특이하게 생겼네요. 지붕에 달린 뾰족한 두 귀와 간판에 적힌 'ㅇㅇ'자가 마치 돼지의 얼굴 같아요. 그 가게 안에서 한 남자가 가게 앞에 웃으며 앉아 있는 남자아이를 지켜보고 있어요. <킁킁 가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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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가게는 냄새를 파는 가게예요.

하얗고 네모난 건물 위로 빨간 지붕이 솟아 있어요.

세모난 귀가 지붕 밖으로 삐죽 나와 있고, 건물 뒤로 뱅그르르 말린 꼬리도 보여요.

찬이는 오백 원짜리 동전을 꼭 쥔 채로 가게 앞을 서성거려요.

오백 원을 넣어야 냄새를 맡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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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문이 열렸어요. 찬이는 가게 안으로 뛰어갔지요.

돼지 코 모자를 쓴 아저씨가 상냥하게 웃었어요.

"아이고, 오늘도 일찍 왔네! 방학인데 늦잠도 안 자?"

"네! 근데 '엄마 냄새' 아직도 안 나왔어요?"

찬이는 대꾸를 하는 둥 마는 둥 궁금한 것부터 물었어요.

하지만 킁킁 가게 사장님은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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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찬이는 백 가지도 넘는 냄새가 모여 있는 킁킁 가게에 들러요.

그중에서도 사람에게서 나는 온갖 냄새를 모아 놓은 '사람 냄새' 코너를 찾는답니다.

땀 냄새, 술 냄새, 입 냄새, 방귀 냄새, 아기 냄새도 있는데 찬이가 원하는 엄마 냄새만 아직 없네요.

찬이는 엄마 냄새 대신 파마 약 냄새를 골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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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가게를 나오다가 찬이는 어제도, 그제도 본 아줌마를 봐요.

긴 머리가 어깨 위로 축 늘어진 아줌마를 보며 찬이는 엄마를 떠올려요.

"아유, 저 늘어진 머리! 뽀글뽀글 말아주고 싶네!"

엄마가 봤다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찬이의 엄마는 미용사였거든요.

지금도 어디선가 머리를 만지고 있을 거라는 찬이의 추측이 어쩐지 마음에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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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는 그날을 똑똑히 기억해요.

술에 취하면 무엇이든 부수던 아빠가 엄마까지 부숴버리려고 한 날이요.

아빠는 그날 엄마의 눈가를 퍼렇게 멍들다 못해 머리카락까지 싹둑 잘라버렸어요.

그리고 엄마는 바닥에 뒹구는 머리카락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어요.


아마도 이날 이후로 찬이는 엄마를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왜 찬이가 그토록 엄마 냄새를 찾았는지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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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찬이가 킁킁 가게 앞에서 마주친 아줌마는 매일 '아기 냄새' 코너를 찾아요.

오백 원을 넣고 팩 하나를 들이마신 뒤, 또 오백 원을 넣어요.

파마 약 냄새를 맡으며 찬이가 그랬듯, 아줌마는 아기 냄새를 맡으며 울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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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이는 그런 아줌마를 모른 척할 수 없어요.

"아줌마 아기가 떠나버렸어요?"

아줌마는 아기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어요.


다정한 킁킁 가게 사장님도 걱정되었는지 몰래 지켜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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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을 잃은 마음을 잘 아는 찬이와 아줌마는 이날 이후로 가까워졌어요.

킁킁 가게의 첫 손님이었던 두 사람은 매일 아침 '사르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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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이 무거우면 기분도 처진대요, 우리 엄마가요."

파마머리를 하고 나타난 아줌마는 엄마의 말대로 즐거워 보였어요.

아줌마가 웃을 때면 머리카락도 흔들흔들 춤을 췄는데 그럴 때마다 파마 약 냄새가 났어요.

찬이가 엄마 냄새 대신 맡던 파마 약 냄새 말이에요.


그렇게 두 사람은 점점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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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가게 아저씨는 엄마 냄새를 만들지 못해 미안하다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어요.

"엄마 냄새를 까먹을까봐 그랬어요. 이젠 괜찮아요, 기억할 수 있으니까."

찬이는 엄마를 떠올리며 아저씨를 위로했어요.

아줌마에게서는 밥 냄새 같기도 하고, 비누 냄새 같기도 하고 한 냄새가 나요.

엄마에게도 이런 냄새가 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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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아! 우리 놀러 갈까? 오늘 아줌마 쉬는 날인데."

"놀이공원 갈까? 아님, 영화 보고 맛있는 거 먹을까?"

아줌마가 쉬지 않고 얘기하는 바람에 찬이는 궁금한 걸 묻지 못했어요.

'아줌마도 이젠 괜찮은 거죠?' 찬이는 속으로만 생각했어요.

아줌마가 찬이에게 손을 내밀었고, 찬이는 그 손을 잡았어요.

아기 손보다 훨씬 크고, 꼬질꼬질 냄새도 나는 찬이의 손을 아줌마는 더 세게, 꼭 잡았어요.




<킁킁 가게>는 '냄새'를 소재로 모성애와 사람 사이의 따뜻한 정을 그려낸 책입니다. 가정폭력, 이혼, 죽음 등 어두운 이야기를 절망적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린아이들과 함께 읽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간직한 찬이와 아줌마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어줍니다. 찬이는 아줌마에게서 익숙한 엄마 냄새를 맡으며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고, 아줌마는 찬이를 보며 '우리 아기가 살아 있있었다면 이런 모습이었겠지' 하며 자식처럼 아껴주지요.


특히 찬이를 보며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듬는 법을 배웠습니다. 찬이는 '나는 아줌마 덕분에 괜찮아졌는데, 나를 만난 아줌마는 괜찮아졌을까?' 염려하지만, 굳이 캐묻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힘들 때 아무 말 하지 않고 곁에 있어주는 것이 최고의 위로임을 잘 아는 것이지요.


이 책을 읽고 나면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냄새가 떠오릅니다. 그 냄새에 얽힌 추억도 함께요. 흠, 저도 엄마가 보고 싶어지네요. 오늘 낮에도 같이 카페에 다녀왔는데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엄마 냄새' 나는 사진으로 글을 마무리 지어봅니다.


ONE_0250.jpg?type=w773 결혼식날, 제 손을 꼬옥 잡은 엄마의 두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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