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험과 안정 May 14. 2016

인생은 선물일까? 짐일까?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우리는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 살고 있고, 날마다 새로운 제품과 기술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 우리가 저 멀리 떨어져 있는 프랑스의 한 빈민가에서 창녀의 자식들을 대신 길러주는 집에서 나타나는 삶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빈민의 삶을 직접 경험하지 않는 이상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간접 경험의 수단인 책이 있지 않은가! 지금부터 소개할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이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빈민가에 대한 간접경험을 제공해줄 것이다. 

 자기 앞의 생은 창녀의 자식들을 돌봐주는 로자 아줌마와 그 자식들 중 하나인 모모가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빈민가의 삶에 대해 이해와 공감을 돕고 있다. 모모를 중심으로 하여 내 나름대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Phase 1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모모는 부모님이 누군지, 어디서 왔는 지 아무것도 모른채로 로자 아줌마 밑에서 살게 된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나이가 10살 정도 되고 회교도인이라는 것 밖에 없다. 이따금씩 로자 아줌마한테 부모님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지만, '나를 떠나려고 하느냐' 하는 로자 아줌마의 울음 섞인 대답에 그는 답을 듣지 못한다. 한편, 로자 아줌마는 나이가 들어서 점점 건강이 악화된다. 이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오래살고 싶지 않아하는 로자 아줌마의 생각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모모는 주변에 젊은 아줌마들한테서 '내가 너를 기르고 싶다'는 유혹을 받지만 로자 아줌마와 떨어지고 싶지 않아 이를 거절한다.


Phase 2 내가 찾은 사랑

 로자 아줌마의 건강은 더 악화되었고 스스로 걷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의사는 로자 아줌마를 병원에 보내야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로자 아줌마를 지키고 싶어던 모모는 로자 아줌마에게 안락사할 권리가 필요하다며 강하게 반박한다. 정신병원에 갇혀 있던 모모의 아버지가 불현듯 모모를 찾으러 로자 아줌마에게 찾아온다. 로자 아줌마는 모모 아버지를 속이기 위해 실수로 자식에게 유태인 교육을 시켰다고 한다. 그렇게 로자 아줌마와 모모를 떼어내려는 요인을 모두 제거한 후 모모는 계속 로자 아줌마 곁을 지킨다.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일까? 죽지 못해 짊어져야 할 짐일까?

 개인적으로 로자 아줌마에 대한 모모의 사랑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대신 로자 아줌마를 통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실 누구나 오래살고 싶어하고, 과학기술도 이에 부흥하여 인간수명을 늘릴 수 있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빈민가에서 남들처럼 살지 못해 이미 건강이 악화된 로자 아줌마의 삶을 살게 된다면 과연 오래 살고 싶을까? 이라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로자 아줌마를 안락사 시켜달라는 모모에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삶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하루하루 주어지는 감사한 선물이 될 수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통이자 탈출하고 싶은 감옥과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누군가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누군가는 어려운 환경으로 인하여 절망하고 원망한다. 누군가는 어렵지 않은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지만, 누군가는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더 잘 살기 위해 욕심을 부린다. 


사회는 이처럼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합의를(법과 도덕) 통해 같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합체일 것이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되지 않나' 라고 생각해 보며 이 글을 마친다.

(여기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더 길게 써 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발제 8 - 법은 얼마나 정의로운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