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태워 로켓을 쏘아 올린다.
스타트업에서 흔히 하고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깁니다. 전에 이야기했듯, J커브를 목표로 하는 것이 스타트업이다라는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다만 이 로켓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로켓이 앞에 있다면 마땅히 타야 한다는 점은 지분과 묶어서 생각해야 할거 같아요. ‘회사의 성장 = 나 자신의 성장’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초기에만 능력 있는 인재고, 회사가 성장한 뒤에는 중요하지 않은 인재도 있는 법이죠. 프라이머의 권도균 대표도 이니시스를 매각한 이유를 해외 무대에서 경쟁할 깜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어쨌든, 스타트업은 ‘회사의 성장 = 나 자신의 성장’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실제로 지분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걸 체감하긴 어려워요.
‘로켓이 앞에 있다면 마땅히 타야 한다’는 이런 의미예요. 지금 눈앞에 몇 천억, 몇 조원이 될 서비스의 프로토타입을 보고 있다. 그러면 마땅히 이 서비스에 합류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미인데요. 지분이 없이 일반적인 월급을 수령하는 것이라면, 이 로켓을 타야 할 이유가 없다고 봐요. ‘마땅히’라는 부분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주어지더라도 로켓이 화성에 갈지 목성에 갈지 알아야 된다는 입장이기도 해요. 로켓이라면 도박 사이트도 괜찮은 걸까요? 과거에 네이버를 ‘싫어했던’ 이유 중에 하나가 섰다(화투로 하는 도박, 노름 설마 하셨겠지만 그거 맞음) 때문이었습니다. 네이버를 싫어하다 지금은 좋아하는 과정도 네이버 편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그런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스타트업은 전력을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봐요. 워라밸, 삶과 일의 벨런스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스타트업도 워라밸이다 라고 말하는 실리콘벨리의 대표들이 많지요. 더 정확히는 워라밸이 아니라 work and life harmony라고 표현해요. (채용공고에 우리 회사에서 워라밸은 꿈도 꾸지 마라고 쓸 수는 없잖아요? 이래서 너랑 나랑 합의하면 모든 게 가능한 회사. 근로시간제한? 그거 뭐죠? 먹는 건가요? 우걱우걱 ) 하지만 그런 삶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면, 며칠, 혹은 몇 주, 몇 달씩 되는 강행군을 할 수 없겠지요. 로켓이 있으면 타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로켓을 쏘아 올리는 연료는 ‘나’ 일 가능성이 높아요. 나를 태워 로켓이 발사되는 것. 그것이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로켓이 쏘아 올려진 후에 보상이 생길 것이고요.
실제로 쿠팡의 초기 멤버로 꽤 거금을 수령하고 회사를 떠난 친구도 있었고, 또 한 친구는 핀테크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시작해 CTO를 역임하는 등 핵심 멤버로 일하고 있는데요. 벌써 회사 가치의 증가에 따라 지분가치가 합류 시점보다 6배 상승했고, 앞으로도 더 상승할 것이라 보고 있어요.
그런 성공 사례들이 있음에도, 나를 태워가며 일하는 스타트업의 업무방식은 생각해볼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건 일반 기업에서 참고할 수 없는 방식이 아닐까요? 개인적으로 동의하는 글이 있어 하나 소개합니다!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을 불태웠음에도 자신의 성장이 체감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감하고 있어요.
참고
스타트업에서 성장한다는 주니어의 착각 : 시장에서 인정하는 경력을 쌓기 어렵다. 쌓은 경험을 능력이라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성장이라 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원하는 곳을 가기 위해서 나를 태워 로켓을 쏘아 올리는 건 어느 정도는 동의함. 나는야 불쏘시개!) IT와는 전혀 상관없지만,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의 명언 하나를 인용하며 이번 챕터를 마치고 싶습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면 당신은 결국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가게 된다.
(You've got to be very careful if you don't know where you are going because you might not get there.)
위에 추상적인 이야기를 조금 구체적으로 해보려 해요. 서비스를 성장시키는 게 목적이기 때문에 스타트업이 서비스를 만드는 방식은 큰 돌덩이를 쌓는 방식이에요. 하나의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비커를 채우는 것으로 비유하려 합니다.
대기업의 방식은 비커를 모래로 채우는 것이라 생각해요. 서비스에 빈틈이 없고, 오류가 전혀 없어야 하죠. 하지만 그렇게 비커를 채우려면 많은 모래가 필요할 거예요. 3분에 1쯤 채우고 이게 서비스다!라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기도 하고요.
반면 스타트업은 큰 돌덩이를 넣는 방식이라고 봐요. 서비스의 중심을 잡아줄 큰 개념과 프로토 타입을 만들고, 이를 지탱해줄 또 다른 돌덩이들을 넣는 거죠. 이런 방식으로 비커를 채운다면 빈틈이 많고, 위태 위태해 보일지는 몰라도, 3분에 1쯤 모레로 채워진 비커보다 더 많이 채운 것으로 보일 거예요.
그리고 이것이 새로운 투자와, 매각의 이유 기도해요. 큰 돌덩이로 쌓인 위태로운 서비스에 모래를 채워 넣어 빈틈을 메우는 것이죠. 큰 돌덩이를 쌓는 능력과 빈틈없이 모래를 채우는 능력. 아예 다른 능력의 영역이 아닐까 싶어요. 몇 번 이야기했듯이, 세계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능력과 운영하는 능력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여기에 속하지 않을까 싶어요.
좀 더 직접적인 예를 들면, 보안이 있겠죠. 스타트업이 1년 내에 보안을 신경 쓴다는 것은 사치다 라는 견해가 있을 만큼, 스타트업은 보안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요. (사내 보안은 a4 용지 하나로 대체한다. 기업비밀이니 유출 금지! 그런데, 이걸 붙이냐 안 붙이냐 하나로도 큰 차이가 있어요.) 또 다른 예는 세그먼트를 좁혀 한 가지만 공략한다는 전략인데요. 모든 니즈에 대응할 수 없으니 딱 한 가지 니즈에만 대응한다라는 거죠. 카톡도 처음에는 채팅만을 서비스했고, 토스도 간편 송금이라는 하나의 서비스만 했지요. 우리의 경쟁사인 원티드도 경력직 채용에만 집중했던 서비스고요.
드디어 일못러의 변명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큰 개념만 세우고, 빈틈은 문제가 발생하면 대응한다’라는 업무 방식 때문에 많은 사고를 쳤습니다. 그리고 기획안의 디테일을 잡아가면서 F.U 한다는 방식도 사람인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사실 F.U도 익숙하지 않아요. 개발, 디자인 리소스가 부족해? 내가 하지 뭐) 제 글을 보시기만 한 분들은 어떨지 몰라도, 실제로 작업을 진행하신 분들은 뭐 저런 게 다 있나~ 싶으셨을 겁니다. 큰 돌을 쌓는 사람이 아니라 모래를 부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쉽지 않네요. (이런 사고뭉치! 데헷!)
그리고 마치 외줄 타는 것과 같은, 그러니까 간신히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있게 서비스를 구성하는 방식도 이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건 좋은 사례들이 있고, 스타트업에서 배울만한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서 법적인 제한을 회피해보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봐요. 다음에는 토스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토스가 법을 회피한 방식을 보면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고, 토스 외에도 종종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 같아 여기서는 이만 생략할게요! (이봐 자네 시용기간 얼마 안 남았어. 다음은 없어.)
마지막으로 일하는 템포에 대해 이야기할까 해요. ‘스타트업은 마라토너가 아니라 축구선수다.’ 이 표현은 스타트업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은 아니에요. 하지만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앞에서 자신을 태운다는 표현을 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걸 몇 년씩 지속할 수는 없지요. 마일스톤, OKR과 같은 목표를 세우고 전력 질주하고 쉬는 게 스타트업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저 표현을 하신 VC(투자 심사자)분의 견해를 그대로 인용할게요.
보통의 직장인들은 축구선수처럼 전력 질주하고 나면 이어지는 번아웃으로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전력질주를 했다고 해서 회사에서 그것을 알고 업무 강도를 낮춰주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직장인은 마라토너가 되어야 한다. 마라토너라고 해서 전력을 다하지는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버 페이스를 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결코 쓰러져서는 안 되니까. 하지만 스타트업은 다르다. 매일매일이 같지 않다. 어떨 때는 전력질주를 해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반대로 언제나 뛰고 있을 필요는 없다. 에너지를 비축하며 설렁설렁 뛸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든 전력 질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절한 비유긴 하지만, 일반 회사의 직장인들도 일하는 템포가 항상 일정하지는 않죠. 좀 더 정확히는 이게 개인 한 사람이 아니라 팀 전체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뜻이겠죠. 그리고 이런 개념을 도입해 스프린트 기간을 잡고 움직이는 스타트업들도 있어요. 하지만 현실은 매일이 스프린트 거나 그냥 마라톤인 스타트업이 많죠.
이렇게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 이야기해봤어요. 실무적인 이야기가 연결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게 스타트업의 방식인가?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스타트업은 체계 없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끝없는 유연함을 요구하는 조직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스타트업이 실무적으로 일하는 방식은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고, 제가 경험해 온 것들도 저와 제가 겪어온 회사들의 방식이었지, ‘스타트업의 업무방식’이라고 하긴 어려울 거 같아 구체적인 예는 피했습니다.
유연함을 갖추지 못했을 때, 레거시를 그대로 수용하려 할 때, 관성에 의한 결정을 할 때, 저는 ‘이건 스타트업이 아닙니다.’ 혹은 ‘이건 스타트업의 방식이 아닙니다’라는 말을 자주 해왔어요. 그런데 이 말은 ‘스타트업이라면 이렇게 해야 돼’라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접근하면 우리는 대기업을 이길 수 없습니다.’라는 뜻이었는데, 지금에서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스타트업은 이렇게 해야만 해!’라는 강요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많은 대기업, 특히 네이버와 카카오는 자신들을 스타트업이라고 말해요. 그건 아마도 자신들이 세운 체계를 끊임없이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실리콘벨리에서는 체계의 완성이 아니라 계속 성장하려는 의지를 가지면 모두 스타트업이다라고 말하는데 이런 개념이 한국에서도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모두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업계를 선도한다는 것은 꾸준히 앞선 개념과 기준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해요. 삼성이 반도체의 강자가 될 수 있었던 ‘황의 법칙’이나 검색의 본질을 궁금함을 해결하는 것으로 잡았던 네이버의 ‘지식인’ 같은 것들이 앞선 기준이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 황의 법칙은 깨졌고, 네이버가 전면에 내세웠던 지식인은 뒤로 물러났지만, 두 회 사는 여전히 업계의 선두에 있어요. 계속해서 새로운 개념과 앞선 기준을 만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업의 안정화보다 이런 변화들을 택해온 자세와 태도가 스타트업스럽다고 평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그래서 우리는 스타트업에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 것이고요.
회사의 한 분이 술자리에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스타트업 출신이라는 것이 마치 자랑 같다고. 전혀 아니라고는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하지만 후회와 좌절, 실패란 단어들에 더 가까울 겁니다. 스타트업이라는 길을 택했을 때, 그 어떤 분야보다 앞서있고, 건전한 생각을 가진 업계라고 판단했기에 뛰어들었고, 거기에서 배운 자세와 태도 중에 자부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제 판단과 현실이 많이 달랐기에 자랑보다는 실패에 가까웠겠지요. 이번 주에 The Long Game이라는 링크를 공유했듯이, 폭발적인 성장을 목표로 하는 것이 과연 정답인지 모르겠고,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 성장을 하는 방식 역시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망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이런 성향을 가졌기에 스타트업으로 망했을 수도 있겠죠! 결정적으로, 그것이 자랑이라면 이 회사에 있지 않고 다시 스타트업에서 일했겠지요.)
세상에 정답은 없지만, 길이라고 부를만한 것들은 발에 차이도록 많지요. 스타트업도 그 많은 길 중에 하나일 뿐이고, 스타트업 안에서도 하나로 묶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방법과 생각과 길이 존재하겠지요. 그중에서 자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고, 그것을 어떻게 정답으로 만들어갈지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이렇게 일하고 싶은데, 현실은 이렇지가 않네?라는 고민은 꽤나 흔한 것이라 예상합니다. 그래서 제가 겪은 스타트업은 이런 생각으로, 이런 방법으로 일한다는 소개가 길을 선택하는데, 정답으로 만들어가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할 뿐입니다. 흔한 말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겠죠. 스타트업은 그 다름이 극도로 발달해 있고, 옳던 그르던 그것을 다름으로 인정해주기 쉬운 회사들이기에 아 저런 방식을 나만 생각하는 것은 아니구나, 또는 아 저런 방식에도 한계가 있을 수 있구나 하고 알게 되면 좋을 거 같아요! 그 한계들을 알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방식이 좋아!라는 게 가장 베스트라고 생각해요. 한계와 단점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요!
쓰다 보니 가장 중요한 말이 빠진 거 같네요. ‘스타트업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드는 과정’이라는 말도 있어요. ‘그게 되겠어?’를 ‘그게 되네!’라고 바꾸는 과정 자체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완전히 도의적으로 잘못되지 않았다면) 수단과 방법은 중요하지 않지요. 이런 자세와 태도가 스타트업이 일하는 방법의 본질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지 다 쓰고 나서야 가장 본질적인 부분을 발견한 이 기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