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앞에서도 마차를 보게 되지 않을까?
우마무스메의 마차 시위를 바라보며, 조금 반성을 한다
1. 근황
아주 오랜만에 글입니다.
개인적으로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고,
퇴사를 번복하고 많은 일을 하게 되어 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오랫동안 글을 놓아 버렸네요.
시리즈로 쓰던걸 무책임하게 팽개쳐 놓았기 때문에,
조금 창피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오늘은 못써내려 가는 시리즈는 접어놓고,
IT에서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 기획자로 꼭 하고 싶은, 해야 할 이야기가 생겨서 글을 적어 봅니다.
2. 말딸,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들어보신 적 있으실까요?
몇 달 전에 런칭으로 매우 화제가 되었던 게임이고, 지금은 마차 배송으로 기사가 나오고 있는 그 게임입니다.
일본의 경주마를 모티브로 의인화된 말을 키우고,
경주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적인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유저들이 운영진의 잘못된 운영을 알리기 위해 마차를 보내려 하고 있고,
이게 화제가 되어 많은 기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한국 운영(퍼블리싱)사는 누구나 다아는 그 회사, 카카오 게임즈입니다.
글을 작성하는 오늘(25일), 운영진의 사과 공지문도 읽어보게 됐습니다.
저도 이 게임의 라이트 유저고,
한편으로는 IT 서비스에 종사하는 기획자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유저의 입장과 서비스를 운영하는 운영자의 입장 모두에 이입하여 상황을 보고 있어요.
3. 왜 마차를 게임사로 보내게 되었을까?
작년에 게임계에서 트럭 항의가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게임사에 트럭을 보내 항의하는 방법은 이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합니다.
우마무스메의 유저들은 더 화제를 만들기 위해 말을 키우는 게임이니, 마차를 보내자라고 뜻을 모았습니다.
이런 항의를 하는 이유는 카카오 게임즈의 운영이 그다지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저들이 말하는 항의 사유를 요약해 볼게요.
1) 일본 서버에 비해 무료로 주어지는 재화의 양이 작다
2) 게임 내 중요 이벤트의 공지를 늦게 하여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2-1) 늦은 공지뿐만 아니라, 이벤트가 무엇인지 설명조차도 없다.
3) 게임 내 중요 편의성 기능 푸시 알람을 제공하지 않는다.
4) 게임 내 오류, 잘못된 번역 등을 수정하지 않는다.
대략적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그리고 오늘 공지 사과문으로 1) 2)에 대한 내용은 대응 방안을 공개한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은 마차는 그대로 보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4. 외부에 보이는 것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저의 첫 반응은 “그럴 수도 있지.”였습니다.
IT 종사자, 서비스 운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안일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아무리 자신을 채찍질하고 노력해도, 서비스의 모든 것을 알고,
항상 옳은 운영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아 눈물이 찔끔 난다.
비교적 큰 회사의 일원으로 일하면서
항상 느끼는 한계를 고백하는 것이다 보니 진짜 눈물이 납니다.
왜 이리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많고, 모르는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들 투성이에, 놓치는 것들이 많은지...)
외적으로 봤을 때, 이 변명은 통하기 어렵습니다.
기사에서 나오듯, 이 게임의 하루(?!) 매출액이 150억에 달했고,
카카오 게임즈는 누구나 아는 대기업입니다.
작은 중소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리소스가 부족했다는 변명이 통하기 어렵습니다.
또 저만한 매출이 찍히면, 그만큼 사람을 투입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게임 쪽에서 최근 순매출은 믿기지 않는 수준이라,
유저들은 더 이상 자신이 돈을 쓰는 게임에 리소스가 부족하여
대응하지 못했다는 변명을 납득해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동종업계 종사자로 조금 더 실무진의 입장을 헤아려 편을 들게 된 것이겠죠.
어쩌면 저도 그런 실수를 할지도 모르기에 미리 완충막을 만들어 두는 것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저의 첫 반응은 “그럴 수도 있지”였습니다.
그런데, 한 유저의 글을 보고 이것이 굉장히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글을 보고 스스로가 라이트 유저였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의 과금액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거든요.
과금을 많이 한다고 헤비유저는 아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죠.
5. 서비스가 제공하는 것은 서비스를 넘어 의미와 문화를 포함한다
스스로를 라이트 유저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게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이 게임에 가지는 의미와 문화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유저들이 운영진에 바라는 것은
이 의미와 문화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단순히 외부로 보이는 문제들의 해결이 아니라,
자신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운영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최근 게임계에서 계속 지적하고, 관련 법이 만들어지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 명의 고객으로,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받는데,
고객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는 사업주, 직원을 누가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대안이 있다면 당연히 다른 서비스, 사업장으로 마음을 돌릴 겁니다.
하지만 게임이라는 특성상, 이 대안이 그렇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문제가 있지요.
다른 게임을 하면 되는 것이 아니냐?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게임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 게임이 주는 고유한 재미를 다른 게임이 주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하거든요.
이걸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게임이 그 유명한 리니지입니다.
다른 게임에서 주지 못하는 재미를 계속 주고 있기 때문에 계속 비슷한 리니지가 만들어지고,
계속 매출이 고공행진을 하는 것이죠.
그렇다 보니, 게임사는 유저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 돈을 소비하는 객체로만 보게 되는 겁니다.
흔히 게임계에서 말하는 개돼지로 본다… 라는 의미가 이런 뜻이죠.
마음을, 정성을 다하지 않아도 찾아주는 고객이니까요.
하지만 게임 유저들도 이 부분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지불하는 돈에 적합한 서비스를 제공해 달라고.
그리고 그런 유저의 마음을 너희도 이해하고 알아달라고 이야기하기 시작한 겁니다.
작년 최초의 트럭시위였던 페이트 그랜드 오더라는 게임은
운영진을 교체를 요구했고, 실제로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도 했습니다.
전 로스트 아크의 디렉터, 금강선님이 주목받는 것도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정성을 다하지 않아도, 고객의 (재미가 아니라) 마음을 몰라도 되는 시장에서,
낭만적인 게임을 만든다라고 말하며, 손해를 조금 감수해도,
사용자가, 고객이 남는다라는 이야기를 너무나 쉽게 자연스럽게 했거든요.
평소에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할 수 없는 이야기고, 실제로 실행도 하고 있죠.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획자가 되고 싶어요.)
6. 게임이나 서비스나 그게 그거 아닌가?
줄곧 게임을 이야기해 왔습니다만,
저는 게임도 IT 산업 중에 하나, 서비스 중에 하나라고 보기 때문에
서비스 기획자인 저의 입장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대체하기 어려운 재미를 다루기 때문에 조금 특수성을 띤다 뿐이지,
서비스를 통해 고객의 마음을 산다는 점에서는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IT 서비스는 게임보다 경쟁 서비스, 대체 수단이 더 다양하기 때문에
게임처럼 극적인 요구가 나타나지는 않지만요.
그리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실수로 우리 회사 앞에도 마차가 보내지 지는 않을까 하고요.
최근 서비스 개편을 준비하며,
이게 정말 (기업) 고객을 위한 일일까?
내가 만들고 싶은 서비스를 만들고 있지는 않나,
회사의 입장에서 너무 생각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사람인의 서비스도 기업의 관점에서는 대체할 수 없는 서비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최근 직무마다 최적화된 서비스들에 비교당하고 있긴 합니다만
여전히 가장 많은 지원자가 기다리고 있는 서비스라는 장점은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이 지위를 제가 너무 이용하려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회사 생활이 그렇겠습니다만,
회사 생활이 만족스러울 수만은 없습니다.
사람인에서도 100%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퇴사를 반려하고 사람인에 남은 것은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아직 채용 서비스에서 하고 싶은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백하자면, 사람인은 정말 다니고 싶은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채용 서비스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마음 외에 사람인에서 한번쯤은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사람인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정말로 좋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운영에 그치지 않고,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는 게 눈에 보이는 회사였습니다.
그렇게 꿈에 그리던 회사에서 짧은 재직을 하고,
퇴사를 고민했던 것은 채용 서비스에서 해보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채용 서비스를 해보고 싶은 것은 울분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데,
사람인을 다니면서도 이 울분이 풀리지 않았거든요.
제 울분의 이유는 단순합니다.
저는 창업을 엄청나게, 말아먹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VC(투자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리콘벨리에서는 인재겠지만, 한국에서는 취직할 곳이 없겠다.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저는 작은 스타트업이 아니면 취직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확히는 대기업을 가고자 마음먹었을 때이긴 합니다만.)
그래서 저는 구직자들의 고통과 깊은 한숨을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한국의 채용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취직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대기업들의 면접 자리에서 너무나 깊은 실망을 했습니다.
직무와 전혀 관련이 없는 질문,
능력과 일에 대한 열정을 증명하기보다 충성 증명,
심하게는 압박면접을 빙자한 인신공격… 이런 것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채용이 2~30년을 함께할 파트너, 동지를 구하는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2~30년을 같이할 파트너, 동지가 될지 모르는 사람에게
이토록 무례한 채용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 평생을 책임지지 않는 기업, 재직 형태로는 이해하기 어렵겠습니다만,
10년 전만 해도 유효한 관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업 기업의 대표로 사람을 뽑을 때,
작은 회사에서 인사, 실무 면접관으로 채용을 진행할 때도
지원자들이 쓴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채용 서비스가 너무나(솔직히 말하면 미치도록)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서비스를 만든다면, 구직자들의 고통과 깊은 한숨을 이해할 텐데,
이토록 무례하고 성의 없는 채용 문화를 고칠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지요.
네, 그래요. 오만했습니다. 저 하나로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면, 이미 그런 상황이 오지 않았겠지요.
이걸 받아들이게 되면서 퇴사를 반려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구직자들의 마음을 알고, 채용을 알고, 인사담당자를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사람인에서 가장 뛰어난 기획자는 아니지만,
누구보다 구직자의 고통을 이해하고,
구인 기업의 구인난을 이해하고,
성의 있는 인사담당자들의 마음을 아는 기획자라 자부했습니다.
그래서 채용 서비스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남아있다 생각했습니다.
마치 우마무스메의 한 유저의 글을 읽기 전까지
나는 우마무스메의 헤비 유저야!라는 착각을 했던 것처럼요.
7. 그리하여, 우리 회사 앞에서 마차를 보게 될까 두렵다.
사실 소제목은 과장이 지나칠지 모릅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사람인이라는 회사가
구직자의, 채용 기업의 마음을 그렇게 모르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 스스로는 반성할 것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기획하고 있는 것들이 정말 사용자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는 것들인지 두렵습니다.
제 R&R(직무 영역)이 아니라고 하여, 갈등을 두려워하여 그냥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들이 두렵습니다.
내가 속한 조직, 회사의 잘못을 내 잘못은 아니라고 변명할까 두렵습니다.
더 많이 사용자의 목소리를 듣고 기획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것들이 누적되어 우리 회사 앞에서도 마차를 보게 될까 두렵습니다.
(사실 나하나 못한다고 그럴리는 없다.
사람인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음.)
8. 써놓고 보니 이게 남들한테 할만한 이야기인가 싶다.
현실적인 대안도 중요하지만 결국, 태도와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최근 조금 안일한 기획들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보니 우마무스메의 유저가 쓴 글에서 충격을 느꼈던 거 같습니다.
(아직도 니가 아는 게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니?)
사람인의 기업 고객들의 마음을 나는 충분히 알고 있는가? 에 대한 자신이 없어졌어요.
자신을 찾기 위해서 실무적으로 여러 가지 일들을 하겠지만,
그래도 반성의 글을 하나쯤은 남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나태에 찌들어 글을 안 쓰고 있었는데,
이걸로도 글을 쓰지 않는다면
저는 정말로 나태에 찌든 사람이 될 거 같아 주저리주저리 떠들어 봅니다.
그런데 써놓고 보니, 이게 다른 사람에게 보여줄 만한 글인가?라는 의구심은 조금 있네요.
가끔 제정신일 때 IT에 대한 글을 적는다라는 컨셉에는 맞는듯하지만요.
(나는 나태하지 않다고 변명하고 싶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