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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힝맨 Apr 11. 2023

그렇게 나는 퇴사를 했다

누군가는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년(실은 재작년)부터 꾸준히 프러덕트를 회사에 제안했고,

작년에 드디어 컨펌을 받아 팀이 구성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프러덕트에  “영혼을 갈아 넣으며” 일해왔다고 생각한다.

왜 이토록 이 프러덕트를 하고 싶냐고 물으면,

채용문화를 만들 수 있는 프러덕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건 내 생각일 뿐이었나 보다.

다른 경쟁사와 어떤 ‘기능’이 다르냐고 계속 묻는다.

그때마다 대답했다. 토스와 은행앱이 기능적으로 다른 것은 아니라고.

사실, 편의성과 좋은 UX는 그저 기본이고,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를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토스가 만든 것은 간편 송금이었지만, 편리하고 간편한 금융생활을 목표로 하는 것처럼.


이 프러덕트가 제안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단 한 번도, 이 프러덕트로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냐고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실은 이 프러덕트는 어떤 점에서는 굉장히 귀찮고 손이 많이 가는 채용 서비스다.

흔히 공채에서 사용되는 줄 세우고 가장 점수가 높은 사람을 채용하는 시스템이 아니다.

적합자가 없으면 뽑지 않는, 적합자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진정한 적합자인지 확인하는, 수시채용형 서비스다.


커리어의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동반자를 찾는 것을 도와주기 위한 서비스다.

사람과 사람이 꼭 대면해야 하는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을 자동화해 주는 부분이 존재하긴 한다.

하지만 아무리 AI가 발달해도, 역량검증이 발달해도, 

사람을 뽑는 것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구가 방법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되는 부분은 

더 귀찮고, 손이 많이 가고, 많은 사람, 많은 팀원이 참견쟁이가 되도록 만들었다.

어쩌면 이런 방식이 시장에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시장을 보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업계 1위로 경쟁사 스타트업이 가질 수 없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타트업이 중시해야 하는 생존보다 가치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아닐까.

그리고 1위를 수성하기 위해서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만들어가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1등이 된다고 생각한다.

연락하는 것을 “카톡해”라고 말하고, 중고 거래를 “당근 했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생존보다 가치를 추구하고, 채용문화를 만들어 1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1인당 채용비용은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가치에 동의하고, 우리가 제안하는 방식으로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다면, 

기업은 비용을 얼마든지 지불할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적합자를 찾을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비용을 지불하겠다고 기업들은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적합자를 찾을 수 있는 채용 방식과 문화, 그리고 가치를 제안해야 하지 않을까.


대체 이 프러덕트를 무엇으로 정의하고, 무엇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이대로라면 그저 경쟁사를 따라 만드는 카피캣으로 끝나지 않을까.

처음에는 경쟁사의 카피캣이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

실은, 난 한 번도 카피캣을 목적으로 해본 적이 없다. 

단지 제안 가치를 설득하기 위해서, 공유되게 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걸렸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팀은 경쟁사와 조금은 다른 프러덕트를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 들어 오히려 나보다 과격해진, 더 급진적인 팀원들을 보며, 

그래도 가치 공유에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프러덕트가 지향하는 바와 가치제안이 회사에 유효하지 않은 듯싶다.

여전히, 이 프러덕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한 거 같다.

이 프로덕트로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 것인지 묻지 않는 것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경쟁사를 제대로 보지 않고,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 잘 알지 못하면서,

우리가 틀렸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런 것이 잘못되었다고, 아무도 화를 내지 않는다.

사실, 분노가 마비된 회사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화를 내는 직원도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래서는 바람직한 서비스도 프러덕트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 어떻게든 화를 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컨펌이 난 사항임에도 매번 도돌이표처럼, 챗바퀴처럼 돌아오는 이슈들도 못 견디겠다.

프러덕트의 편의성, 비전과 관계없는 이슈들을 견디기 힘들다.

더 시간을 들이고 더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것들 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저 나만 흔들리는 것이고, 나만 번아웃이 온 것 일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지쳐서, 별것 아닌 일들에 민감하게 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우리 팀원들은 잘 조율하여

좋은 프러덕트를 만들어 나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한계에 다 달은 거 같다.

영혼을 갈아 넣은 프러덕트의 의미를 회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을, 

실무진이 신뢰받고 있음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우리들의 프러덕트가 부정당하는 상황에서, 나라도 화를 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찌질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퇴사 사유다.


어쩌면 이런 글을 써서 괜한 분란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구질구질하고 구차하게 말하고 싶다. 나는 이런 프로덕트를 만들고 싶었음을.


각기의 맡겨진 업무를 분담하는 것과 같았던 채용에서 채용 관계자의 소통을 도와 협업화하며, 후보자 경험을 개선하고, 종국에는 채용 문화를 만들어가는 서비스를 만들어갔습니다. 자동화된 채용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접점이 늘어나서 더 좋은 채용을 할 수 있는, 채용의 질을 개선하는 서비스가 되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UX는 “끊임없는 채용경험”을 목표로 했습니다. 채용을 위해 메신저, 캘린더를 오가면서 서비스를 전환하지 않고 우리의 프러덕트 안에서 모든 채용 활동을 마무리하는 UX가 형성되길 바랍니다. 서류건 면접이건 어떤 채용 단계라도, 설사 이동 중에도 같은 UX에서 끊임없는 소통을 통한 채용을 진행할 수 있는 UX를 형성하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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