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호의는 언제 사랑이 되는가?

사랑과 호의의 상관관계

by 스토리텔러

"몸을 섞기 전에, 마음을 섞어라."


예전에 성교육 관련 강의에서 들었던 말입니다.

현실에 너무나 무서운, 믿기 힘든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

그렇게 이야기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현실적인 대안이라기보다,

이상에 가까운 대안이라 당시 실망했습니다만,

관계에 대해서라면,

현대 사회에 너무나 적합한 해결책이라 생각합니다.


[호의는 언제 사랑이 되는가?]

는 굉장히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쓴 대화극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이야길 하고 싶었는가를 묻는다면,

저 말이 가장 좋을 거 같습니다.

"몸을 섞기 전에, 마음을 섞어라."


함께 해변을 걷기로 한 두 사람의 뒷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와 그들의 발자국을 지우고,

하늘의 별은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사랑이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워질 발자국을 계속 새기는 것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숏폼처럼 짧은 호흡으로 모든 것이 소비되는 세상에서,

보폭에 걸음을 맞추고,

상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함께 바라봐주는 일.

수많은 대화와 침묵으로 서로의 마음 위에 길을 내는 일.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섞인다는 것은,

아마 그런 풍경이 아닐까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호의는 언제 사랑이 되는가?]는

쉽고 당연하지만,

그리기 어려운 풍경을 그려나간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호의는 언제 사랑이 되는가?]는

알기 어려운 세계관을 가졌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드라마처럼 연애의 티키타카와 알콩 달콩으로 봐주셨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입니다만,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작자가 스스로 말을 보태는 일은 조심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이 세계를 읽는 열쇠 몇 개를 건넵니다.


첫 번째 열쇠 : 제목 낚시(?!)


어쩌면 우리는 '호의가 언제 사랑이 되는가'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상태로 어떻게 계속 살아갈 것인가'를 물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은 도착지가 아니라,

끝없이 이어지는 해변 그 자체였을지도 몰라요.


두 번째 열쇠 : 옴니버스지만, 13화의 한 장면을 향해


각 화는 마치 사랑은 무엇이다를 정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개별적으로 읽어도 완성되어서 뭔가를 남기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하지만 의도적으로 이걸 엎거나,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을

그 화가 아니더라도, 다른 화에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사실 사랑이 무엇이다라고 말하기 위해서 쓴 글들은 아니었습니다.


[호의가 언제 사랑이 되는가?]를 읽으시면서 한 번이라도

사랑이란 게 뭘까?라고 생각해 보셨다면,

생각해 보신 답이 정답일 겁니다.


세 번째 열쇠 : 남자와 여자는 누구인가?


이 이야기 속 남자와 여자의 이름은

끝내 불리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이야기는,

특정한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한 번쯤 걸어보았거나,

앞으로 걸어가야 할 그 길 위에서 잠시 마주친 풍경 같은 것이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어쩌면 미래에 마주칠 모습일지도 모르죠.


네 번째 열쇠 : 썸, 그 애매하고 예쁜 한 글자


저는 [호의는 언제 사랑이 되는가?]를

철학적 썸을 타는 두 남녀의 이야기라고 소개하곤 했습니다.


썸이라는 단어는 알콩달콩한 거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의 아픈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도 있었지만 지금 표현된 것이다...라고 말하신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사회에서 관계의 불확실성이 만들어낸 단어, 유행어라고 생각해요.


철학적 썸을 타는 두 남녀에게서

관계의 불안함을 느끼셨을지,

안전함을 느끼셨을지 궁금하네요.


나가며


열쇠를 몇 개 드리기는 했습니다만,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어 말했듯

작가는 신의 영감을 받아 썼을 뿐,

작품의 모든 가치를 다 알고 쓰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자분들이 [호의는 언제 사랑이 되는가?]에서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약간 치사한 거 같습니다만,

독자분들이 더 많은 의미를 발견해 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그리움을 남길 수 있는 글을

다시 쓸 수 있을 때, 다시 만나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디,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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