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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Jul 24. 2022

1. 별

세상 모두가 별이야

이건 뭐야?

수학여행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끔찍하게 싫어했던 기억이 있다. 안 그래도 싫은 수학을 여행 가서도 해야 하다니... 이건 너무 잔인한 일 아닌가. 순수했던 것인지 멍청했. 아니 그냥 순수했던 걸로 하겠다.

수학여행이 수업을 안 하고 놀러 간다는 즐거운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다수결로 장소를 정했었는데 대부분의 친구들이 놀이동산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놀이동산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수학여행은 여전히 즐거움 보단 귀찮음이 더 컸다. 차라리 2박 3일 동안 공 하나 던져주고 뛰어놀아라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으면 지금 국가대표가 돼서 월드컵도 나가고 국위선양도 했을 텐데. 수학여행을 놀이동산으로 간 게 이렇게 될 줄이야. 아쉬워라- 지금 나만 아쉬운 거잖아? 그지? 순수해서 그래 순수해서.




문수와 이수는 다른 반이 되었지만 여전히 친한 친구였다.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선선한 가을이 찾아왔을 무렵, 각 반마다 수학여행 장소를 정하기 바빴다. 저마다 원하는 곳이 달랐기에 좀처럼 멀어진 의견을 좁히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문수와 이수는 딱히 수학여행 장소에 대해 자신들이 원하는 곳을 강력하게 어필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도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어딜 가도 재밌을 것 같은 문수와 어딜 가도 지루할 것 같은 이수는 소란스러운 친구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있었다. 좁혀지지 않는 의견을 각반의 담임선생님이 정해버렸다.

아이들의 한 맺은 탄성 소리가 교실 밖을 나갈 때쯤 화음이라도 맞추듯 종소리가 울려댔다.

복도 끝서 걸어오는 이수를 바라보는 문수는 창틀에 어깨를 기댄 채 물었다.




"너네 반은 어디로 가?"


"바다."


"바다?!"


"왜?"


"우리도!!!"




같은 바다로 가게 된 것이다. 여전히 무덤덤한 이수는 그렇게 지나가던 길을 계속 걸었다. 문수는 건너편 창문을 바라봤다. 갸우뚱-고개를 몇 차례 기울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문수와 이수의 학교는 바다가 보이는 위치에 있다. 눈만 옆으로 돌려도 보이는 바다인데, 수학여행을 다른 바다로 간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문수네 반 담임선생님과 이수네 반 담임선생님이 부부라는 사실이 기억 난 문수는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이수에게 뛰어갔다.




"너네 반이랑 우리 반 왜 같은 바다로 가는지 알아?"


"글쎄..."


"나 알아냈어."


"그래."


"바로!!! 너네 반 담임이랑 우리 반 담임이랑 부부라서 그래!!!"




대단한 거라도 알게 된 것 마냥 들떠서 말하는 문수를 힐끗-바라보고는 손을 털며 다시 교실을 향해 걸어가는 이수는 수학여행 목적지 선정의 결과부터 이유까지 궁금한 게 단 하나도 없었다. 누구에게는 놀라운 사실이 또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이거나 관심 밖의 일이다. 마치 말 없는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게 된 사실에 충격과 공포보단 당장 내일 팔아야 할 물고기의 신선도가 중요한 사람처럼.


수학여행은 특별할 거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바다 주변 유적지 탐방. 그리고 사진 촬영. 바다 주변 박물관 견학. 그리고 사진 촬영. 바다 주변 관광상품 구경. 그리고 사진 촬영. 남는 건 사진뿐이라지만, 이럴 거면 수학여행을 사진 스튜디오로 갔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그렇게 고된 일정들을 소화하고 마지막 저녁이 찾아왔다. 재치 넘치는 레크리에이션 강사님의 신나는 진행과 각반의 어리숙한 장기자랑이 끝나고 약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천만다행인 건 수련회마다 했던 종이컵에 촛불을 켜고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눈물샘을 짜내는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수는 이번 수학여행 통틀어 그게 가장 만족스러웠다.  

문수는 바다 앞 모래사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수도 천천히 그런 문수를 향해 가고 있었다. 하늘과 바다를 번갈아 보더니 모래 위에 무언갈 끄적이는 문수였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할 법 하지만 이수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문수 옆에 앉았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이수가 물어보지 않아도 문수가 먼저 말할 것이니까. 이런 거 보면 둘은 영락없는 베스트 프렌드이자 영혼의 단짝이다.




"이수야.  그려봐."




문수의 말에 이수는 망설임 없이 모래에 별을 그렸다. 손톱 사이에 들어간 모래를 입으로 후후-불며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몇 차례 번갈아 보더니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문수는 이수의 별을 한참 바라봤다. 보통 별을 그린다면 한붓그리기 가능한 뾰족뾰족한 모양을 그렸을 것이다. 그렇다. 지금 그대가 생각하고 있는 그 별 모양 말이다. 이수가 그린 별은 우리가 생각한 보편적인 별이 아니었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삐뚤삐둘한 동그라미를 그린 것이다.




"왜 동그라미야?"


"은 원래 동그라미야. 빛이 나는 별을 그려보라고 했다면 이렇게 그리지 않았을 거야."


"은 빛나니까 별 아니야?"


"은 그저 돌멩이야. 돌멩이는 보통 동글동글하잖아. 빛을 내기 전까지는 돌과 같다고 보면 돼."




문수는 그렇게 말하는 이수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터무니없는 질문에도 언제나 막힘없이 답을 해주는 이수가 멋있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문수는 다시 별과 바다를 번갈아 보더니 모래에 그리기 시작했다.

문수가 그린 별의 모양은 다양했다. 세모, 네모, 하트 등등 정형화되어있지 않는 모양까지. 그런 문수를 보고 이수는 한숨을 내 쉬었다.




"이렇게 생긴 은 없어."


"왜?"




이수는 말을 멈췄다. 문수의 '왜?'라는 질문에는 끝나지 않을 뫼비우스의 띠 같았기 때문이다. 침묵이 답이라는 것을 알게 된 오랜 친구의 노하우라고나 할까. 조용해진 이수를 보고 문수는 웃으며 말했다.




"별은 빛나니까 별이잖아. 빛나는 것들은 다 별이네. 이것 봐. 모래 위에 내가 그린 별도 빛나고 있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물도 빛나고 있어. 모든 것들은 다 빛나. 우리 모두 별인 거야. 아름다워."




문수의 말을 따라 반짝이는 모래와 바다 그리고 하늘에 떠있는 별을 번갈아 보는 이수.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모래도 빛나고 있었고 바다도 빛나고 있었다. 심지어 그렇게 말하고 있는 문수의 눈도 반짝이고 있었다.




"우린 모두 별이니까, 소중하고 아름다워. 사실 별 모양은 중요하지 않아. 빛나지 않더라도 옆에서 비춰주면 돼. 그럼 세상 모든 것들은 별인 거지."




잔잔하게 철썩이는 파도소리가 문수의 말에 동의해주듯 박수를 쳐주는 듯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도 각자의 빛을 내며 사진을 찍어주었다. 수학여행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빛나고 있었다.

머쓱해진 이수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 이내 문수도 행여나 그린 별들이 지워지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디디며 일어났다. 발가락 사이로 별들이 스칠 때마다 철없이 간지럽히는 어린아이의 손끝처럼 가벼운 웃음이 입가에 맴돌았다. 그날 밤 두 별은 별 위를 걸었다.




"이수야 이거 먹을래?"




문수는 주머니에서 청포도 알사탕을 꺼내서 이수에게 건네줬다.




"나 청포도맛 싫어해."


"이거 청포도맛 아니야."




누가 봐도 청포도 알사탕이었다.




"무슨 맛인데?"




문수는 히죽히죽-웃으며 말했다.




별 맛



믿기힘들겠지만, 이 날 문수와 이수는 별맛을 맛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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