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수영대회
출발하기 전에 준비를 한다. 준비가 끝이 나면 출발을 한다. 출발이 끝나면 도착을 하고 도착이 끝나면 다시 준비를 한다. 그다음을 위해. 모든 인생이 그런 거 아니겠나.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반복 속에서 걷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면서도 살짝만 옆으로 가도 그 띠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알고도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되려 꾸짖으며 질문폭탄만 던지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닐까 아닐까 이건 또 아닐까, 하면서도 터져버린 폭탄에 움푹 팬 흉터 같은 마음에 위로하는 방법은 모르는 나는 오늘도 질문폭탄을 들고 출발선에 오른다. 짊어진 폭탄이 무거워 옆으로 기우뚱- 하여 못 이기는 척 벗어나고 싶은 얄팍한 마음 싣고.
한 가지 취미를 오래 하다 보면 그 취미를 어느 정도 경지에 올려놓고 싶어진다. 단순히 취미를 넘어 특기로까지 발전시키고 싶은 끊임없는 욕심 탓인지. 내려놓지 못하는 미련 많은 성격 탓인지. 한번 사는 인생에 많은 걸 경험하고 떠나고 싶기에 본업을 두고 다른 것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 경우가 종종 나타났다. 그럼에도 본업을 내려놓은 적은 없지만 가끔은 이런 열정의 분산이 필요하다며 합리화시켜 쏟아내 버렸다. 주워 담을 용기도 없으면서 말이다. 애써 용기 있는 척- 주워 담을 그릇이 큰 척- 척척박사님 된 척-
물이 무서워 시작한 수영.
어느새 하다 보니 10년 정도 한 것 같다. 쉬지 않고 꾸준했던 건 아니지만 나름 즐기며 열심히 배웠더랬지. 보통은 10년 정도 하면 대회 몇 번 나갔을 수력이라고도 하지만, 놀랍게도 난 10년 만에 처음 대회를 신청하게 되었다. 올해 목표 중 하나였던 수영대회 출전을 이루게 된 것이다. 러닝과 수영 등등 생활체육이 붐을 이룸과 동시에 곳곳에서 펼쳐지는 대회들은 이제 참가신청 또한 전쟁이 되었다. 다행히 관할 지역구에서 진행하는 대회에 우선신청권이 있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신청을 완료했고, 이후 머리 한구석에 끊임없는 이미지 트레이닝으로 메달을 목에 거는 상상까지 해왔다. 난 상상력이 풍부한 편이니까-
그리고 마주한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진 상상은 조각되어 나풀나풀 바람에 흩날렸다. 대회 전 자체기록을 체크하고 전대회 기록을 비교해 보았던 것이었다. 이거 무슨 메달은 커녕... 지난 10년의 수영세월이 부정당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난 지금까지 예쁘게 올바른 자세로 수영하기에 전념을 쏟았던 것이다. 그 덕에 바른 자세로 칭찬을 들으며 동네 수영장 연수반에서 1번을 했던 '나'였기에 충격은 이로 말할 수 없었다. 참 그렇지?
빠르게 가는 게 뭐가 중요한가. 천천히 올바르게 오래오래 가는 거. 그게 더 중요한 거 아닌가? 빨리 가는 건 자신 없어도 오래가는 건 누구보다도 자신 있는데 말이야. (그럼 대회는 왜 신청한 거야.) 투덜투덜- 혼자만의 푸념만 속으로 삼켜내며 대회까지 속도 끌어올리기에 집중했다. 기존에 해왔던 자세들을 좀 더 빠르게 갈 수 있는 자세로 바꿔나가며 계획을 세워나갔다.
늘 시간은 무색하게만 빠르게 흘러갔고 대회 날이 찾아왔다. 나의 목표는 이랬다. 메달은 고사하고 첫 대회이니 만큼 등수보다 개인 기록에 집중하자! 그래! 그게 맞는 거지! 첫술에 배부른 사람이 어디 있겠어. 안 그래?
응. 안 그래. 첫술을 많이 떠먹으면 되는 거잖아. 그런 게 어디 있어. 너 많이 먹잖아. 응 맞아 나 좀 많이 먹는 편이긴 하지. 뭐래... 중얼중얼 푸념이 넋두리가 되어간다.
-자유형 50M : 35초!
-접영 50M : 35초!
저 목표의 기준은 25M를 전력으로 갔을 때 대략적으로 측정하고 거기에 곱하기 2를 한 뒤 체력적 감안을 더해 2-3초를 추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나의 계획은 여기까진 완벽했다.
무수히 많은 동호회인들 사이 홀로 참가한 개인참가자인 나는 은근 모를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몸풀기를 하고 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그래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라고 순간의 감정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싶어 지더라니까. 언젠가는 이 상황에 이 분위기. 그리고 이 감정을 무대 위에서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야.
역시 난 수영장 보단 무대를 더 사랑...
올림픽 수영에서 들었던 소리를 내가 직접 듣게 될 줄이야.
이 소리가 들리면 준비자세를 취하고 움직이면 안 된다. 문 밖을 나갈 때 문고리를 돌리고 멈춰 있는 상태라고 보시면 될 것이다. 자유형 50M부터 시작이었다. 2번 레인에 서서 아무 생각 없이 집중을 했다. 이미 앞선 경기를 봐선 나에게 순위권의 승산은 없었기에 기적보단 기록에 집중하며. 출발신호와 함께 열심히 팔다리를 움직이며 출발과 도착을 이뤄냈다. 50M를 경쟁하며 빠르게 가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 줄 처음 알았다. 강습 중 내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듦이라고나 할까. 정말이지, 수영을 하시는 수영인 분들에게 대회는 두말할 것 없이 강추드리는 바이다. 힘든 만큼 찾아오는 재미와 기쁨은 마치 내가 원래 물을 이렇게나 좋아했나 싶을 정도의 의문마저 들게 한다. 결과는 35.79초! 목표했던 바를 이뤄냈다! 등수는 7등이지만.
문제는 다음 접영. 사실 난 자유형보다 접영에 더 자신 있었다. 근데 자유형이 끝나고 풀려버린 다리. 수영선수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더 리스펙을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배영, 평영 시합이 치러지는 동안 약간의 쉬는 시간이 있었지만 집에 가고 싶었다. 접영을 하고 싶지만 집에 가고 싶은 이 아이러니 한 심점. 대회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접영이 끝이 났다. 40.94초... 등수는 4등... 빠르게 가는 게 중요한 이 대회에서 알게 된 것은 25를 빠르게 가는 것이 아니라 50을 빠르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거라 등한시했던 것. 나중에 찍힌 영상에서 분석해 봤을 때 알았다. 가는 데 16초, 오는데 24초를 소비하게 되었기에 40초라는 허무하고도 처참한 기록이 나온 것이란 걸. 비록 원하는 목표기록은 아니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고 얻었다는 첫 대회라는 위안을 삼아 애써 스스로를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이틀이 지난 오늘에서야 기록하고 기억에 담아두려니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아쉬움을 피하지 못하고 대회영상만 무한반복재생 중인 하루. 이제부터 수영전쟁이다.
메달을 걸기까지! 천천히 올바른 영법은 잠시 내려두고 빠르게 똑바른 영법으로! 비슷한 말이지만 다짐이 다르니까.
그렇게 나의 첫 수영대회는 끝이 났다.
처음 물이 무서워서 시작했던 수영. 첫 등록을 하고 처음 수영장에 들어갔던 그날이 생각났다. 어쩌면 그날 출발선에 서서 Take your marks! 를 듣고 부동자세로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 나의 수영인생이 시작된 것 같은 기분. 꽤나 상쾌하면서도 후련하다.
이런 것에도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닭은 걸 보면 아직도 난 성장 중인가 보다. 그리고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도 찾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세상 중요한 걸 몰랐다.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위로하는 방법을 알아가는 것이라는 걸. 타인에게도 자신에게도. 고달픈 나의 오늘에게도.
수영을 하다 보면 의도한 것보다 멀리 가는 경우가 있어.
어쩌다 물살을 잘 탔거나, 어쩌다 물길을 잘 갔거나.
수영도 그런 행운이 찾아오는데,
하물며 우리 인생에 그런 일 없겠어?
어쩌다 보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