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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비가 온단다.

내일은 해가 뜰거래.

by 진작

이른 아침 산으로 운동을 가면 종종 보이는 통통한 벌 한 마리가 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벌의 이름이 난 '벌새'인 줄 알았다. 제법 귀여운 이 벌에 대해 알아보다 벌새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고, 정확한 지는 모르겠으나 '호박벌'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호박벌은 벌의 '종'인 것이지 이름은 아니잖아? 문득 미안한 마음에 이름을 지어주자니 기약 없는 만남에 무슨 대단한 사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줄까 싶지만 그래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것을. 눈길로 옷깃을 대신하고 이름 한번 지어줄 테니 기다려보거라.

'뚠뚠벌'

"인간세상에는 말이야. 시대가 흐를수록 다양한 단어나 표현들이 생겨나. 요즘 난 '뚠뚠'이라는 표현을 알게 되었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귀여운 느낌의 표현이란 것만은 확실해. 어때? 마음에 들어?"


그렇게 난 뚠뚠벌과 친구가 되었다.




베란다 창밖 흙만 쌓여있는 화분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무럭무럭 쉽게 자란다는 바질을 키워보고자 했던 화분이었으나, 주인은 나가고 집만 남은 상황이 되었다. 무주택 씨앗들에게 편하게 내려앉아라 화분을 베란다 안으로 들이지 않고 고스란히 밖에 놔두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녹색 그림자가 이상하게 반가웠다.


드디어 누가 왔구나!


헐레벌떡 창문을 열어 인사를 해본다.

KakaoTalk_20250501_142100062_04.jpg 이름 모를 이웃이 자라고 있다.


제법 대견하기도 하면서도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왔는지부터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였지만 가장 궁금한 건 누군지였다. 이름이야 내가 지어주면 되긴 하는데... 어떤 종의 식물인지 알 수가 없으니 신비주의 그 자체였다. 아침에 날이 좋으면 햇살을 먹고 있겠구나 싶었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어디론가 날아가버리진 않았을까 하고 베란다에 나가 빼꼼- 확인하곤 하는 내 모습에 피식-웃음도 난다. 세입자에게 무관심한듯한 배려가 좋을 때가 있기 마련이니까. 최대한 남모르게 물을 주고 홀연히 창문을 닫았다.


오늘은 비가 온다. 아마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빗물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면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내려준 비도 아니지만. 그리고 내일은 해가 뜰 예정이란다. 그럼 또 품게 될 따스한 햇살이 얼마나 반가울지.

그리고 피워 낼 꽃송이가 너무나도 궁금해진다. 꽃 한 송이 못 피워내면 어떠리. 반갑게 입주해 준 우리 이웃에게 그저 감사할 뿐-


KakaoTalk_20250501_142100062_01.jpg 처음 봤을 때 보다 제법 자란 이웃.


오늘 비가 오면 내일은 꼭 해가 뜰 것이다. 당장 내일이 아닐 수도 있다. 오늘 해가 떴다고 내일도 반드시 해가 뜨는 법도 아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세상 간단하다. 비 온 뒤 해가 뜨는 것이 아니다.

해는 늘 시간에 맞춰 뜨고 있었고 우린 그걸 보고 아침을 맞이한다. 비구름에 가려졌고, 비에 흐릿해져 있을 뿐. 해는 늘 우리에게 떠있다. 슬픔 뒤에 기쁨과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행복 속에 어쩌다 슬픔이 찾아오는 게 우리 인생 아니겠나. 슬픔 또한 늘 안타까운 것도 아닐 수도 있고.


세상이치를 다 알 순 없지만 이렇게 하나씩 알아가는 세상살이가 요즘은 제법 재미있다.


그나저나 저 친구의 이름을 뭐라 해야 하나.

뚠뚠풀? 뚠뚠화? 뚠뚠식물?



한글의 위대함은 글을 쓰며 더 느끼게 된다.
나의 위대함은 글을 쓰고 난 뒤 느끼게 된다.
그리고 당신의 위대함은 글을 읽고 난 뒤 느끼게 될 것이다.
아. 물론 읽지 않아도 위대하다.
한글도.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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