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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오래오래 가기로 했다.

나의 두 번째 수영대회

by 진작

'빨리빨리'

대한민국에 자리 잡고 있는 외국인들이 먼저 배우는 말들 중 하나라고 들었던 것 같다. 유행어인 마냥 농담처럼 웃으며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 배경을 둘러보자면 기본적으로 우리나라는 '빨리빨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편인 듯하다. 시대가 변하면서 유행하던 것들의 반대되는 것들의 유행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유행에는 늘 과거의 유행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긍정요소를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늘 우린 말한다.

'유행은 돌고 도는 거라고-' 과거에는 그거였지만 지금은 이거라고, 미래에는 그게 돌아온다고. 머물고 있던 것도 지나간 것도 다가올 것도 생각해 보면 늘 존재했다. 그럼에도 늘 새롭다 느끼는 건 어제와 오늘을 지워가며 내일만 그리고 있는 것 때문은 아닐까.




올해 처음 나갔던 수영대회에서 맛본 처참한 나의 수영 실력. 오래 해왔지만 늘 속도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저 자세만 정확하게 수영을 해왔었더랬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올해가 지나가기 전 수영대회라는 것을 꼭 나가보고 싶단 다짐을 지난달에 달성하고 나니 새로운 목표들이 새록새록 꽃피지 시작했다. 봄이 훌쩍 지나 더운 여름이 돼서 피는 정렬적인 꽃처럼.


그렇게 나는 두 번째 수영대회를 나가게 되었다. 공연준비를 하느라 집중하지 못했던 비겁한 변명을 앞에 내세운 채 수영장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가벼웠다. 내려놨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일지. 기왕 나가는 대회 최선을 다하긴 하겠지만 어마무시한 속도를 자랑하는 분들 앞에서는 그저 꿈뻑꿈뻑-거북이 일뿐. 그나마 거북이는 물속에서 빠르잖아? (거북이에게 사과를-)


처음으로 평영 기록을 측정해보고 싶어서 평영을 신청했고, 지난 대회에서의 아쉬운 기록을 단축시켜 보고자 접영을 두 번째 종목으로 신청했다. 기나긴 대시 시간을 끝내고 출발선에 서 있는 날 발견하게 되었을 땐 이미 이상할만치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그리고 스타트 소리. 의욕은 없었지만 그래도 긴장은 가득. 또 하면 열심히 하는 편이라 쭉쭉 팔과 다리로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KakaoTalk_20250702_111129973.jpg <평영 하는 중>


결과는 아름다운 꼴등........... 에서 앞. 그룹 안에서 하위권에 안착하게 되었다. 사실 딱히 후회는 없었다. 준비를 조금 더 할걸이라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출발선에서부터 도착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음 접영을 기다리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빨리 가야 하는 거지? '


당연한 건데. 이상한 생각에 빠지기 시작하더니 괜히 느린 것에 대한 긍정적 요소도 타당성을 찾기 시작한 것 같았다. 일종에 정신승리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일까. 하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꼭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고. 이 질문에 대한 엉뚱한 답변은 접영을 기다리고 있는 중에 윤곽이 드러났다.


어떤 어르신의 평영.

빠르게 가야 박수받고 수상을 할 수 있는 대회에서 어떤 어르신의 완주는 모든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고, 박수갈채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해냈다는 표정과 함께 뒤돌아 인사하며 퇴장하시는 모습에서 알게 모르게 코끝찡-

그렇다.

목표는 다 다른 거 아닌가. 그 목표를 달성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웃을 수 있으면 된 것이다. 대회가 만들어 준 수상의 목표가 아니라, 나 스스로가 대회에 참가하게 된 목표말이다. 그렇게 찡찡거리는 코를 달래는 중에 접영의 순서는 빠르게 다가왔고, 평영의 쏟아 부운 체력을 충전할 새 없이 다시 스타트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지난 대회 40초의 기록을 깨고 싶었다. 오직 그 생각으로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온몸이 물을 감싸는 순간 생각의 꼬리들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신기했다. 그리고 뇌리에 박힌 생각.

KakaoTalk_20250702_111140043.jpg <접영 하는 중... 아니 물속에서 잡생각 중...>

'아- 나는 빠르게 가는 걸 잘 못하는구나.' 인정을 하게 되었다. 천천히 오래오래 가야겠다. 지금까지 받았던 수영 칭찬들은 내가 빨라서가 아니라 올바른 자세로 천천히 오래오래 돌 수 있었던 것 때문이었다. 정답이 어디 있겠는가. 빠르다는 속도의 기준 또한 1등의 기록으로 두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조금씩 줄여가 볼 생각이다. 두 번째 대회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나니 드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많은 걸 느끼게 해 준 두 번째 대회였다. 물론 세 번째 네 번째 쭉쭉- 수영대회를 나가고 싶을 것 같다. 천천히 오래오래 돌아서 완주를 하면 메달을 주는 대회는 반드시 나가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가만 보면 메달을 참 좋아하는 것 같기도.)


느리면 좀 어때.

천천히 오래오래 살아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빨라지면? 끝이 없는 세상이라 생각하고 빨리빨리 많은 걸 경험하고 담고 살아가는 거지 뭐-

천천히 가면 좀 어때.

느리게 살다 보면 보지 못했던 것들과 하지 못했던 생각들을 할 수 있게 되니 좋은 것 같다. 한풀이 마냥 두 번째 수영대회 경험을 쏟아내다 보니 배가 고파졌다.


'빨리빨리' 밥 먹어야지.



생각이 많다는 건,
그리움도 많은 거겠지.
온통 그리운 생각들로 가득 차 있을 테니까.

많다는 건 생각인지, 그리움인지.
미련인 것인지.
참 미련하게도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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