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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조급

조금 조심.

by 진작

SNS 사용 시간을 최소한으로 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조급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였다. 알게 모르게 타인의 삶을 보며 나의 삶이 위축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터라 어플의 아이콘을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두곤 했다. 이제는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나는 제법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는 사람이었던 걸로. 노력형 행복추구. 늘 나의 삶에서 노력을 뺄 수 없는 건가 보다. 빼고 싶다기 보단 어쩌면 가끔 노력 없이 성공한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으니 말이다.

닮고 싶거나 동경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아주 가끔, 정말 가끔 부럽다 정도?




연극과 영상. 그리고 AI가 함께 어우러지는 프로젝트가 끝이 났다. 광주에서 머물고 있는 시간 동안 이 작품에 몰두하고 집중하기 위해 다음 작품에 계획은 잠시 내려놓고 있었다. 물론 내려오기 전 지원했던 몇몇의 작품들은 허공으로 날아갔으며 그 씁쓸함을 달랠 틈도 없이 이 프로젝트의 달콤한 시간에 빠져있었더랬지. 시원한 스튜디오와 맛있는 음식들과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어쩌면 이 세상에서 제법 행복한 사람들 속에 포함될 수도 있을 수도.


KakaoTalk_20250801_115117140_01.jpg 행복한 순간


프로젝트가 마무리되어 가던 시점에 찾아온 나름의 자유시간에 무얼 할까 고민을 했다. 더운 여름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휴식을 취할지, 챙겨 온 스포츠워치가 쓰임을 할 수 있게 러닝을 하러 갈지. 생각보다 답은 빠르게 내려졌고 옷을 갈아입고 근처 대학교 운동장트랙을 뛰기 시작했다. 2km 정도 뛰었을 때였나. 불편한 신발 탓에 발에 물집이 잡혀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게 무슨 대수인가.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 물집 따위가 나의 러닝타임을 방해할 수 없지. 그렇게 늘 그렇듯 5km를 채우기 위해 발을 굴렸다.


KakaoTalk_20250801_115117140.jpg 스튜디오 근처 대학교 운동장 트랙. (참으로 뜨끈뜨끈했다.)

함께 프로젝트를 했던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러닝이 좋은 이유를 나열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뛰다 보면 생각이 없어져서 좋다고 하던데... 진짜 그래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보통 나는 뛰면서 더 많은 생각과 고민들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멍해지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생각의 꼬리를 물거나 재밌는 상상을 하며 뛰곤 한다. 어쨌든 결론은 러닝은 참 좋은 것이라는 걸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해피엔딩-)


역시 여름은 여름이다. 아무리 서울에 비해 시원했던 광주였더라도 주룩주룩-흐르는 땀을 막을 수는 없었다. 송골송골 맺히기부터 주르륵-흐르기까지 스쳐간 수많은 생각들 중. 다음 작품 해야 하는데......라는 조급함이 들기 시작했다. 좀 쉬어도 된다는 사람들과 쉬지 말고 일하라는 사람들의 치열한 논쟁의 답은 언제나 늘 스스로에게 있거늘. 언제나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나. 오락가락할지라도 그 순간의 판단을 존중하고 믿고 따라가 보려 한다. (이 또한 노력형) 지긋지긋한 노력형 마인드에 이제는 찬사를 보낸다.


올라가면 또다시 지원의 연속이 될 테고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하는 경쟁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하겠지만 언제는 안 그랬었나. 새삼 새롭다고 느끼지 말고 늘 하던 데로 하기로 했다. 이게 5km를 뛰면서 내려진 결론이었다. 당장 작품이 없으면 9월에 뛰게 될 하프 마라톤 준비를 하는 8월이 되면 되는 것이고. 8월이면 나의 생일도 있으니 때마침 생일선물로 스스로에게 주는 휴식을 주어도 될 것이고. 어차피 땡볕아래 더위일 텐데 충전하는 시간도 좋지! 막상 올라오고 나니 8월 1일. 계획대로 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준비했던 조급함을 조금씩 덜어내고 행복으로 채워 나갈 계획이다. 그러다 만나게 될 작품들에 감사하면 되는 것. 참 쉽죠잉?


조금의 조급함을 품고 살다 보면 늘 언제나 조심해야지 라는 마인드컨트롤을 하게 된다. 그것이 러닝을 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하염없이 빈방에서 빠진 상념의 시간을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다짐해 본다. 그리고 말해본다. 조금 조급 한 건 조금 조심하면 되는 것. 조금은 말 그대로 조금이니까.


나에겐 조금이라는 수치는 견딜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쿨-하게 허락된 범위니까.


우리에게 찾아온 조급함의 시간을 좋아하는 시간들로 채워 보는 하루가 되는 것은 어떨까. 우린 어쩌면 생각보다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남과 비교하지 않아도 될 만큼.




새로 산 러닝화가 아직 어색하다.
신다 보면 익숙해질 것을 알고 있다.
늘 답은 정해져 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 오답이라 생각하는 건지.
정답이다. 항상 정답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그걸 오답이 아닌 도전이라 말하고 싶다.
단, 익숙해져도 아픈 것이라면 그건 오답이었던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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