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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Dec 10. 2021

시간 한 잔 할까요?

커피

뜨거운 커피가 따뜻해지고 이내 미지근해졌다.

얕아져 버린 커피를 마시게 되면,

그제야 컵의 하얀 바닥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향긋했던 시간이 그렇게 마무리가 되어 감을 느꼈다.


차가운 커피가 시원해지고 이내 미지근해졌다.

시들어져 버린 얼음을 마시게 되면,

그제야 숨겨져 있던 테이블 바닥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싱그러웠던 시간이 이렇게 또 지나감을 느꼈다.



오늘은 라떼를 마셨다.

잠이 오질 않는다.


커피의 수 많은 부작용 중 하나가

오늘 나에게 작용한다.

커피가 나에게 뜬 눈 시간을 준 것이다.


커피의 수 많은 효능 중 하나가

오늘 나에게 작용한다.

커피가 나에게 각성의 잡생각을 준 것이다.



언제부터 이었을까?

커피좋아하게 된 게.



어릴 적 커피를 마시면 머리가 나빠진다고 했다.

그래서 마시지 않았던 커피 덕에

나는 어릴 적 머리가 좋았었던 것 같다.



그저 어린 아들이 커피보단 몸에 좋은 우유를 마셨으면 하는 마음에

사랑스러운 잔소리처럼 내뱉던 엄마의 주장이었다.



허나 지금은

바깥에서 밥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발길이 향하는 곳이 커피숍이다.


어릴 적 마시지 않았던 커피를 지금 마셔대는 걸 보니,

나는 더 이상 좋아질 머리도.

좋아질 생각도 딱히 없나 보다.




사실 나는 커피 맛을 잘 모른다.

원두가 무엇인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쓰다.달다.새콤하다.고소하다.구수하다.등등

커피에는 다양한 맛이 있다고 한다.

믿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커피를 좋아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단순히 커피를 주는 공간.

즉, 커피숍을 좋아하는 것이다.


내가 지불하는 커피값의 가치는

원두의 가치라기 보단

아늑한 의자와 잔잔히 흐르는 음악에 좀 더 지분을 실어주고 싶다.

그리고 마주하고 있는 상대에게도.





커피숍이 좋은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나열해 봤다.


1. 여유로워서.

2. 집이 아닌 다른 공간이 주는 묘한 안식.

3. 수다.

4. 대화.

5. 이야기 하기.

6. 소통.

7. 아니, 잠깐만...


그냥 나는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인 가 보다.







들어가는 건 쓴 커피 한잔이지만

내뱉는 건 달콤한 대화들.

그런 시간들이 좋다.


입에서 식도를 타고 넘어가는 커피를

표면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서 귀를 넘나드는 상대와의 소중한 시간.

그런 시간들이 너무나도 좋다.


'좋다.' '좋다.'를 계속 말하는 거보니,

진짜 좋은가 보다.


(좋은 거에 솔직한 편.)


스스로에게 던졌던 첫 질문이 크게 의미가 없었다.

언제부터 커피숍을 좋아하게 된 건지는 중요한 게 아니니.

언제까지 키피숍을 좋아할 것인지.

이게 조금 더 궁금해졌다.


커피에는 다양한 만남이 있다.

첫 만남.

기분 좋은 만남.

기분 나쁜 만남.

그리고

마지막 만남.


커피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기분 좋은 사람들.

기분 나쁜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나는 사람들.


커피에는 다양한 시간이 있다.

처음 함께한 시간.

기분 좋은 시간.

기분 나쁜 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함께한 시간.


처음이 있다면 이 있다는 말처럼 잔인한 말이 어디 있는가.

커피는 나에게 끝이 없었으면 한다.

누구든 함께 보내는 그 시간만큼은

마지막보단 다음을 기약하길.




제가 잘 아는 커피숍이 있는데요.
거기 커피가 기가 막히거든요.
괜찮으시면,
시간 한 잔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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