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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작 Feb 16. 2022

반반인 것

누나가 일을 한다.

세상에 반반인 것은 치킨뿐일 거라 생각했건만.




선택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는 획기적인 반반의 것들이 나오는 걸 보니 과학과 의학만 발전되고 있는 것이 아닌 게 확실하다.


자장면이나 짬뽕이냐의 난제를 짬짜면으로 해결했으며,

양념이냐 후라이드냐를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불고기 피자도 먹고 싶고 페퍼로니 피자도 먹고 싶은 걸 하프 앤 하프로.

이 외도 여러 가지 반반은

선택이 아닌 포기를 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뜻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다.


(모처럼 과대해석을 한번 해봤다.)


물론 요즘 추세는 또다시 변해가고 있는 것 같다.

반반이 아니라, 둘 다 하나씩 시켜서 아쉬움 없이 먹는 것.

나만 그런 건가. (그런 거라면 Pass-)


아무튼-


먹는 것에도 반반을 해결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는 현시대에 반반의 감정을 하나의 기분으로 표현하는 건 여전한 난제로 이어가고 있다.



며칠 전 엄니에게 전화가 왔었다.

누나랑 통화를 했는데 뭐라고 하는지 잘 못 알아 들었다며 나에게 한번 더 전화해서  필요한 건 없는지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부정확한 누나의 발음과 잘 들리지 않는 엄니의 청력은 이어지기 힘든 소통의 벽일 수밖에.

그럼에도 엄니의 사랑과 보살핌은 그 벽을 초월했다.

하지만 벽을 초월한 것보다 더 높은 건 세월의 무상함 아닐까.


본디 누구에게나 노화는 찾아온다.

나의 엄니와 누나에게 불로초를 구해서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현실에 시간과 공간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미지의 약초일 뿐.

그 노화는 엄니의 청력과 지적장애 누나의 발음을 조금씩 빼앗아 가고 있었다.

그 소통의 벽에 작은 구멍 하나 내어 비집고 들어가 따뜻한 하나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종이컵 2개로 번갈아가며 이어가던 순수했던 그 시절의 대화처럼,

누나에게 곧장 전화를 걸었다.


예상했던 그대로다.

누나는 언제나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예시를 준다 한들, 아무거나 라는 대답만 돌아올 뿐.


직접적으로 필요한 걸 말한 다면

그건 정말 갖고 싶은 것이다.


아직 철없는 동생은 '없어''아무거나'보다

내 주머니를 탈탈-털어도 좋으니 '필요한 게 이거다.'라고 말해 줬으면 했다. 이어 누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일?

잠깐만.

일???


누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에서는 나조차도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담당 선생님께 여쭤보자는 생각에 다음 질문들로 넘어갔다.

힘들지는 않으냐. 아픈 데는 없느냐. 등등-

언제나 그랬듯 사랑한다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하고 담당 선생님과 연결되었다.


복지센터 근처에 또 다른 센터가 생겼는데 거기서 장애인 분들이 일 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있다고 했다.

전혀 힘들일이 아니며, 모든 동의를 구했고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일이라고 하셨다.

주 4일에 하루 5~6 시간. 이마저도 쉬는 시간이 충분히 보장될 거라고. 노동에 대한 납득할만한 금액은 아니지만 그래도 돈도 나온다며.


마음 같아선 돈이고 뭐고 그냥 일 하지 않고, 누나가 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좋은 건가.


걱정 반. 다행반.


누나 잘 부탁드린다는 간곡한 부탁으로 선생님과의 통화를 끝내고 따뜻한 실이 된 나는 고스란히 엄니에게 전달했다. 비슷한 마음이었을 것 같다.


걱정 반. 다행반.


반반의 감정.


누나가 일을 한다?

어릴 때부터 생각하기 힘들었던 장면이었다. 심지어 내가 바라는 장면도 아니었다.

좋은 분들이 많은 세상인 걸 알지만,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는 인식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혀 있는 시각에서는 마냥 안심되는 상황은 아니었다.


누나의 선택이니까.

누나의 인생이니까.

걱정보다는 응원을 해주는 쪽을 선택했지만, 여전히 오늘까지도 반반의 감정은 미세하게 무게가 다른 존재가 시소에 올라탄 듯 왔다 갔다 한다.

세상이 아무리 좋아진다고 한들,

어찌 사람 마음과 감정을 딱 잘라 반으로 나눌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적도, 희망한 적도 없다.

애초에 불가능한 영역이기에.


세상에 무수히 많은 반반 중.

해결할 수 없는 감정의 반반.


해결할 수 없으니 일단 앞으로 가보기로-




다치지 말고, 일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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